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구름]퍼온글 |
---|
빨간 벙어리 장갑
"엄마, 나도 장갑 하나 사 줘. 응?" 나는 단칸방 구석에 쭈그리고 않아 벌서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를 조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눈길 한 번 안 준 채 부지런히 구슬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 목적을 달성해 보려고 울먹울먹 하는 목소리로 마구 지껄였다. "씨… 딴 애들은 토끼털 장갑도 있고 눈 올 때 신는 장화도 있는데 난 장갑이 없어서 눈싸움도 못한단 말이야!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서 … 씨 … 엄마랑 같이 구슬이나 꿰래."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엄마의 재빠르던 손놀림이 갑자기 멈춰졌다. "오섭아, 누가 그랬어? 누가 너더러 구슬이나 꿰랬어?" 침착하면서도 노여움이 배어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나는 그만 생각에도 없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애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연탄 배달을 하도 많이 해서 내 얼굴이 까만 거래…."
나는 미닫이 문을 꽝 닫고 나와 눈 쌓인 골목길을 외투도 없이 걸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사실 그런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고 힘들게 밤낮 일하시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오늘 점심 시간에 눈싸움을 하다가 장갑이 없어서 손이 조금 시려웠을 뿐이었다. 나 말고도 장갑 없이 눈싸움을 한 아이들이 몇이 더 있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하면 까짓 별거 아닌데 그런데 괜히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낮에 엄마를 속상하게 한 것을 용서받고 싶었지만 저녁상을 물리자 졸음이 몰려와 아랫목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밤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밤새 구슬을 꿰는 것 같았다.
"오섭아, 이거 끼고 학교 가거라." 다음날 아침, 미적미적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빨간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를 건네주었다. "엄마……." 장갑의 손등엔 하얀 털실로 작은 꽃모양까지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갑을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학교를 다 마친 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언덕을 오르는데 저만치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달려가 빨간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꺼내 먹어라." 그러면서 내 얼굴을 만져 주는 엄마의 차가운 손. 다시 손에 끼우시던 엄마의 장갑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차디찬 연탄을 나르시면서 엄마는 낡아빠져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얇은 고무장갑 하나를 끼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연탄 공장에서 성탄절 선물로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배급해 주는 붉은 털장갑을 풀어 밤새 내 벙어리 장갑을 짜 주셨다는 것을……. 실이 얇아 이중으로 짜야 했기에 하룻밤 꼬박 새워야만 했다는 것을…….
이 글은 올만에 동호회 홈페이지에들어가 읽었지만 정말 울 어머니 울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하게되는 글 같아요 내 어렸을때를 연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