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다해 대림 제4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다대림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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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7 ㅣ No.2323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3.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다해 대림 제4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8/다해대림제4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1:30 에서 "용납하지 말아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남용하지(abuse) 말아야"로 교체합니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3.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에 많은 도움을 주는 나머지 성경/교리 용어들의 복습/학습으로 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다대림4주일> 다해 대림 제4주일

 

미카 5,1-4ㄱ; 루카 복음서 1,39-45; 히브리 10,5-10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 I, 제55-64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씨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미카 5,1)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 복음서 1,41)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히브리 10,5)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adv_4.htm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What are the right relations between the human person and God? In today’s liturgy we find an answer to this question. The texts mainly refer to Jesus’ and Mary’s relationships with God. We read of Jesu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second reading), with John the Baptist in his mother’s womb (Gospel), with prophecy (first reading) and with the Levitical priesthood (second reading). We also consider Mary’s relationship with the Holy Spirit, with her cousin Elizabeth (Gospel) and especially with the Word (Gospel).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무엇이 인격(즉, 인간의 격, the human person)과 하느님 사이의 올바른 관계(relations)들인지요? 오늘의 전례 안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한 개의 답변을 발견합니다. 이 본문들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및 마리아의 관계 상태(relationships)들에 대하여 주로 언급합니다. 우리는, 성부와 당신의(제2독서), 그자의 어머니의 태 안에 있는 세례자 요한과(복음 말씀), 예언과(제1독서) 그리고 레위 사제직과(제2독서), 예수님의 관계 상태에 대하여 듣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과, 그녀의 사촌인 엘리사벳과(복음 말씀) 그리고 특별히 거룩한 말씀과(복음 말씀), 마리아의 관계 상태에 대하여 고찰합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Jesus’ relationships. To exist as a human person means to be in and enter into relationships with others. Human relations may be extremely varied, but in the end they are reduced to three fundamental types: the relationship with God, with other individuals and with the world that surrounds us. The liturgy is concerned with the first two types of relationships. Jesus’ fundamental relationship is with his Father. It is a filial relationship of obedience: "Here I am, I am coming, in the scroll of the book it is written of me, to do your will, God" (second reading). It is the obedience of a son who tries to please his father in everything. This filial obedience will go to the extreme of sacrifice. In the Christian mystery, we cannot separate Christmas from the Passion, Christmas from Easter. Jesus continues to be obedient to the Father through his relationship with prophecy, a relationship of fulfillment. The prophet Micah addresses Bethlehem, saying that it will not be the least of the clans of Judah because the ruler of Israel will come from it. In being born in Bethlehem, Jesus fulfills the prophecy in an attitude of obedience to the salvific history traced out by the Father. Jesus’ relationship with Mary is a hidden, extraordinary relationship. Finally, the Gospel talks to us about a mysterious relationship between Jesus, in Mary’s womb, and John the Baptist, in Elizabeth’s womb. Upon encountering the presence of God in history, through the Blessed Virgin Mary, the last of the prophets of Israel and the qualified representative of the Old Testament is filled with joy. It is the Messianic joy which preannounces the hour of salvation. The filial obedience of Jesus, who takes on the condition of time and history, bears fruit in the redeeming joy he brings to men.

 

예수님의 관계 상태(relationships)들. 한 명의 인격(a human person)으로 존재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관계 상태(relationships)들 안에 있는 것을 그리고 그 상태들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관계들은 매우(extremely) 다양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결국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개의 근본적인 유형들로 환원됩니다: 하느님과, 다른 개인(individuals)들과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the world)과, 관계 상태(relationship),(*) 이 전례는 이들 관계 상태들 중의 첫 두 개의 유형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근본적인 관계 상태는 당신의 성부와 함께 계심에 있습니다. 이 상태는 다음과 같이 순명/순종(obedience)으로 구성된 한 개의 자식의 관계 상태(a filial relationship)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제2독서). 이 상태는 모든 것에 있어 자신의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고자 노력하는 한 명의 아들의 순명을 말합니다. 바로 이 자식의 순명은 희생 제물이라는 극단에까지 장차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있어, 당신의 수난(Passion)으로부터 성탄일(Christmas)을, 부활절(Easter)로부터 성탄일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현(fulfillment)이라는 한 개의 관계 상태인, 예언과 당신의 관계 상태를 통하여 성부께 순명하는 것을 계속하십니다. 예언자 미카(Micah)는 베들레헴을, 왜냐하면 거기로부터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장차 나올 것이기 때문에, 베들레헴이 유다의 씨족(clans)들 가운데에서 장차 가장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언급합니다(addresses).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성부에 의하여 윤곽이 그려지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 순명이라는 한 개의 태도(an attitude)에 대한 예언을 구현하십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 상태는 한 개의 감추어진, 비상(非常)한(extraordinary) 관계 상태입니다. 끝으로, 이 복음 말씀은, 마리아의 태 안에 계신, 예수님과, 엘리사벳의 태 안에 있는, 세례자 요한 사이에 있는 한 개의 신비한 관계 상태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역사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에 마주치자마자,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중의 마지막이며 그리고 구약 성경의 적격한 대표자는 기쁨(joy)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구원의 시간을 사전 선포하는 것은 바로 메시아에 관계된 기쁨(the Messianic joy)입니다. 시간과 역사로 구성된 조건을 취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의 자식으로서의 순명은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시는 구속(救贖)하는/속량하는 기쁨(the redeeming joy)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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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른 개인들과 이 세상은, "나"가 아닌, "너"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관계 상태(relationship)는 결국에, "나", "너", 그리고 "나와 너가 아닌 제3자" 들이 그 말단(末端, terminals)들을 구성하는, 3자들 사이에 있는 어떤 관계 상태(a ternary/trinitarian relatiohship between 3 terminals)로 환원됨에 주목하라.(#) 바로 이러한 설정 아래에서, (i), 로마 제국의 다섯 개의 주된 국민 윤리덕들 중의 하나였던,  "자연적, 경의(敬意)/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as, 즉, the natural piety)"이라는 자연적 윤리덕(natural moral virtue)과, (ii), 세례 시에 성화은총 및 향주삼덕들과 함께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주입되는, 그리스어본 칠십인역 이사야서 11,2-3에 근거한 성령칠은들 중의 하나인, "초자연적, 경의(敬意)/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as, 즉, the supernatural piety)"이라는 초자연적 윤리덕(supernatural moral virtue)이 정의됨에 주목하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piety.htm <----- 필독 권고 

 

(#)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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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s relationship. Mary has two relationships that do not appear in the liturgical texts, but that are implicit: her relationship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the Word incarnate in her womb. Without these two relationships, we cannot explain the episode of Mary’s visit to her cousin Elizabeth. The close and personal relationship of the Holy Spirit with Mary has made possible for the Word of God to become flesh and for a human person to be formed in her maternal womb. Mary’s relationship with the Word of God is extremely mysterious and delicate: mysterious because the fertilization of her womb is the work of God, delicate because she is giving her flesh and blood to God. But she is especially giving him her love, her dedication, her entire self. Mary’s relationship with Elizabeth is one based on service. She comes to help her in the last months of her pregnancy. She is moved by the natural bonds of relationship, but especially by the Spirit of God and by the Word which she feels present in her womb: a natural and spiritual movement at the same time. In the song of the Magnificat, Mary raises her voice to God to praise and thank him with joy for the mystery inside her, despite her smallness and humility. How can she but praise him who has turned to her to fulfill his plan of salvation, the most sublime and intense aspiration of men? Lastly, in Mary Micah’s prophecy is also fulfilled. "Until she who is in labor gives birth" to the Messiah, he wrote. The relationship of is one of motherhood, through which Mary expresses all her femininity in relation to Jesus.

 

마리아의 관계 상태(relationship). 마리아는, 이 전례 본문들에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암시적인(implicit),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관계 상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과 그리고 자신의 태 안에 육화하신 거룩한 말씀과 그녀의 관계 상태. 이러한 두 개의 관계 상태들 없이, 우리는 마리아가 자신의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에피소드[episode, 삽화(揷話)]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와 성령의 가까운 그리고 인격적 관계 상태는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 육(flesh)이 되는 것을, 그리하여 한 인격(a human person)이 그녀의 모성적 태 안에서 형성되는 것을, 이미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과 마리아의 관계 상태는 다음과 같이 몹시 신비롭고(mysterious) 그리고 미묘(微妙)합니다(delicate): 그녀의 태 안의 수태는 하느님의 일(the work of God, 즉, 오푸스 데이)이기 때문에 신비롭고, 그녀가 자신의 육과 피를 하느님께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미묘(微妙)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분께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헌신을, 자신의 전체 자아(self)를, 특별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관계 상태봉사(service)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임신의 마지막 달들에 있는 그녀를 도우기 위하여 옵니다. 마리아는 다음과 같은, 관계 상태라는 자연적 속박(bonds)에 의하여, 그리고(but) 특별히 성령에 의하여 그리고, 자신의 태 안에 계신다고 그녀가 느끼고 있는, 거룩한 말씀에 의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동시에 한 개의 자연적인 그리고 영적인 움직임. 마니피캇이라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빈약(smallness)과 겸손(humility)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 신비에 대한 기쁨(joy)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리고 그분께 감사드리기 위하여 하느님 쪽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장엄한 그리고 강렬한 열망인, 구원이라는 당신의 계획을 구현하기 위하여 그녀 쪽으로 이미 향하신 그분을 찬양하는 것 이외에 그녀가 어떻할 수 있는지요? 마지막으로, 마리아 안에서 미카(Micah)의 예언은 또한 구현됩니다. 이 메시아를 "해산하는 여인이 낳을 때까지" 라고 그는 썻습니다. 이 관계 상태는, 이 상태를 통하여 마리아가 예수님 쪽으로 관계 안에서 자신의 여성성/여성다움(femininity) 모두를 표현하는, 모성애(motherhood)의 하나입니다.

 

PASTORal SUGGESTIONS 

 

사목적 제안(提案)들

 

Knowing how to relate to others. In conversations we often hear people say, "You have to know how to relate to others." This means that it is good to have many relationships, and especially relationships with influential people. The reason is obvious: it gives us the possibility of having many doors open in the different spheres of human life (political, financial, social, professional, educational, religious...). Christians, and especially priests, should know how to relate with people of extraordinary influence: with God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with the Blessed Virgin Mary, our mother and queen; with the saints, our family and protectors in heaven. Obviously, these relationships won’t give you access to excellent jobs or to good business. But they will exercise their influence on your inner self, transforming it. They will influence your vision of things and of life, making it conform with God’s plan; on your relationship with human beings and things, so that it will always be inspired by love and service; on your relationship with your own history, perhaps converting it from a meaningless history into a meaning with a story. There is so much good that can come to us, and that can come to others, from knowing how to relate to God, the Virgin and the saints! In the everyday world, it is important to know how to relate to others. So why shouldn’t it be the same in the field of the spirit? Blessed are those who know how to relate to others, for they will be like a leafy tree that bears fruit when the season comes: fruits of goodness, happiness and salvation.

 

다른 이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relate to) 지를 아는 것. 대화들 중에 사람들이 "다른 이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그대는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습니다. 이 말은 많은 관계 상태들을, 그리고 특히 영향력있는 사람들과 관계 상태를, 가지는 것이 좋은/선한(good)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교육적, 경신적(religious), ...) 인간의 삶의 서로 다른 범위(spheres of human life)들 쪽으로 열려있는 많은 문들을 가지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고 특히 사제들은, 비상한(extraordinary) 영향력의 사람들과, 성부, 성자 및 성령 하느님과,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여왕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하늘에 있는 우리들의 가족이며 그리고 보호자들인 성인들과,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relate with) 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분명하게, 이들 관계 상태들은 탁월한 직업들 쪽으로 혹은 좋은 사업 쪽으로 그대가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들은 그대의 내면적 자아(inner self)에 영향력을 장차 행사할 것이며, 그리하여 이 자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상태들은 사물들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그대의 통찰력(vision)에 장차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과 합치할(conform with) 것이고, 그리하여 인간들 및 사물들과 그대의 관계 상태에 영향력을 장차 행사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그것이 사랑(love)봉사(service)에 의하여 장차 항상 고무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대의 고유한 역사와 그대의 관계 상태에 영향력을 장차 행사할 것이며, 아마도 그리하여 그 결과 그것을 한 개의 의미 없는 역사로부터 한 개의 이야기를 가진 한 개의 의미로 변하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 동정녀, 그리고 성인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우리들 쪽으로 올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이들 쪽으로 올 수 있는, 너무도 많은 선(good)이 있습니다! 이 날마다 세상에 있어, 다른 이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와 같이(so) 왜 그것이 이 영(the spirit)의 영역에 있어 동일하지 않아야 하는지요? 다른 이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아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인데, 이는 그들은 장차 절기가 오면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는 한 그루의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함, 행복, 그리고 구원의 열매들.

 

Relating to others for the Kingdom. We Christians live in the world, in the kingdom of history, although we belong to the Kingdom of God. And in the kingdom of history, human relations are very important. We have no reason for despising them. Nor should we abuse them, putting them at the service of our self-interest. We must use them to build the Kingdom of God. We must relate with those in power, so that they help us to help those who are not only powerless, but who are deprived of food, home, clothing or rights. We must relate to the needy, so that they become aware that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them and invites them to do everything they can to make their existence more human, more dignified, freer and happier. We must relate to the living and powerful forces of a people, a city, a State or a nation to convince them that they are children of the Kingdom of God to the extent that they use their power to the benefit of the neediest. And once they are convinced of this, they must get to work. If all of us Christians were to put our relations at the service of the Kingdom, the world would surely walk down more human paths, more marked by our faith in Jesus Christ. Jesus Christ came into contact with history to establish the Kingdom of his Father. After 2000 years, what are we Christians doing? 

 

하느님의 나라/통치를 위하여 다른 이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가짐(relating to).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하느님의 나라/통치(the kingdom of God)에 우리가 속하기는 하나, 이 세상 안에서, 역사의 나라/통치(the kingdom of history)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나라/통치에 있어, 인간 관계(human relations)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관계들을 경멸할 어떠한 이유도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들의 사욕(私慾, self-interest)에 기인하는 봉사(service)에 이 관계들을 둠으로써, 이 관계들을 결코 남용하지(abuse)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통치를 쌓아 올리기 위하여 이 관계들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힘 없는 자들 뿐만이 아니라 음식, 가정, 의류 혹은 권리들을 박탈당한 자들을 돕는 것을 권력에 있는 자들이 도울 수 있도록, 우리는 권력에 있는 자들과 어떤 관계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궁핍한 자들이 하느님의 나라/통치가 자신들에게 속하고 그리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더 인간적이고, 더 존엄하게, 더 자유롭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하느님의 나라/통치가 그들에게 권함을 그들이 알아차리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궁핍한 자들 쪽으로 어떤 관계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한 백성, 한 도시, 한 주(a State) 혹은 한 나라의 살아 있는 강력한 힘들 쪽으로, 권력에 있는 자들이 가장 궁핍한 자들의 혜택 쪽으로 자신들의 힘을 사용하는 정도에까지, 그들이 하느님의 나라의 자녀들임을 권력에 있는 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어떤 관계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권력에 있는 자들이 바로 이것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면, 그들은 일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들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에 대한 봉사에 우리의 관계(relations)들을 배치하였더라면(were),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앙에 의하여 더 표시되는, 더 인간적인 길들을 이 세상은 확실하게 걸었을 것입니다(would).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부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제정하기 위하여 [과거에] 역사와 접촉하셨습니다. [그로부터] 2,000 년 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지요?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우리말 번역 완료 일자: 2015년 12월 15일)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i) 예언자 미카의 활동 시기와 예언 내용 등에 대하여서는 다음에 있는 미카서 입문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intro_Minor_Prophets_AF.htm <----- 필독 권고 

 

(ii) 가톨릭 교회의 주일 및 대축일 전례력에 있어, 미카서는 다해 대림 제4주일 제1독서(미카 5,1-4ㄱ)로서 오로지 한 번만 미사 중에 발췌되어 주님 앞에서 봉독된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주간 전례력에 있어, 미카서는, (a)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미카 7,14-15.18-20); (b) 짝수해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제1독서(미카 2,1-5); (c) 짝수해 연주 제16주간 월요일 제1독서(미카 6,1-4.6-8); (d) 짝수해 연주 제16주간 화요일 제1독서(미카 7,14-15.18-20)로서, 미사 중에 발췌되어 주님 앞에서 봉독된다.  

 

(iii)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 및 이들의 예언서들의 분류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본 해설서의 연중 제7주일 제1독서(1사무엘 26,2.7-9.12-13.22-23) 본문 해설의 각주에 있으니 참고하라.

 

B. 다해 대림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8/다해대림제4주일.mp4 01:22-02:3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1:30 에서 "용납하지 말아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남용하지(abuse) 말아야"로 교체합니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lans_2323.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1:22-02:36[즉, 01분22초-02분36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lans_2323"]

 

[번역 오류] "새 번역 성경" 미카서 5,1“공동번역성서” 미카서 5,1에서 ‘유다 부족들’로 번역된 표현은, NAB에서 ‘clans’로 번역되었듯이 그리고 “주석 성경”의 미카서 입문에서처럼, ‘유다 씨족(氏族)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역대기 4민수기 26에 기록되어 있듯이, 통상적으로 다수의 ‘씨족(氏族, clans)들’이 모여서 ‘한 개의 부족(部族, tribe)’을 [예를 들어, 이스라엘(즉, 야곱)의 자손들의 열두 지파(tribes)들 중의 하나인 유다 부족(tribe)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에 있다: 01:22-02:36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5.htm <----- 필독 권고 

 

C. 미카서 5,2에서 ‘그들’과 바로 이어지는 절에서 ‘그의 형제들’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하여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멸망당한 후에 땅 끝[즉, 메데스(Medes, 즉, Media) 지역]까지 유배를 가게 되었던(2열왕 17,6), 이 왕국을 구성하였던 이스라엘의 열 개의 부족들을 포함할 것이다.

 

D.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Ein Kerem에 위치한, Visitation Church는 다음의 성지순례 안내에 있으니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Ein_Kerem_Visitation_Church.htm <----- 필독 권고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이 루카 복음서 1,41에서 명기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쇠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성경들인, 한문본 “천주강생언행기략”(1635년)“천주강생성경직해”(1636-1642년)에서 도입된 차용 번역 용어인 동사 ‘용약(踴躍, leap)’‘부활찬송’ 노래의 첫 가사임을 실증적으로 고증/입증하는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exsultet.htm <----- 필독 권고 

 

F. 루카 복음서 1,42에서의 엘리사벳의 외침은 ‘성모송(Hail Mary, Ave Maria)’ 기도문 전반부의 뒷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 해설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26-38)의 주석으로 주어져 있는 ‘성모송’ 기도문의 역사에 대한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02.htm <----- 꼭 필독 권고 


G.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 해설서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입문으로서 제시된 교회의 일치를 위한 공의회(ecumenical council)인 에페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의 결과를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02:36-03:10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8.htm <----- 꼭 필독 권고 

 

H. 오늘의 제2독서를 학습할 때에, 히브리서 제10장 전체에 대한 해설이 주어져 있는 본 해설서 시리즈의 나해-II 연중 제33주일 제2독서(히브리 10,11-14.18) 해설을 또한 학습하도록 하라. 03:10-05:10

 

I. 복습 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J. 복습 9: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몸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은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시편 40,6의 영문본이다: Sacrifice and offering thou wouldest not; but a body hast thou prepared me: whole-burnt-offering and sacrifice for sin thou didst not require.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eptuagint/psalms.htm


(iii) 히브리 성경의 시편 40,6은 다음에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hebrew/psalms40.htm

 

K.
(i)
히브리서 10,9에서 치워진 바인 ‘레위 법’(the Livitical law)은, 레위기에 규정된 유관 윤리적(moral) 혹은 법적(legal) 규정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부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 및 이 제사와 관련된 제반 사항들, 즉, 경신적(religious) 및 의식적(ceremonial) 제반 사항들을 규정한, 레위기 중의 유관 규정들을 말한다.

 

(ii) 이 내용을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본 해설서 시리즈의 나해-II 연중 제16주일 제2독서(에페소 2,13-18)에 대한 해설 및 각주들을 또한 학습하도록 하라.

 

L. 복습 8: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객관적 구속’, ‘주관적 구속’,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M. 복습 7: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 꼭 필독 권고 

 

(ii)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iii)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N.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adv_4.htm <----- 필독 권고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89. 교회는 성자의 강생 신비(Mystery of the Incarnation)를 어떻게 설명하는지요?
CCC 464-470, 479-48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로에게 혼동되지 아니하면서도 유일하신 말씀이라는 위격(Person of the Word)으로 하나를 이루시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가지신, 참 하느님이시며 그리고 참 사람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기적들, 당신의 수난들, 그리고 당신의 죽음 등의 당신의 인성 안에서의 모든 일들은, 당신께서 취하셨던(assumed) 인성으로 행하시는(acts), 당신의 신격(divine Person) 때문으로 돌려져야 합니다(엮은이 번역).

 

     “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며 거룩한 말씀이신 불멸의 당신이시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로부터 강생하게 되시도록
     정해지셨던 분이시여 (...)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광을 받으시는, 성삼위의 한 분이신
     당신께서는 우리를 구해주소서!”
(엮은이 번역).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비잔틴 전례
     (Byzantine Liturgy of Saint John Chrysosto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adv_4_c464.htm

 

CCCC 90.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인식력을 갖춘(with human knowledge) 한 개의 영혼(a soul)을 가지고 계셨는지요?
CCC 470-474, 482 

 

하느님의 아드님(Son of God, 성자)(*)께서는 한 개의 이성적 인간 영혼(a rational human soul)에 의하여 활성화된(animated) 몸(body)을 취하셨습니다(assumed).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 지성(human intellect)으로써, 경험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셨으나, 그러나 또한 사람(man)으로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당신의 성부이신 하느님에 대한 친밀하고 즉각(卽刻)적인 인식력(intimate and immediate knowledge)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께서는 사람들의 비밀스런 생각들을 이해하셨으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드러내시려고 오셨던, 바로 그 영원한 계획들에 대하여 충분하게(fully) 알고 계셨습니다(엮은이 번역).

 

(*) 하느님의 아드님(Son of God, 성자)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 해설의 각주에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라.

 

주: 강생을 설명하고 있는 첫 문장의 번역시에 몸(body)이 누락된 것은 번역 오류라는 생각이다.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adv_4_c470.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부 록 >>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복습 2: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2:38[즉, 32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한문 문화권 안에는 없는 개념인 것으로 파악되기에,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ix)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22[즉, 55분22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aled_character"][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aled_character_2301.htm]

 

(a)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personal)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영혼(soul)을 그 형상(form)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훼손된, 자신의 형상인(formal cause)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 함이며, 그리고 바로 이 형상인의 완미한 회복(perfect recovery)을 위하여,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인호’(印號, the sealed, character)를 받아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b)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신성적(divine) 인과 관계의 지속적 형성에 있어, 인간/사람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자신의 형상인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만 비로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에의 참여자 및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자연계의 물리 법칙에서처럼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resonance)이, 하느님과 사람/인간 사이에 ‘영적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spiritual resonanc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라는 한 개의 기적(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또한 은총(grace)이라는 도움에 의하여 ‘악습(vices)들’이 ‘덕들’(virtues)로 교정되는 습관에 있어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어, 하느님 쪽으로 ‘회심’/‘윤리적으로 변화’(‘conversion‘ to God)라는 한 개의 윤리적 기적(a moral mi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유관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eakness_229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가.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4/나해그리스도왕대축일.mp4 [오류 정정: 이 동영상 중의 육성(肉聲) 설명에서, (i) 18:29-18:36[18분29초-18분36초] 사이에 말해진 "하스모니아 왕조""셀레우키드 왕조"로, (ii) 31:26-31:29[31분26초-31분29초] 사이에 말해진 "예수님께 제몰로"를, 교재 본문과 동일하게, "하느님께 제물로"로, 그리고 (iii) 33:50-35:23[33분50초-35분23초] 사이에 말해진 "순음력""태음력"으로, 바로 잡습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일_전례성경_학습자들을_위한_입문자료_모음_2007-10-09.pdf]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연중 제34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0-39:15[즉, 36분:30초-39분15초]를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 (*)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2305"][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2305.htm]

 

나.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32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4:31[즉, 04분31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복습 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복습 24: 나해 연중 제30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9/나해연중제30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30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1:00[즉, 11분0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cupiscenc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사욕편정’(慾偏情, concupiscence)이 죄가 아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사악할 사; 주: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수록된 옛 발음은 ) 낱글자를 사용하는 ‘慾偏情’이라는 한자표기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heresy)으로 단죄된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 동의하여, 바로 이 ‘사욕편정’이 죄임을 말하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부제: 죄가 아닌,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등에 대하여;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cupiscence_229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upiscen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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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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