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포인터(Po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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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6-20 ㅣ No.3518

나이 드신 분들은 '뽀인터'라 부릅니다. 사냥개 중에 그런 종류의 개가 있지만  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철도 역에 가면 지금은 거의 파란불 빨간불로 진입, 정지 신호를 하지만 예전에는 기차가 들어 오고 나갈 때 45도 각도로 내려지는 지시기가 기차 역 전후에 서 있어서 반드시 45도로 그것이 내려져 있어야만 기차가 들어 오고 또 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을 가리켜 포인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레일의 구동축과 굵은 와이어로 연결되어 있어서 포인터를 젖히면 레일이 젖혀지면서 지시기가 내려지고 레일이 서로 연결되고 포인터를 바로 세우면 지시기가 90도가 되면서 레일이 분리되는 조작장치였습니다.

이 포인터는 역무원이라 해서 누구나 마음대로 만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부역장급인 조역 정도의 직책이 있어야만 포인터를 젖히거나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있었던가 봅니다.

저의 삼촌이 6.25 때 제 고향 경북 영주역의 조역일을 하셨더랬습니다.

 

전쟁이 나서 북쪽에서 공산군들이 밀려 내려와 소백산을 넘자 삼촌은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하셨지만 제 사촌아이들이 쌍둥이를 포함해서 무려 5명이나 되다보니 아장아장 걷는 그 아이들을 데려 가느라고 일행에서 뒤처지셨고, 의성쯤 내려 가니까 국군이 아니라 이미 인민군이 먼저 내려와 있다가 삼촌에게 빨리 예전 근무지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하면서 그러지 않을 때는 고향에 남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화가 미친다고  협박을 하더랍니다.

다시 영주역에 와 보니 그 사이에 세상이 뒤집혀서 예전에 역에서 지게로 손님 짐을 나르던 아카보시(赤帽:짐꾼)가 역장이 돼 있더랍니다. 어쩔 수 없이 역에 근무하는 데 유엔군의 제트기가 수시로 날아와서 걸핏하면 철로를 부셔 버리는 바람에 낮에는 기차가 전혀 다니지 못하고 온종일 철로복구작업에만 전념하셨답니다. 생전 안 해보셨던 노동일이라서 무척 고되셨겠지요.

 

그날밤 삼촌이 숙직당번을 하는데 꾸벅꾸벅 졸음을 쫓다가 직전역인 안정역에서 열차가 떠났다는 종소리 연락을 받고 잠결에 급히 뛰어나와서 포인터를 젖힌다는 게 그만 큰 사고를 내고말았습니다.

열차가 들어올려면 2번 포인터를 젖혔어야 하는 것인데 삼촌이 그만 3번을 젖히는 바람에 낙동강전선으로 내려 갈 군수품을 가득 실은 열차가 그만 고장난 화물객차가 늘어 서있는 영주역 대기선로로 들어 서서 쾅 부딪치면서 바퀴를 하늘로 처든 체 발라당 자빠진 것이었습니다.

수송관인 인민군 장교가 차에서 내려와서  "이 아새끼레 당장 쏴 죽여버리갔어"하며 발길질로 사정없이 두드려맞고 있을 때 사고소식을 듣고 내무서장이 급히 달려와서

"온종일 철로 복구작업에 시달려서 이 사람이 졸다가 그랬으니 제발 용서해달라"고 사정을 해서 겨우 겨우 영창행으로 결정이 났는데

그 내무서장이 같은 마을에 살며 어릴때부터 함께 뛰놀았던 삼촌 친구였답니다.

 

어느날 밤에. 친구인 내무서장이 영창에 있는 삼촌을 불러 내더니 내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는

"자네. 며칠만 어디 가서 숨어 지내게. 절대로 집으로는 가지 말고. 자네 가족들한테는 내가 이미 숨으라고 말했으니 찾을려 말고 자네나 어디든 가서 꼭꼭 숨어 있게. 곧 국군이 밀어닥칠 거야" 하더랍니다.

"그럼 자네는?"하니까

"난. 북으로 가야지." 하더래요.

"그러지 말고 나하구 같이 어디에 가서 숨어있다가 나중에 자수를 하면 안될까?"라고 얘기했지만

"틀렸어. 난 이미 너무 많이 알려졌어" 하더랍니다.

 

삼촌이 며칠 숨어지내다가 국군이 들어온 후에 영주역에 나가 보니 세상이 다시 뒤집혀서 삼촌처럼 피란을 가지 못하고 역에 남아있었던 이들은 부역자라고 하여 옛 정을 완전 무시하고 같은 역무원들끼리 사정없이 동료를 패고 영창을 보내고....

결국 삼촌은 며칠 전까지 내무서 영창이었던 경찰서 영창에 다시금 갇히는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이게 뭐야? 나한테 무슨 죄가 있어? 살기 위해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야. 나라 잘못 골라 태어난 죄밖에 더 있냐? 왜 내가 열흘 사이에 두번씩 이 감방에 갇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하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더래요.

국군장교가 발길질을 하면서

"야. 이 빨갱이 놈들아. 너들이 빨갱이 밑에서 일을 했으니 빨갱이란 말이야. 이 자식들아. 이 부역자 새끼들아"하며 패고 차고 하면서 심문을 하는데 하도 아프고 억울하기에 도저히 못 참겠더래요.

"죽일려면 차라리 죽여라. 나는 애국자다. 내가 그날 밤에 군수품 가득히 실은 그 열차를 탈선 안 시키고 그냥 내려보냈으면 더 많은 국군들이 죽었을 텐데 내가 그 열차를 전복시켰으니 나는 애국자가 아니냐?"하며 죽기 살기로 소리를 질르셨답니다.

"이 자식이 미쳤나? 너 지금 뭐라 그랬어? 탈선은 무슨 탈선사고야?" 하며 또 때리는데도 그날 밤 사고 건을 끝내 얘기를 했더니 그 장교가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더니만

"처음부터 그 얘기를 하지 그랬소? 당신은 애국자가 맞소. 내 상부에 보고해서 당신이 복직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 주리다" 하더랍니다.

결국 삼촌은 복직을 했고 정년퇴직시까지 차장 ,역장까지 잘 다니시다가 10여년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몇 가지 묵상할 점이 있지 않습니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중에 기억합시다.

과연 저들이 우리가 타도해야 할, 죽여야 할 원수 들입니까?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일찌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라는 기도는 남과 북, 북과 남 사람들이 함께 해야할 기도입니다.

아직도 타도해야할 대상이라고만 저들을 생각하신다면 차라리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치 않으니 저희들을 용서하지 마시고'라고 기도하십시요.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삼촌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생각했던 점입니다.

"어떤 선택이 바른 선택이냐?" 하는 점입니다.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길이 잘못 된 선택일 수도 있고 실수로 잘못한 선택이 오히려 잘 한 선택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직 바른 선택은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선택 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곧 그분의 섭리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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