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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외양간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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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규 [sang1127] 쪽지 캡슐

2001-11-11 ㅣ No.2202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전 태어나면서부터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을 떠나고 싶은 적도 여러 번 있었지요.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이제 삼십사 개월 된 딸을 낳았을 때입니다.

 

IMF 한파로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우리 세 식구는 행복했습니다.

 

근데 전 역시 잘못 태어난 것일까요?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밀린 임금도 다 나온다던 1999년 7월 14일, 전 산업재해를 당했습니다.

 

기계를 점검하다가 6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목뻐가 부러진 것입니다.

 

눈을 떠 보니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아빠를 부르는 딸과 안내의 목소리, 정신을 잃기를 수십번.

 

의식을 찾았을 땐 산소 호흡기와 대여섯 개의 링거줄이 내 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전신마비라는 극형을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저는 남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음 착한 스물일곱의 아내와 두 살 차이인 저는 일찍 결혼해 티격태격 다툰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토끼 같은 자식도 낳고 나름대로 행복했기에 사고로 인한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내가 그러더군요. "오빠, 세상에는 처음부터 못 걷는 사람도 있는데 오빠는 스물여덟살까지는 정상인처럼 살아 봤잖아."

 

5개월 뒤, 43kg의 작은 아내는 70kg의 저를 하루에도 몇 번씩 휠체어에 옮겨 태워 산재병원을 오가는 억센 여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난 다시 태어나도 꼭 오빠를 만나 사랑할 거야. 그동안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 줘서 이제부터 내가 오빠에게 잘해 주라고 오빠를 이렇게 만들었나봐. 그치?"하며 살포시 웃더군요.

 

할말이 없었습니다. 정말 어느 노랫말처럼 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요?

 

그래요. 세월이 지나 아내의 말이 퇴색되고 점점 잊혀진다 해도 지금 전 딸과 아내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제일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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