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서울대교구 청소년 큰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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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sungil78] 쪽지 캡슐

1999-10-21 ㅣ No.1872

I. 개요

이름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회 청소년 큰잔치

 SEOUL YOUTH DAY Ⅱ - FESTIVAL ( TOWARD THE GREAT JUBILEE)

 

누가

  주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관 : 본당 중고등학생 사목부

 기획/제작 : 청소년 큰잔치 기획위 & 본당 청소년 대표자

 

주제

  복음을 전하라! 해방을 꿈꾸자!

 (대희년의 기쁨을 향한 가톨릭 청소년들의 첫걸음)

 

무엇을

  11.20(토) : 전야제 축제 및 학생 대표자들의 선서 및 발대식

                 - 경연 혹은 발표

 11.21(일) : 공동체 놀이 한마당(다양한 놀이, 전시회)

                 공동체 미사 (주교님과 함께)

어떻게

 만남의 원칙

 -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복음적 가치의 만남 (교회 안과 밖 허물기)

 - 가톨릭 청소년 문화와 청년 문화의 만남 (교사와 학생과 함께 주인되기)

 

어디서

  서강대학교 체육관과 여러 곳

 

언제

  1999년 11월 20일 18시-20시 / 21일 10시-16시

 

 

II. 공식 명칭

 

◆ 대회 공식명칭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회 청소년 큰잔치(SEOUL YOUTH DAY Ⅱ- FESTIVAL)

 

    우리는 청소년 큰잔치를 YOUTH DAY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청소년이란 단어를 YOUTH로 표현합니다. ’청소년’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13세에서 18세까지 즉 중고등학생을 연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YOUTH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외국에서는 대학생까지 포함하고 있고 유럽에서는 고실업 시대에 들어서면서 30세까지를 YOUTH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청소년이란 개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청소년이란 말을 잘 쓰지 않고 고등학생까지의 소년과 대학생이상의 청년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청년, YOUTH 어떻든 무척 복잡합니다. 말장난처럼 느껴지시지요? 단어 한마디의 위력이 생각보다 엄청날 수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청소년(youth)이란 단어와 관련되어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 학교폭력, 가출, 자살, 왕따, 패륜, 소비주의, 약물 등 부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을 보며 기성세대 사람들이 청소년(youth)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마도 불안을 느끼겠죠? 이처럼 한 단어가 가지는 위력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이번 행사를 가톨릭 학생 큰잔치라고 하지 않고 청소년(youth) 큰잔치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youth)이란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좀 더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청소년 큰잔치를 YOUTH DAY라고 했는데 이건 누구의 잔치이어야 할까요? 처음에 이 큰잔치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교회에 청소년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성이 발휘되는 공간이 없다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주고 그들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과 노력들을 많은 선생님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잔치를 교사의 무대가 아닌 학생들의 잔치로 하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가톨릭 주일학교는 일반학교와는 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주일학교 선생님들 중 86.6%가 19세에서 29세까지의 나이에 있다는 거죠. 19세에서 24세까지만 봐도 69.6%나 됩니다(서울대교구 교육국, 1996). 일반 학교에서는 청소년(youth)하면 학생이라는 말과 당연히 같지만 가톨릭 주일학교에서는 YOUTH를 보는 관점에 일반학교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YOUTH라는 말을 보기에 따라서 작게는 선생님들 2/3, 많게는 4/5가 이 큰잔치의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학생과 교사라는 관계로만 서로를 생각했지 서로가 같은 상황에 있다는 공통점은 보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YOUTH라는 개념을 정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번은 다른 각도로 우리를 바라봄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에 자신을 개방하자는 것입니다. 이 큰잔치는 학생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도 교사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도 안되겠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YOUTH라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큰잔치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준비하고 한쪽은 준비된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기고 함께 연대하는 큰잔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연대성의 끈은 ’예수 그리스도’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겠죠?  이번 큰잔치를 통해 서로를 만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복음적 가치를 향한 동반자로서 연대의 끈을 서로가 본다면 참 좋겠습니다.

 

 

 

III. 주제

 

◆ 대희년의 기쁨을 향한 가톨릭 청소년들의 연대의 첫걸음

대희년과 청소년 큰잔치

희년은  복음적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구현되고 그분의 자유와 해방이 이루어지며 모든 것이 회복되고 제자리를 찾는 시간이며 이런 하느님의 은총의 확인으로 기쁨의 큰잔치일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제3천년기) 우리는 복음적 애덕의 실천→자유와 해방→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한 기쁨으로 표현되는 대 희년이 오늘날 우리의 청소년(youth)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고민해 봅니다. 우리가 청소년(youth)이란 개념을 조금 넓게 본다면 13-18세 청소년들과 20-29세 청소년들은 무언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13-18 청소년들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는 거의 암흑에 가깝고 청소년들을 규정하는 수많은 말-X ,Y ,N세대 등-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부정적으로 일관된 시선은 기성세대에게 청소년들에 대한 이름 모를 불안감만을 가중시켰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은 모든 소비시장의 중요 고객이 된지 오래입니다. 광고도 오직 그들만의 언어로 제작됨으로서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심화시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성세대는 학교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도덕적 엄숙함을 강요합니다. 이런 이중적 메시지는 청소년들을 혼란시킵니다. 자주 바뀌는 교육 제도에 대학에 가야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부풀어진 입시 제도아래서 야간 자율학습 등으로 끝까지  결국 한 인간으로서 삶의 공간을 인정받지 못한 미성숙 보호대상자로서의 소외된 학생들만이 우리 나라엔 존재한다고들 합니다.

 20-29세 청소년들은 겉으로는 10대를 벗어나 기성세대로 인정받은 듯 하지만 그들의 삶이 독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기성세대로서도 또한 청소년으로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고등학교 시절 입시라는 것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사회나 대학으로 진출한 청소년들입니다. 또한 IMF이후 청소년 실업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이들을 압박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는 소외일 것입니다. 소외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즉 자신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지 못하고 하나의 인간으로서보다는 소비의 대상으로 문제덩어리로 잠재적 실업자로 치부되는 상황입니다. 시공간적의 제약으로 인해 무엇하나 하더라도 부정적인 시선을 피할 수 없는 13-18 youth과 실질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20-29 youth 들. 이들이 자신의 소외상태에서 해방되는 대희년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가 처한 상황 속의 공통점을 보며 서로가 연대해하는 첫걸음을 디뎌야 합니다. 그 첫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청소년 큰잔치이며 청소년 큰잔치는 기쁨의 성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큰잔치를 춤이나 연극, 노래만의 발표회로 국한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화는 예술적인 것도 포함하지만 결국은 삶의 양식이며 복음적인 삶을 향한 도전이며 실천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교구 차원의 큰잔치 이전에 먼저 지역교회인 본당차원 그리고 지구차원의 복음적 생활운동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시일내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첫걸음을 딛고자 합니다. 하나의 교회를 확인하고 연대함으로서 지역교회가 좀 더 활성화되고 그  활성화된 힘이 언제가 부메랑처럼 다시 큰 교회로 모아질 수 있을 거란 희망에서 시작하는 첫걸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꿈을 위해 지역교회의 학생조직이 좀 더 활성화되고 지역교회와 전체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함께 힘을 모으면 합니다. 지역교회의 학생들의 좀더 넓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큰 교회를 쳐다보고 또 새로운 일치를 이루고 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대희년의 또 다른 의미인 일치를 여기서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IV. 실천원칙

 

◆ 하나. 교회안과 밖의 만남

여기서의 교회안과 교회 밖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두 세계를 말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 밖과 교회 안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이중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성당에 오면 성가를 부르고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성당 밖에서는 대중가요를 부르고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적으로 못하도록 제재합니다. 성당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기 위해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들은 웬지 성당 안에서와 다릅니다. 마치 두 개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착각도 듭니다. 선생님들도 사정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죠. 학교나 직장에서의 생활과 성당 안에서 생활의 다름으로 갈등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복음적이란 것은 성당 안에서만 인정되는 가치인가요? 그렇다고 세상을 복음적으로 바꾸자는 구호는 왠지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 위대한 성인이나 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런 문제가 어떻게 해결 되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은 서로가 편견 없이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성당안과 밖의 두 세계가 선과 악, 복음과 비복음이라는 잣대로 자신에게 만들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성당 안의 세계에서 힙합을 하는 친구들은 날라리이고 성당 밖의 세계에서 기도를 하는 친구는 광신자입니까? 성당 밖의 세계의 것들 -스타크래프트, 길거리 농구, DDR, 테크노, 사이버세계들과 성당 안 세계의 것들-예수님, 성령, 마리아, 복음, 교리, 기도, 공동체들-은 서로를 넘나 들 수 없는 건가요?  가톨릭 청소년들은 힙합이나 테크노, 사이버세계, 영화에 심취한 청소년들도 있고 떼제나 주님 맛들이기, 생활성가, 액션송에 심취한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이 모두는 하느님의 한 자녀이며 어느 누구도 이들을 선과 악, 복음과 비복음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교사를 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사회생활. 학교와 직장에선 자신을 위해 투자해서 열심히 생활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사회생활과 또 사회에서 우선시되는 여러 가지 가치들과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그런 것들의 모순.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한계.... 함께 만나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고민거리가 주어질 겁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길 것이고 갈등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 수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일단은 만나봅시다. 이번 큰잔치가 청소년들에게 성당 밖과 안을 구분하는 벽을 허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둘 학생과 교사가 함께 주인되기

가톨릭 청소년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존재하는가? 있다면 어떤 모양일까? 가톨릭 청소년들은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갑니까? 신앙을 갖지 않은 청소년들과 구분되는 문화적 정체성이 있나요? 학생들에게는 가톨릭 청소년 문화를 형성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지만 현실인 것 같고 선생님들에게도 학생보다는 제약이 조금 덜하다는 점을 빼면 그다지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화가 건강성을 유지하려면 외부의 자극이나 도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안에만 빠져 있을 때는 타락하기 쉽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농담이 있는데 그만큼 외부의 도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다는 것일 겁니다. 학생들의 문화와 선생님들의 문화가 복음적 가치를 향한 동반관계가 되려면 서로의 문화에 도전을 던져야 합니다. 서로를 배타하기 위한 도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객관화시키며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존이 확보된 도전입니다. 일단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할 때 공유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복음을 향한 연대의 끈 말입니다. 청소년 큰잔치가 이런 만남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큰잔치가 학생들에게는 물론 교사들에게도 즐길 수 있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교사들이 인솔자로서가 아니라 큰잔치의 당당한 한 주인으로서 자리 매김 하길 초대합니다. 다른 본당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만나서 즐기면서 느껴보는 겁니다. 우리 본당 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우리 본당 선생님은 이러했을까? 등등의 생각들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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