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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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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suhochunsa] 쪽지 캡슐

2000-12-21 ㅣ No.3982

오랜만입니다.

요즘 무지 바빠서요... 글을 남기지 못했네^^?

오늘은 고 김현식씨의 유작시를 올립니다.

기분 좋게 읽어주세요

 

 

 

하나  

깨닫는다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기 때문에 두렵다.

두렵다!

두려움은 괴롭다.

괴롭기 때문에 아프다.

 

둘  

나는 언제나 나를 가둔다.

울타리 안에서, 처음엔 그 울타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즐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울타리 안에 있다.

내가 스스로 쌓은 울타리 안에.

 

셋  

병원엘 자주 간다.

가면 갈수록 자주 가게 된다.

아픈 곳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이 병이다.

병원을 다닌 지 벌써 5년째나 된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넷  

잠을 자는 시간이 항상 틀리다.

꼭 그 시간에 자야 되는건지 모르지만

나는 늘 나를 한정된 곳에 두지 않는다.

아침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저녁에도 자고 새벽에도 잔다.

항상 잔다.

 

다섯  

마음이 가는 대로 얘기하고 싶다.

얘기할 사람이 없다.

진실성 결여.

 

여섯  

보이는 건 가지고 싶고 만지고 싶고

들리는 건 생소하고 의심쩍고..

언제나 벗어날지.. 나를 밝은 곳으로..

너무 늦지도 그리 이르지도 않은 바로 지금

우리 함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찬양이

바른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고백적인 삶의 연장선상에서 드려지는

진솔한 경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찬양과 경배가

고통 속의 자연 만물까지 메아리쳐나가

이 땅이 새롭게 변혁되길 바라옵니다.

 

일곱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름다운 꿈이 있었지

푸른 하늘 저 멀리멀리

나의 꿈을 그려보냈지

아주 작은 마음엔

 

여덟  

정말 잊혀질 수 있을까.

이 밤이 지나가면 또 다시 찾아오는

아침 햇살 아래,

또 그렇게 야윈 얼굴로 살며시 내다보는

나의 수줍은 마음.

무엇을 주저하는지 (하고 있는지)

세상은 나를 보고 손짓하며 부르는데...

 

아홉  

사랑하며 살고지고

노래하며 살고지고

얘기하며 살고지고

너도 나도 모두 같이 살고지고

에-헤 같이 살고지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너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오랫동안 살아왔네-에.

 

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외롭다고 생각하지 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쓸쓸할 때엔

내가 너의 마음을 위로할텐데

웃지 마-하

내가 너의 곁에 있어줄텐데

세상은 모두 그런거야

그러면서 한평생 살아가는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이야

우린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이야.

 

사랑 I  

누구나 다 같이

사랑한다고

절실한 그리움과

애타는 정열 속에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요

지구의 끝, 아니 우주의 끝까지

같이 갑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예요.

죽음도 우리를 갈라 놓지는 못해요.

아아, 누구나 다 같이 사랑한다고

너와 나 밖에 없다고

애틋한 절규가 오열처럼 터질 때

우리 둘의 포옹은 화석으로 변해도 되요

사랑은 영겁의 불길이기에.

 

사랑 II  

마디마디 얼킨 손가락

살며시 풀어지며

허리를 감싸안은 그대와 나

그대는 누구일까요

지금 나는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느껴지네요

사랑한다고 몇천 번을 되풀이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목마름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무엇이길래 내가 없어졌나요

당신이 무엇이길래.

 

사랑 III  

비가 옵니다

그대로 맞고 가지요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 어깨로

차가운 물방울이

손끝으로 떨어져오면 그 손으로

당신의 입술을 어루만지고 싶어요

야릇한 탄력이 전류처럼

손가락 끝에 떨리면

심장의 고동이 멎을 것만 같아

얼굴을 하늘에 대고

하염없이 빗줄기를 맞아봅니다.

 

사랑 IV  

아버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직 당신 생각만으로

나를 때려도 사랑하기에 맞습니다

매를 드는 이유가 엉뚱하여도

또 하나의 사랑을 눈빛에 느껴

나는 조용히 매맞습니다

바다사람을 산사람이 모르고

산사람 바다사람 모르니

가보고 올라봐야지

틀림없이 사랑은 있는 것 같아

매를 드는 사랑도 사랑이려니

납득할 수 없는 매를

무릎꿇고 맞아드려요.

 

사랑 V  

사랑은 이별의 시작

이별은 아픔의 시작

아픈 마음에 남아 추억에 잠들게 해

만나면 사랑을 하고 때로는 미움으로

상처를 남기게 해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그런 사랑은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

그런 아픈 만남은

소중히 간직했던 아름다운

내 사랑을

다시 만날 때까지.

 

너와 나  

나는 틀림없이 여기 있어요

그러나 너 없이는 소용없는 나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그것을 몰랐겠지요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그것을 몰랐답니다.

 

먹을 것이 내 입에 들어가야만

나는 살 수 있어요

먹을 것이 네 입에 들어가야만

너도 살 수 있어요

이것은 너와 내가 따로라는 것

(혼자라는 것)

혼자 낳고 혼자 죽는다는 것

(같이는 못 죽는 것)

그러나 너 없이는 소용없는 나

너와 나는 틀림없이 여기 있어요

 

너와 나의 곳  

여보시오

술, 술, 술, 술 술을들어 이 술 한 잔

너와 나와 둘이서 마주 앉아서

속상하는 생각일랑 흘려버리고

오늘의 피로를 술로 씻으면

내일 있는 이 세상의 낙원이라오

 

여보시오

노, 노, 노, 노 노래를 노래부르세

너와 나와 둘이서 나란히 앉아

엉클어진 사연을 털어내 놓듯

우렁차고 힘차게 목청 울리면

어지러운 그림자 사라진다오.

 

여보시오

춤, 춤, 춤, 춤 춤을 춥시다

너와 나와 둘이서 손을 붙잡고

쌓이고 쌓인 가슴속 회포 풀면서

장단 맞춰 즐겁게 춤을 추면은

찌푸러진 하늘도 맑아진다오.

 

여보시오

다, 다, 다, 다 다른 곳에 무엇이 있어

너와 내가 있는 곳 이 곳이 그 곳

노여움과 기쁨이 서로 엉키고

슬픔과 즐거움이 오가는 곳

이곳이 바로 너와 나의 곳

(두 사람의 곳)

 

술  

너 술 마실 줄 아니?

너 여자가 왜 그렇게 술을 마셔?

남자는 술을 그렇게 마셔도 돼?

술이 뭐지?

마시면 취하는 거지.

취하면 좋아?

이 꼴 저 꼴이 전부 좋은 꼴 같아져.

그럼 술이 깨면 어떡해?

또 마시면 되지.

그럼 자꾸자꾸 마셔야 되니?

그럼 자꾸자꾸 마시지.

(술이) 맛있다고 마시는 사람

(술) 먹지 말라는 사람

그래도 술이 없어진 일이 없잖아.

이꼴 저꼴이 있으면

술도 꼭 있어야 하나봐.

흐렸다 개었다가

생각났다 잊으면

술을 마셔야 해.

너 술 마실 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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