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평화계곡]하느님의 섭리를 어찌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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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11-10 ㅣ No.2095

†찬미 예수님

 

며칠전 경북 성주에 있는 평화계곡을 다녀왔습니다.-왕초 수녀와 버림받은 이들이 꾸려가는 보금자리-

차창밖으로 이파리 없이 달려있는 감나무를 보며 가을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가지붕을 손질하다가 우리를 맞이하는 그들의 해맑은 웃음뒤에 감추어져 있으리라 여기지는 증오심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피붙이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이들의 행복해 하는 삶을 보며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 라는 기적(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왕초(최소피아 수녀를 이렇게 부름)가 그 동안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셨는데

버림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영양실조와 불규칙적인 식생활로 대개 이빨이 없어, 식사때마다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왕초가 아주 어려운 사람 서너명만이라도 이빨을 해 주리라 마음을 먹었다더군요,

그래서 없는 살림을 쪼개고 쪼개어 거금(1인당 150만원?)을 마련하고 날을 잡아 치과의사를 초빙, 치료를 부탁했는데,

 

한달 후에 날아온 진료비 청구서를 보고 가슴이 철렁, 기절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더군요.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도 그렁뱅이에게 이빨을 해준다는 발상은 조금 호화(?)스러운 것이지만, 사람대접 받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 강행한 것인데, 예산을 서너 배나 초과한 것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년치 먹을 예산과 맞먹는 액수인데 부족한 재원을 마련할 일부터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 그 날 왕초가 잠깐 딴 일을 보는 사이 원래 치료 받기로 한 4명만이 아니고 식구들 모두 정기 검진하는 줄 알고 의사앞에 줄을 서서 수술을 하고 말았다더군요 정작 이빨을 해야할 한 친구는 빠지고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난거죠, 하도 화가나서 성당에 올라가 주님께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했다더군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참을 묵상한 끝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사회복지를 한답시고 인간적인 방법에만 몰두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달았다 합니다.

설사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입히고 먹여주는 피조물이 아닙니까?

왕초의 계산을 넘어 주님께서 바로 버림받은 그들과 함께 계심을 다시한번 보았던 거죠.

하느님께서는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도 바다에 나무를 심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태어난 후 도저히 걸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한 청년이 평화계곡에 버려진 후 이제는 산을 오르며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자신이 걷고 있음을 손님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에는 아무 조건도 순서도 없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따라 모두들 왜 이리 웃음이 해픈가? 하고 이상히 여겼는데 거렁뱅이(?) 주제에 모두들 금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예수승천상을 모시고 순회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일어난 평화계곡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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