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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프란치스코의 영성(目次):3.2ㅡ3.2.4[사랑이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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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7-02-20 ㅣ No.7361

3.2 사랑이신 하느님


3.2.1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삼위일체의 신비는 성인의 영신 생활과 기도에서 중심이었다. 성인은 삼위일체를 활동하시는 하느님으로 보고 성부를 생명의 창조주로서, 성자는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로서, 성령은 성화의 작업을 이룩하시며 사람들을 사랑의 일치로 초대하시는 영으로서, 각각의 위(位)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꼬는 성부, 성자, 성신께서 각 영혼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신비에 감탄하면서 삼위일체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이것들을 실행하며 끝까지 항구하는 모든 남녀들에게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하실 것이고’(이사 11,2) 그들을 당신의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기에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 됩니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아버지를 하늘에 모시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아버지의) 마음에 드시고 겸손하시고 평화로우시고 달콤하시고 사랑할만 하시고 또한, 무엇보다도 바랄만한 그런 형제와 아들을 모시는 것이 오, 얼마나 거룩하고 좋은 일인지!” [참조 :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II 48-50, 54-56]


3.2.2 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때, 성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정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신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꼬의 기도의 분위기, 영성의 특징, 형제회에 첫째 가는 법은 사랑이고, 형제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같은 사랑의 열정은 그의 신심,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마리아에 대한 신심, 인간들에 대한 친밀감,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그의 형제적 태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3.2.3 주님의 영과 그 거룩한 작용


“주님의 영”이라는 표현은 성 프란치스꼬의 영성에 있어서 특이한 요소이며 성서적 배경에 기초를 둔 요소이다. 성 프란치스꼬가 말하는 “주님의 영”이란 신앙 안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빛, 확신, 길, 사랑, 자극제가 되는 각 사람 마음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사실 이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사람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고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우리 인격을 개선해 나가시는 성령이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활동은 성인의 설교에 나타났다. 프란치스꼬의 설교는 열정과 기쁨이 풍부하며 그의 내적 생활에서 우러난 간단하고 단순한 설교였고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설교였다. 성 프란치스꼬는 우리가 하는 식으로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강론 준비는 구원의 큰 신비를 묵상하는 방법이었다. 설교할 때는 말주변과 효과를 “주님의 영”에 맡겼다.


성인은 형제들이 어느 때 주님의 영으로 인도되고 어느 때 육으로 인도되었는가를 분별할 지혜를 가졌다. 그리고 그 분별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느님의 종이 주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를 통하여 어떤 선을 행하실 때 그의 육신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천한 자로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작은 자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참조 : 권고 12]


한편, 육과 영의 용어를 성인이 많이 쓰는데, 성인의 이 사상은 성 바오로의 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육이라고 할 때는 성령을 자유로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장애물을 포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 육의 정신이란 이기주의와 같다.


모든 선과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차지하려는 교만과 욕심을 일컫는다. 반면에 주님의 정신이란 각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과 은총의 생활, 성화와 봉사의 길인 애덕의 생활을 뜻한다.


3.2.4 영의 자유


프란치스꼬 성인은 아씨시의 주교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놀라운 마음의 자유를 체험하였다. 성 프란치스꼬가 참된 영신적 자유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세가지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다.


① 하느님을 대하는 그의 인격적이고 직선적이며 신뢰가 있는 태도
② 성령의 은총이 자기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개방함
③ 특히 다른 형제들을 지도하는 방법들


형제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성인은 형제들의 생활과 자유를 세밀한 규칙으로 제한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성인은 회칙에서 특히 형제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장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하였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 혹은 “하느님의 뜻에 맞다고 행각할 때에” 등이다.
이렇게 해서 성인은 “형제들의 충실함을 믿고 형제회가 언제나 장소와 환경 그리고 추운 지방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참조 : 제 2회칙 4, 2] 적응할 것을 바랬다.


성인은 형제회의 조직과 활동이 자유 정신으로 생기를 갖기를 원했으며, 따라서 수도회의 제도를 보존하기 위하여 세밀한 규칙이나 계힉 등을 세우는 것보다도 각 형제의 인격적 카리스마가 으뜸을 차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프란치스꼬는 “대수도원적”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대의 보속과 고행의 양식 앞에서 성인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였다.


영의 정신을 최고의 원칙으로 세워왔던 프란치스칸 카리스마는 다른 수도회와는 달리 한 “학파”를 이루지 않았다. “프란치스칸 영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의 특징은 바로 자발성과 정해진 노선의 결핍이며, 정해진 노선보다는 생활 양식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칸 철학” 혹은 “프란치스칸 신학”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의 특징은 “이성”에 앞서 “사랑”이 우선하며, “진리”에 앞서 “선”을 목적으로 하는 의지의 으뜸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 안또니오, 성 보나벤뚜라, 둔스 스코뚜스, 오캄, 라이몬 룰, 브린디시오의 성 로렌조’와 같은 학자들은 각각 다른 특징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진리를 향한 프란치스칸들의 다양한 성격을 한 “학파”로 묶을 수는 없다.


 

http://xn--9p4b15e.kr/bbs/zboard.php?id=a_11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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