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옥수수 한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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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a [kbs001] 쪽지 캡슐

1999-09-17 ㅣ No.497

늦은 여름 어느날 밤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입니다.

 

저는 후배 녀석들과 함께 한잔(?)의 술을 거하게 한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녀석들은 뭐가 그리 서운한지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혜화동 교차로 버스 정류장에는 (지금은 잘 안나오시죠..) 구운 가래떡과 찐

 

옥수수와 같은 주점부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죠...

 

녀석들이 한발, 한발 내게 다가오더니 그러더군요.

 

"누나, 옥수수 먹구싶다... 하나만 사주라!"

 

하는 수 없이 옥수수 세자루를 샀죠..

 

두 자루는 후배 녀석들이 하모니카를 불며 신나게 뜯어대고,

 

마침 나는 버스가 와서 옥수수 한 자루를 들고 탔죠.

 

명색이 나도 여자라 생판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옥수수를 먹기엔 깡다구니가 부족했죠.

 

’집에 가서 먹어야지...’

 

늦은 밤이라 버스 기사는 시내 도로가 마치 고속도로인냥...

 

마구마구... 밟아 대더군요...

 

덕분에 30분 거리를... 15분만에 주파해 주더군요..

 

버스에서 조신하게(?) 내리고는 지하도를 건너려고 한 발 내딛었을 때였습니다.

 

순간, ’여기서 넘어지면?...

 

바로 그런 얼토당토 않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떼굴떼굴...

 

사람이 죽기전엔 살아온 일들이 필름처럼 마구 돌아 간다죠?...

 

정말 그랬습니다.

 

떼굴, 떼굴...

 

’아, 이제 난 죽는구나...’

 

혹시나 살더라도 정신 이상으로 평생 살지 않게... 머리만은 조심, 조심...

 

그렇게 한참을 되뇌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10초나 지났을까...나에겐... 30분도 훨씬 지난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아주머니 한분이 벗겨진 구두 한짝과, 쇼핑백, 핸드백을 주워다 주며 말했습니다.

 

"아가씨... 안다쳤어?... 아이구... 세상에..."

 

그러나... 그런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벌떡 일어나기엔 포지션이 너무도... 황당해서리..

 

계단 위쪽으로 뻗친 두다리...

 

헉!...

아픈건 문제도 아니다... 일어나자... 하며 일어나려는데...

 

내 손엔... 뭔가 묵직한 것이 쥐어져 있었죠...

 

옥수수 한자루...

 

구두, 핸드백, 쇼핑백,... 모두 내팽게치고...

 

오로지 내손엔... 옥수수 한자루...

 

헉...

 

그날따라 왜 난 스커트까지 입었을까...

 

지금도 저는 계단을 내려가는게 아주 고생스럽다우...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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