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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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7-09 ㅣ No.3528

 

오늘은 아침 일찍 서울역에 나가서 울산행 새마을호를 타고 구미시에 다녀왔다.

11시에 구미시청 4층 강당에서 개최된 旺山 허 위(許 蔿)선생 기념사업회 창립총회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동대문구 청량리에서 신설동까지 큰 길을 왕산로(旺山路)라 하는데 그것은 한말의 의병장 旺山 허 위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길 이름이다.


왕산 허 위 선생은 구한말 경상도 선산(지금은 구미시 임은동)의 김해 허씨 문중에서 태어나 일본에 빌붙은 조정이 마땅치 않아 출사를 마다하시며 오직 후학을 가르치는 선비로 계셨으나 외국군을 동원해서 동학을 징벌하는 조정에 격문을 날리고 의병을 모우니 조정에서 그를 잡아 벌을 주지 않고 그 기상이 가상타하여 출사를 권유해서 통정대부, 통훈대부로 중추원 평리까지 역임하셨다.

그러나 일본 낭인들이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그는 고향으로 낙향하여 의병을 모우는 창의 격문을 써 붙이고 4형제가 가산을 팔아 의병을 모집,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이인영과 합류하여 13도 창의군을 조직하였고 일본군에게 정식으로 날자와 시간을 정하여 과감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서울(한양) 진공작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작전계획 당시는 왕산은 김천에서 창의한 이인영이 지휘하는 13도 창의군의 총참모장이었으나 출동직전에 갑자기 이인영의 부친께서 돌아가셔서 상주가 되어 낙향함에 따라 왕산이 총사령관이 되어 서울 침공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빈약한 무기의 민병으로 일본군과 일본군에 훈련받은 신식군인들을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나 보다. 끝내 망우리 고개를 넘지 못하고 13도 창의군부대는 패퇴했고 왕산은 그 후 전곡 연천 등지를 다니며 항일의병을 모집하고 해주에서 일본군과 격돌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생을 마감하셨다.

 

1962년에 정부는 왕산 허 위 선생에게 건국훈장 1급을 추서하고 선생이 살아서 그토록 밟고 싶어 하셨던 동대문구의 청량리와 신설동 구간을 님의 호를 따서 ‘왕산로’라 칭하게 한 것이었다.


몇 해 전에 내가 우리 구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동대문구의 역사이야기”를 삽화를 넣어가며 아이들 취향에 맞게 만들어 출판할 때 국조인물고 등 여러 서적을 뒤져서 허 위선생의 업적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허 위 선생의 출신지인 구미시에서는 왕산선생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더니만 근래에 선생이 ‘이 달의 독립인물’ 등으로 한말의 의병대장으로 널리 알려지자 이제야 기념사업회를 결성해서 생가 터를 복원하고 전시관 등을 지어 선생의 유적지를 만든다 하니 비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반갑고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어서 왕산로가 있는 동대문구의 대표로 내가 다녀온 셈이다.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많은 내외귀빈들이 오셨고 각 방송국, 경북의 일간지 주간지 등 언론인들, 그리고 구미시에 있는 각 기업체의 대표들이 많이 와서 앞으로 일이 잘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 쓰리다. 멀리 러시아에서 온 허 위 선생의 직계자손을 오늘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서였다. 작년 광복절 기념식 때 정부에서 해외에 계신 독립유공자 가족을 초대했는데 미국에서 오신 허 위 선생의 손녀를 비롯하여, 오늘 뵌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그분, 그리고 키리키스탄이라던가 러시아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허 위 선생의 후손들을 내가 모시고 왕산로를 거쳐 망우리 고개 넘기 전에 있는 13도 창의군 기념탑을 안내해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 느꼈던 그 아픔이 다시 또 느껴졌기 때문이다.


허 위 선생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으나 아버지가 항일투쟁을 해서 옥고를 치르자 왜놈들의 감시뿐만이 아니라 핍박까지 받게 되자 가족이 모두 간도를 거쳐 러시아로 이주하여 사할린으로 갔다. 그후 스탈린 독재 때 강제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로 흘러들어갔고 이제는 3세들이 러시아 여인과 결혼을 하고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결혼을 하고 벽안의 외국인 모양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이제 와서는 왜 우리 할아버지가 돈 주고 산 땅을, 아니 녹으로 받아서 소유했던 땅을 나라가 왜 가져가느냐? 돌려 달라 재판을 걸고 심지어 이겨서 찾아가는 넘들도 있는데 왜 나라를 위해 가산을 모두 팔아 목숨까지 바친 그 후손들은 지금도 정처 없이 떠돌며 혼혈이 되어 가느냐 이 말이다.

가슴이 아프다. 정말 속이 상한다.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가?

나의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은 이 혼란에 이 아픔에 이 분노에 처한 내게 뭐라고 하실까?

오, 주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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