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성당 게시판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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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필호 [laue] 쪽지 캡슐

1999-10-22 ㅣ No.621

당신 친구들이 당신의 생일 cake에 촛불을 켜주었을때

내 친구들은 힘없이 물고 있던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당신이 오늘도 약속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을때

나는 오늘도 없을 우연을 기대하며 당신이 좋아 했던 옷을 챙겨 입었고

당신이 오늘 본 영화내용을 친구들과 얘기하며

그 영화에서 느낌이 좋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때..

나는 우리가 왜 만났고 왜 싸웠고,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지를

빈 술잔을 채우는 친구에게 얘기 하며 채운잔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무 생각없이

호출기에 메세지를 남기면 연락드리겠다고 녹음했을때

나는 그 목소리라도

밤새도록 반복해 들으며 전할 수 없는 메세지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일기장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때

나는 보여주지 못할 편지를 끄적이며

어김없이 찾아올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당신이 그 해의 첫눈이 반가와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고 있을때

나는 당신이 내 호출기 번호를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출이 올때마다 철렁내려 앉는 가슴을 느끼며 첫눈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책상정리를 하다 미쳐버리지 못한 내 편지를 읽으며 의미없는 미소로 아무런 느낌없이 그 편지를 휴지통에 넣을때

나는 그 옛날 내가 보낸 편지의 어느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머리속으로라도 다시 고쳐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새로 나온 음반의 어느 가사가 너무 좋다라며 음미하고 있을때

나는 나하고 상관없는 슬픔인지 알면서도 무너지는 그 가사에  또 한번 가슴이 내려 앉아 한께 무너지고 있었고...

당신이 한 남자를 얻었을때..

나는 영원히 한 여자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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