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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규 [sang1127] 쪽지 캡슐

2001-11-11 ㅣ No.2203

 빨간 벙어리 장갑  

 

 

 

"엄마, 나도 장갑 하나 사 줘. 응?"

나는 단칸방 구석에 쭈그리고 않아

벌서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를 조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눈길 한 번 안 준 채 부지런히 구슬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 목적을 달성해 보려고

울먹울먹 하는 목소리로 마구 지껄였다.

"씨… 딴 애들은 토끼털 장갑도 있고

눈 올 때 신는 장화도 있는데

난 장갑이 없어서 눈싸움도 못한단 말이야!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서 … 씨 … 엄마랑 같이 구슬이나 꿰래."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엄마의 재빠르던 손놀림이 갑자기 멈춰졌다.

"오섭아, 누가 그랬어? 누가 너더러 구슬이나 꿰랬어?"

침착하면서도 노여움이 배어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나는

그만 생각에도 없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애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연탄 배달을 하도 많이 해서

내 얼굴이 까만 거래…."

 

 

나는 미닫이 문을 꽝 닫고 나와 눈 쌓인 골목길을 외투도 없이 걸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사실 그런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고

힘들게 밤낮 일하시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오늘 점심 시간에 눈싸움을 하다가

장갑이 없어서 손이 조금 시려웠을 뿐이었다.

나 말고도 장갑 없이 눈싸움을 한 아이들이 몇이 더 있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하면 까짓 별거 아닌데

그런데 괜히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낮에 엄마를 속상하게 한 것을 용서받고 싶었지만

저녁상을 물리자 졸음이 몰려와 아랫목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밤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밤새 구슬을 꿰는 것 같았다.

 

 

"오섭아, 이거 끼고 학교 가거라."

다음날 아침, 미적미적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빨간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를 건네주었다.

"엄마……."

장갑의 손등엔 하얀 털실로 작은 꽃모양까지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갑을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학교를 다 마친 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언덕을 오르는데

저만치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달려가

빨간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꺼내 먹어라."

그러면서 내 얼굴을 만져 주는 엄마의 차가운 손.

다시 손에 끼우시던 엄마의 장갑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차디찬 연탄을 나르시면서

엄마는 낡아빠져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얇은 고무장갑 하나를 끼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연탄 공장에서 성탄절 선물로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배급해 주는

붉은 털장갑을 풀어

밤새 내 벙어리 장갑을 짜 주셨다는 것을…….

실이 얇아 이중으로 짜야 했기에 하룻밤 꼬박 새워야만 했다는 것을…….

 

 

이 글은 올만에 동호회 홈페이지에들어가 읽었지만

정말 울 어머니 울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하게되는 글 같아요

내 어렸을때를 연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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