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성당 게시판

좋은 생각중 훈련소에서 만난 그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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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열 [parkvm] 쪽지 캡슐

1999-08-12 ㅣ No.420

신병 훈련소에서 사소한 오해로 한 녀석이랑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 우린 서로를 보면 으르렁대기 일쑤여서 사소한 일에도 곧 언성이 높아졌고, 듣기에도 거북한 욕들을  거리낌없이 두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런데 ’하나님, 제발 저 녀석과는 같은 부대에 배정해 주지 마세요. 그러면 나중에 교회 열심히 다닐게요’ 하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녀석과 나는 같은 전경으로 가게 되었다.

전투경찰 기본교육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녀석이 내게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부턴 잘 지내자." 그러더니 초코파이 하나를 내밀었다 ’아니 점심 때까지만 하더라도 짜증을 내던 녀석이 뭐 잘못먹었나?’ 그러나 문득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전날 저녁 내가 잘 모르고 딲아준 걸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에도 녀석은 몰래 감춰 둔 음료수를 내게 주었다.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여전히 녀석이 싫은데.....

식사시간이 되었을때 나는 녀석의 반찬이 다 떨어진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내 소시지 볶음을 녀석의  식판에 덜어 주었다.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길이 느껴졌다.

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자대 배치를 받았다. 녀석은 전경대로 나는 경찰소로 가게 되어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다.그런데 왠지 마음이 서글펐다.녀석은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내가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녀석이 내게로 뛰어왔다 "야, 최운기! 잘 살아라" 하며 내머리를 주먹으로 치더니 얼른 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차안에서 쪽지를 펴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경찰서에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데 네게 줄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라는 쪽지와 꼬깃꼬깃한 돈 3천원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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