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릴리가 본 '철도원'

인쇄

이 칠년 [Lilly] 쪽지 캡슐

2000-02-23 ㅣ No.1740

지난 금요일 회사에서 영화 티켓이 나와서..난 ’철도원’을 보겠다구 신청을 했다.

무지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니깐..

 

영화의 시작~~

스크린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그속을 가르며 달리는 디젤 기관차의 기적소리...

마치 영화 ’러브레터’를 연상케 하더군.

 

99년 일본에서 이 영화가 개봉 되었을때 450만 관객이 동웠됐다구 하던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왜 이 영화가 일본 개봉당시에 그렇게 많은 관객동원을 했으며, 일본 공무원들의 단체관람 행렬이 이어졌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영화 <철도원>이 전후 황폐해진 일본의 재건을 위해 희생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한 국민들에게 바치는 영화이기 때문이 아닌지..

 

그래서인지 가족보다도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수행하는 철도원 오토마츠에게서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딸과 아내의 죽음앞에서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무사같은 무표정의 얼굴과 군복과도 같이 근엄한 철도원의 멋진 제복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 눈덮인 플랫폼에서 오토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는 아내와 딸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깊은 애잔함을 주었다.

 

회상장면을 통해 우리는 오토가 어떻게 딸과 아내를 잃게 되었는지를 목격하게 되며, 융통성없는 미련함을 그의 아내처럼 원망을 하지만 한편으로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빈틈없는 직업의식(?).. 현재 내 모습과 정 반대라는 생각이..^^

 

눈내리는 플래폼에서 떠나는 기차를 향해 보내는 신호와 빨간 수기는 언제나 빈틈없이 정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토역을 맡은 다카쿠라 켄의 모습은 어린 시절 고지식하고 무섭기까지 했던 옛날 우리나라 전통적인 아버지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집안 일로 인해 남자의 바깥 일을 방해 받을 수 없다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전형인 우리들의 아버지.

 

아내와 딸이 죽던 날도 근무일지에 "이상무" 라고 쓸 정도의 놀라운 직업정신은  무서우리만큼 전체주의적인 인상을 갖게 한다.

 

개인은 없고 조직의 목적만 존재하는 그런 전체주의..

 

교묘하게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정서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시골역의 폐선으로 일자리를 잃지 않고,눈덮인 플랫폼에서 장열하게(?) 죽음을 맞음으로써 명예로운 철도원으로서의 자리를 지킨다는 이야기쯤에선 자연스레 고개가 기울여 진다.

 

그치만 솔직히 말한다면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오토의 삶은 실패였다. 그가 가족을 버리면서 까지 지키고자 한 일은 무엇인가? 물론 그도 죽기전 예상치 않은 딸의 방문으로 진정으로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되고 행복한 죽음을 맞게 되긴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진정한 철도원이었다고 추앙받고 다들 그의 가족의 죽음과도 맞바꾸는 철도원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게 아닌가???

 

 

 

 

 

암튼 영화를  보고나서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새하얀 눈밭위를 달리는 기차와 통쾌한 기적소리, 그 위에 오버랩되는 폐선직전의 시골마을 호로마이역을 지키는 철도원 사토 오토마츠(다카구라 켄)의 아내 사토 시즈에(오타케 시노부)의 "테네시 왈츠"가 흥얼거려지는 설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3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