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홍신부님 강론(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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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2002-07-10 ㅣ No.4256

자기 성찰이란

구름위에 뜬것 같은 일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보고

내가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새치기를 예로 들어 신앙인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새신부님 안수때 새치기를 하는 분과 그런 분을 보고 화를 낸 분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새치기 할수도 있지 왜 화를 내나.. 하는 분들과

남들 다 기다리는데 새치기 하다니.... 하면서 같이 화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치기를 하고 나서 미안해하는 사람

새치기 했다고 야단을 치는 사람

그걸 보면서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사람들

이 분들 모두는 그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것일까요?

’윤리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새치기를 하는건 나빠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새치기를 안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라는 아주 간단한 초등학교식의 윤리적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치기를 하면 단죄를 받는다> 라는 논리 자체가

신앙생활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 처할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깐만 내 감정을 stop시키고

한발짝 뒤에서 그 상황을,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그 자매가 왜 새치기를 했을까

그 시간에 하필이면 남들 다 줄서 있는데

뭐가 급해서 그렇게 새치기를 해야 했을까

남들 다 가만 있는데 왜 그 사람만 나서서 그 자매를 야단쳤을까..... 하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줘야 합니다.

그게 신앙인들이 해야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 자세가 잘 안 갖춰져 있을때는

왜 그러는거야--- 하고 같이 화를 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치기를 한 자매는 왜 했을까요

새치기 한 사람의 마음전체를 휘어잡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올라와서 그렇게 새치기를 한 것일까요.

.. 불안 때문입니다.

뒤에 줄서 있다가는 아무래도 내 앞에서 줄이 끊길것 같애---

나는 꼭 안수를 받아야 되는데---

이런 생각이 불안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줄이라도 앞에 가고 싶은 것이지요.

그럼 새치기 한 그 사람이 거기서만 그렇게 새치기를 한 것인가

아닙니다.

그 불안한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를 않습니다.

다른데 가서도 또 새치기를 할 것이고 습관처럼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그 사람안에 왜 그런 불안함이 생겼을까.......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안의 불안한 마음을 보지 못하고 그냥

왜 새치기를 했어------ 하고 야단을 치게 되면

그 불안함이 안에서 더 가중이 되고 커집니다.

그러면 그 다음번에는 새치기하는 것을 고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합니다.

불안이 더 커졌기 때문에 전에는 한줄 새치기 하던 것을 이제는 두줄 새치기 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치기 한 사람을 보고 화를 내며 야단을 쳤던 사람

그렇게 화를 내는 그분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새치기는 나쁜 것이야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다 야단을 맞아야돼

이런 생각 뒤에 있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해

-바르게 살지 못하면 욕을 먹어야 돼

그리고 이런 생각뒤에 있는 마음,

그렇게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그 마음이 편안한 마음일까요.

불편한 마음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 화를 내는 사람들이

남이 바르게 살지 못하는 걸 보고 화를 내게 됩니다.

내가 상대에게 행동하는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새치기를 한 사람이나

그 사람을 보고 화를 낸 사람이나

모두 마음이 편치 않은 분들입니다.

 

그냥 급해서 했나보다-- 하고 넘어가주는 분들이 마음에 안정감이 있는 분들이지요.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을 보고 마음이 막 흔들렸다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또 남이 가지고 있는 그런 문제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란게 그냥 가서 ’나 이제부터 너한테 잘해줄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본인이 본인 마음을 모르는 것까지도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이것은 그냥 판단만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깊이 있게 이해를 해주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 마음안에 들어가주라는 말씀이지요.

 

신앙생활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윤리적인 관점’을

’치료적 관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stop시키고

이해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는 것이 더딥니다.

이런 분들은 남을 잘 이해하려면 자신의 상처치유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남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훈련

이것이 필요합니다.

분노했다 이해하고..

분노했다 이해하고..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변하는 나를 보게됩니다.

이해하는데 더 머물수록 분노가 적어집니다.

억지로 남을 사랑하려 하지 말고 이해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억지로 사랑하려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도취일수 있고

자기의 바닥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이해하려는 훈련이다"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인생은 고다"

그 고를 헤치고 나가는 훈련이 인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훈련에는 엄두를 못내고

그냥 지금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훈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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