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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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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6-03-28 ㅣ No.5008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마치 꽃비가 되어 내리던 지난 봄 날,


아내와 딸과 함께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충숙 공원에 만발한 꽃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충숙 공원은  충숙공의 자손들이 조상의 묘를 단장하면서 주위를


자연적으로 가꾸어 공원을 조성하여 도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다.


야산 능선을 따라  선산을 형성하고 능지기까지 있는, 규모 작은 왕족의 능을 연상케하는

 

질 좋은 잔디가 벨벹처럼 깔려있는 아기자기한 공원이었다.


능 입구에서서 사진을 몇 장 찍은후에 우리는 야산의 후미에 능이 내려다보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위해 공원을 돌아 산 능선을 따라 올라 갔다.


능이 끝나는 부분과 야산의 척박한 땅이 만나는 경계선에는 원형 철조망이 쳐져 사람등의

 

무분별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게도 철조망 사이에 헝크러진 털과 함께 뒷다리가


끼어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불편한 자세로 꽤 오랜시간 그 곳에 있었던 것 같이 보였다.


누군가 기르다가 버려진 유기견이 야산에서 길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랫동안 목욕을 시키지 않아 긴 털은 헝클어지고 더러웠다. 선듯 닥아가기가 망설여졌다.


야성에 길들여져 혹시 흰 이를 드러내고 우리를 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고, 물렸을


경우에 광견병이 염려되기도 하였다.


“동물구조대에게 연락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애처러운 눈망울이 마음에 걸려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다. 아내의 도움으로 철조망을 헤집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실강이 끝에 유


기견을 구해 낼 수 있었다.


야산을 떠돌며 생활하였기 때문에 사나울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강아지는 예상외로 순하고


얌전하였다.


오랜시간 잘 먹지 못하여서인지 야윈 몸이 안스럽게 느껴졌다.


철조망에서 풀려난 애완견은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하듯 우리 주위를 몇바퀴  맴돌다가


고개를 힐긋 힐긋 돌아보며 산 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멀어져갔다.


구조된 애완견은 아쉬움을 남긴채 그렇게 떠나갔다.




그날 가족 저녁식사 시간에 낮에 있었던 구조된 애완견이 화재가 되었다.


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난 아들 녀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119 구조대에 연락하지 그러셨어요? “


그 상황에서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 하는 녀석을 바라보면서 잠시


사고의다름에서 오는 세대차를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내가 한 일이 위험 부담이 내포된 불필요한 수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쉽고 간단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생각하는 아들녀석의 사고가 어쩌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야생으로 떠 돌던 개에게는 ‘긴 방황을 끝내고 안식을 찾는 계기가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에는 공감이 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에서 성장한 나는 항상 농촌의 풍경과 신록에 싱그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살아왔다.


대지에 뿌려진 씨앗에서 연록색 잎이 돗아나서 나무로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자연의 이치를


항상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 길 건너 충숙공원과 이어지는 야산 언지리에 주말농장 임대 공고가 났다.


“내가 과연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용기를 내어 임대 신청을


하였다. 내게 할당된 필지는 작년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농사지어졌던 일곱내지


여덟평되는 척박하고 버려진 듯 보이는 작은 농지였다.


그날 이후 휴일을 이용하여 땅에 계분을 사다 뿌리고 밭을 일구어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


씨앗을 뿌리는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틀에 걸친 내게 있어서는 대단히 힘든 노동일이었으나,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는 자부심과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오랜만에 일을 통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으로 일군 땅에 고랑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었다.


정확하게 일 주일 후에 신기하게도 대지를 뚫고 파란 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퇴근후에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식사를 뒤로 미루고 밭으로 쫓아가기도 하였다.


조선상추, 양상추,부추,근대.얼간이 배추....등 모두 9종의 씨앗을 뿌렸는데 돗아나는 새싹은


모두 똑같은 새순으로 보였다.


농지는 개발이 제한된 땅의 소유주가 주말농장 임대 수입으로 토지세를 내고 있다고 했다.


농장 관리는 농지 옆에 허름한 움막을 짓고 기거하시는 아주머니가 관리하고 계셨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비료를 흙에 섞고 씨앗을 심는 방법과 씨앗을 덮는 흙의 두께 등


농사에 필요한 지식들을 조언 받았다.


그날도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주말농장 입구로 들어설 때 였다


건너편 농장 관리인 집 길가에 아주머니가 보였고 먼 발치에 떨어져있던 개 한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나와 아주머니에게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뛰어와 안기는 모습처럼보였다.


어디선가 본듯한 애완견 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나는 ‘어!“하며 놀라고 말았다.


며칠전 충숙공원 능선 철조망에서 구해준 애완견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날 서푼도 안되는 동정심을 발휘한답시고 “119구조대”나 “동물구조대”에 연락을 하지않은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견은 항상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주인 옆에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 못된 생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삶의 한 단면만을 바라보게 됨으로서 형성된 내 잘못된 편견으로인해, 하마터면

 

그 애완견이 누려 왔을 대지의 자유와 부족함없는 사랑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질 뻔 했던,

 

그 아찔한 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주인을 반갑게 맞이하고있는 녀석에게 그날은 정말로

 

억세게도 운 좋은 날이었다.


그동안 내 좁은 시야에 잡혀 형성된 짧은 생각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확신을 갖고 행하였던


무수한 일들이 잘못된 결과로 나타났었지만, 내가 모르채 지나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느끼지기 시작하였다.


아!.......


나도 이제 지나간 세월이라는 그림자에 드리워져 조금은 겸손해 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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