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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2일 성 율리아노 자선가/자유와법♬Jesus JoyofMansDesi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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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4-02-11 ㅣ No.1612

 

축일:2월12일

성 율리아노 자선가

St. JULIAN the Hospitaller

San Giuliano l'ospitaliere

St. Julian the Poor Man

Giuliano = appartenente alla ’gens Julia’, illustre famiglia romana, dal latino
(pertaining to the ' gens Julia', illustrious roman family, from the Latin)

 

 

전설에 의하면, 그는 귀족이었는데, 실수로 인하여 그는 부친과 모친을 죽였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이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그는 아내와 함께

강을 건너는 여울 곁에 살면서 여행자들에게 도움을 베풀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였다.

 

어느 날, 추위로 인하여 동사 직전에 있는 사람을 구하여 주었더니,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죄를 사했노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하여 자기의 침대에 나환자를 잠 재우기도 하였다.

그는 호텔 경영자, 여행자, 그리고 뱃사공의 수호 성인이다.

 

 


[성 줄리앵의 전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가 배출한 위대한 사실주의 작가 플로베르가
그의 만년에 철저한 고증을 거치고 심혈을 기울인 끝에
1876년에 탈고한 단편소설입니다.
플로베르는 한 가지 사물에는 오직 한 가지 표현만이
가장 적확하다는 신념을 갖고
그러한 표현을 찾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몇날며칠이라도 골방에 틀어박혀 고심하였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질 만큼
성실한 리얼리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짧은 단편소설 하나를 탈고하는 데에도
반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쓴 동기는
작가 고향에 있는 어느 교회의 그림유리를 보고
착상을 얻은 것이라고 하며,
그 줄거리는 자끄 드 보라진의 [황금전설]이라고 합니다.
저는 예수회에 들어 오기 전에 이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후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이 소설을 축약하여 전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번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아
다시 이 소설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전설 따라 구만리를 떠나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은 분들이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는 뜻 깊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리라고 믿고 희망합니다.

-심백섭SJ (성 이냐시오의 영성 카페에서)

 

 

St. Julian Slaying His Parents. St. Nicholas Saving Three Sisters From Prostitution. - Masaccio.
Predella from the Pisa Altar. 1426. Tempera on panel.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aldegalerie, Berlin, Germany

 


[성 줄리앵의 전설]

1.
줄리앵의 부모는 어느 산허리에 있는 숲속의 성 안에 살고 있었다.
성주인 아버지는 선량한 교인이었고
어머니는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한 덕택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산모는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에 잠이 깨자,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 속에서
무슨 그림자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낡은 수도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그가 부인의 머리맡으로 가까이 가서 말하였다.
"어머니여, 기뻐하시라! 그대의 아들은 성인이 되오리라!"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줄리앵의 아버지는 새벽녘에 잔치에 온 손님을 모두 보내려고
성문 밖까지 나와 있었는데,
홀연히 거지 하나가 그의 앞에 안개 속에 우뚝 서서 말하였다.
"아아! 아아! 그대의 아들! .... 많은 피로다! ... 큰 영광이로다! ....
항상 행복되리! 임금의 집안이로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성주가 준 적선을 품속에 집어 넣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성주는 이 환영을 수면 부족으로 인한 머리의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주 부처는 저마다 비밀로 감추고 있었지만,
둘다 같은 애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표지를 받은 어린이라고 해서 소중히 여기면서
그의 신변을 각별히 조심하였다.
이가 다 날 때까지 이 갓난 애는 한 번도 울어보지를 아니하였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 어머니는 노래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용사로 키우기 이해 승마를 가르쳤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승 하나가 그에게
성서와 산수와 라틴어와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는 그가 머지 않아 용맹한 장군이 될 것을 확신하였다.
어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고상하게 자선을 베푸는 그가
앞으로 대주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성당에서 아무리 오랫동안이라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기도에 열중했다.
어느 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린이가 문득 고개를 들어서 보니까,
조그만 흰 생쥐 하나가 벽의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다음 주일날도 그 생쥐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어린이는 일요일만 되면 늘 그 생쥐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것이 골칫거리가 되었고 그 생쥐가 미워졌다.
그래서 생쥐를 없애 버리려고 결심했다.
제단 앞에 과자 부스러기를 놓고는 몽둥이를 들고
구멍 앞에서 생쥐를 기다렸다.
생쥐가 나오자 소년은 몽둥이로 가볍게 한번 때렸다.
피 한방울이 바닥돌에 얼룩을 지었다.
소년은 죽은 생쥐를 바깥으로 내어 던졌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성벽의 통로를 걸어서 돌아오는데,
토벽 꼭대기에 큰 비둘기 한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소년은 돌맹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그 돌에 비둘기 한 마리가 맞아 도랑 속으로 푹석 떨어졌다.
비둘기는 날개가 부러져서 나뭇가지에 걸려 퍼덕이고 있었다.
새의 생명의 끈기찬 힘이 소년에게 짜증을 주었다.
그는 새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새의 경련을 보자 그의 심장은 뛰기 시작하였고,
육감적인 쾌락이 그의 가슴을 채웠다.
마침내 새이 몸이 뻣뻣해지자 소년은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그날 저녁, 부친은 사냥을 배워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는 사냥하는 법을 전부 적어 놓은 책을 찾아 주었다.
소년은 백로, 까마귀, 새매 따위의 새들을 사냥하였다.
어느 겨울 날 아침이었다.
소년은 날이 새기 전에 장비를 갖추고 길을 떠났다.
세시간 뒤에 소년은 어느 산 꼭대기에 다다랐다.
눈 앞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고 그 끝에 야생의 염소 두 마리가 보였다.
소년은 다가가서 한 마리의 옆구리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나머지 한머리는 질겁을 하고 허공을 뛰어 내렸다.
다시 벌판으로 내려운 소년은 학들이 나직히 날면서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나곤 하였다.
소년은 학을 하나하나 몽둥이로 때려 잡았다.
그러는 동안 호수 위에 줄리앵이 알지 못하는 짐승 하나가 있었다.
그가 쏜 화살 하나가 짐승을 잡았다.
그러다가 도로로 나왔는데, 조그만 사슴 하나가 풀숲에서 내달았다.
비단 사슴이 또 한마리 나타났고 곰들과 공작새들도 나왔다.
소년이 그것들을 다 죽여 버리자 딴 사슴들과 딴 곰들과 공작새들이 또 나왔다.
그리고 온갖 짐승들이 나왔다.
줄리앵은 그것들을 죽이는 데에 피로를 몰랐다.
마치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삶이라는 듯이 그 사냥에만 열중했다.
마치 모든 것이 꿈속같은 기분이었다.
해가 지려고 하였다.
골자기 저쪽에서 수사슴 한 마리, 암사슴 한 마리와
어미의 뒤를 따라가며 젖꼭지를 빨고 있는 어린 사슴 한 마리가
그의 눈에 띄었다.
활이 다시 한번 윙 소리를 내었다.
아가 사슴이 즉사하였다.
어미 사슴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깊은 울음 소리를 내었다.
찢어지는 듯한, 사람의 소리와 거의 같은 소리였다.
줄리앵은 화가 나서, 화살 하나로 그 암사슴을 쓰러뜨렸다.
커다란 사슴이 소년을 보고 한 걸음 뛰어 올랐다.
줄리앵은 화살을 쏘아 이마에 맞혔다.
그 큰 수사슴은 이마에 박힌 화살을 깨닫지 못한 듯,
두 시체를 넘어 달려들 듯이 다가왔다.
줄리앵은 공포를 느끼며 뒷걸음쳤다.
그 사슴은 걸음을 멈추고 섰다.
종소리가 울리는 동안 두눈이 불덩이처럼 빛나고 세 번 되풀이하여
"저주! 저주! 저주가 있으라! 아, 이 잔인무도한 놈이여.
언젠가 너는 네 아비와 어미를 네 손으로 죽이리라!"
사슴은 덜컥 무릎이 꺾이며 두 눈을 감고 죽었다.
줄리앵은 갑자기 전신의 피로를 느꼈다.
어떤 불쾌감, 어떤 무한한 슬픔에 휘싸였다.
이마를 두 손안에 파묻고 소년은 오랫동안 울었다.
그날 밤에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만 그 큰 사슴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그 사슴의 예언이 머리 속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것을 떼어버리려고 몸부림을 쳤다.
석달 동안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병상 머리 맡에서 고민을 하며 기도를 드렸다.
유명한 의사들을 모두 불렀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다가 젊은이는 다시 기력이 소생했다.
그리고는 다시 사냥에는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였다.
부친은 아들을 즐겁게 하려고 사라센족의 큰 검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는 투창 등 기사로서의 수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줄리앵은 금방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안개가 자욱한 때,
뜰안 저쪽 끝에 흰 날개 둘이 과수의 가지만한 높이에서
팔랑팔랑 날고 잇는 것이 소년의 눈에 띄었다.
소년은 황새로 확신하고 투창을 던졌다.
찢는 듯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큰 두 개의 뿔이 달린 모자는 투창으로 못박혀 벽에 붙어 있었다.
줄리앙은 성을 빠져 나와 도망질을 쳤다.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St Julian and the Redeemer-Andrea del Castagno
c. 1453. Fresco. Santissima Annunziata, Florence, Italy

 

2.
소년은 굶주림, 목마름, 열병, 이 따위를 알게 되었다.
비바람이 그의 피부를 단련해 주었다.
그리고는 타고난 기량과 용기, 지혜로 일대의 수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성령의 보호로 그는 전투 중에 죽을 위기도 면하였다.
그는 교회사람들, 고아들, 미망인들, 그리고 노인들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도망한 노예들,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 재산이 없는 빈민 등이
그의 깃발 밑으로 모여들어 한 군단이 편성되었다.
줄리앵은 이름이 높아졌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가.
언젠가는 프랑스의 황태자를 구조하였고, 영국의 왕도 구하였으며,
예루살렘의 성당기사도 구하였다.
폭정하는 군주를 찾아가 시정을 촉구하기도 하였고,
여러 인민둘을 해방시켜 주었다.
남쪽 프랑스의 황제가 스페인의 회교도 왕에게 속아 지하 감옥에 갇혔다.
줄리앵은 황제를 구출하여 주었고
결국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성 하나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전쟁을 할 필요도 없어졌고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팔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내는 방금 자리에 들었고, 남편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편의 귀에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무슨 동물들의 그림자와 같은 것을 얼핏 보았다.
유혹은 너무 강하였다.
남편은 아내에게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곧 얼마 뒤 낯모르는 사람 둘이 찾아왔다.
한 노인과 한 노파였다.
먼지 투성이였고, 자기들은 줄리앵의 부모임을 알렸다.
줄리앵이 성으로 돌아오지 않자 두 늙은이도 성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주머니도 바닥나고 구걸을 하면서 다닌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줄리앵의 아내가 황제의 딸임을 알게 되자
옛날 예언이 떠올라 놀랐다.
어머니는 옛날 예언을 떠올렸지만,
지금의 영광은 그 영원한 빛의 서광에 불과하리라고 예감하였다.
줄리앵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그 부모가 기다리지 않도록
그 부모를 자기 침상에 눕혀주고 방문을 닫아주었다.
두사람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줄리앵은 무엇에 홀린 듯이 온갖 짐승들을 쫓아다니다가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첫닭우는 소리가 대기를 흔들었다.
밤새 무엇에 홀린 듯이 속아서 헛탕을 친 그는 울홧통이 치밀었고
학살에 대한 갈망이 다시금 그를 붙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려 부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 생각이 나자 마음이 누그러져
가만히 들어가서 아내를 놀래 주리라고 생각하였다.
신을 벗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 쪽으로 다가가자 머리 둘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는 주춤 물러섰다. 그리고는 꼭 미치는 줄 알았다.
다시 확인해 보니 수염이 만져졌고 확실히 남자였다.
격분이 터지면서 그는 두 남녀 위로 덤벼들어 단도로 찔러버렸다.
임종의 숨결이 잦아지면서 아주 먼 곳에서 또하나의 소리가 이어 나왔다.
그 옛날의 그 큰 사슴의 울움소리였다.
그러다가 그는 모든 일을 알아차렸다.
그는 아내에게 장레식을 부탁하고 모든 것을 물려 주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Madonna and Child, with St. Lawrence and St. Julian.- Gentile da Fabriano.
c. 1423-25. Tempera on panel.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USA.

 

 

3.
줄리앵은 사람들에게 생계를 구걸하면서 돌아다녔다.
농부 앞을 가까이 갈 적에는 무릎을 꿇엇다.
그의 얼굴이 얼마나 슬퍼보였던지 그를 본 사람은 적선을 거절하지 않았다.
겸허하는 마음에서 그는 제 일신상의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손으로 십자를 그으면서 도망질을 친다.
그리고는 모두 문을 닫아버리고 다시는 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를 위협하고 돌을 던진다.
어디에서나 배척을 받으므로 그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다.
가끔 산위에서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도시의 소음이 들리면
세상 사람들의 삶에 섞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올라
도시를 찾아 내려가곤 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무픞 위에 어린이들을 올려 놓고 앉은 모습을 보면
흐느낌으로 목이 메어 도망치듯이 돌아 오고 만다.
그는 깊은 애정이 담긴 눈으로 목장 안의 새끼 말을 바라보고
둥지 속의 새들을 바라보지만,
그를 보면 금수조차도 모두가 달아나 버린다.
줄리앵은 고독을 찾았다.
그러나 밤마다 꿈속에서 부모를 죽이는 비극이 되풀이 되곤 한다.
줄리앵은 고행의 옷을 입었고
언덕 꼭대기의 교회까지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고행을 하였다.
그러나 대죄를 범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였다.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끔찍스러워 보였으므로
그것을 면할까 하고 갖은 모험 속에 몸을 던지기도 하엿다.
화재불 구덩이 속에 뛰어 들어가 몸을 못쓰는 병자를 구해 내기도 하고
계곡 속에 떨어진 어린이들을 구해 내곤 하였다.
그러나 어떤 심연도 그를 죽이지 않았고
어떤 불길도 그를 태우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도 그의 고민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더 이상 고민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죽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어느날 우물가로 갔는데 눈앞에 아주 여윈 노인이 나타났다.
하도 슬퍼 보여서 울지 않을 수 없었는데 노인도 따라 울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얼굴이 부친과 닮았음을 깨닫자 소리를 질렀다.
이런 무거운 기억의 짐을 지니고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날 큰 강가에 나섰다.
흐름이 빠르고 건너기가 위험한 강이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감히 그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낡아빠진 배 한 척이 있었다. 한쌍의 노도 있었다.
그러자 그는 남들에게 봉사를 함으로써 생애를 보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먼저 물가에 내려갈 수 있는 축대를 지으려고 거대한 돌을 옮기려다가
몇번이고 물속에 빠져 죽을 뻔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배를 수리하고 조그만 오두막 하나를 지었다.
나루터가 생기자 나그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줄리앵은 수고 값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남은 양식을 준 사람도 있었고
헤어진 옷을 준 사람도 있었으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욕설을 퍼부어 준 사람도 있었다.
줄리앵이 조용히 타이르면 모욕으로 대꾸하지만
줄리앵은 그들에게도 축복해 주며 자족해 하는 것이었다.
작은 밥상 하나, 걸상 하나, 낙엽을 깐 침상 하나, 흙으로 만든 공기 셋,
그것이 그의 재산 전부였다.
여러 달 동안 줄리앵은
사람의 그림자 하나도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번번히 그는 두눈을 감고 기억 속에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다가 또 홀연히 두 사람의 시체가 나타나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머니, 어머니, 가엾은 우리 어머니를 자꾸만 되풀이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그가 잠이 들어 있을 때였다.
어렴풋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강 건너 둑에서 들려 왔다.
강건너의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
초롱에 불을 켜고 그는 오막을 나섰다.
배를 저어 저쪽 둑에 가니 한 사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헤어진 헌뱅이로 몸을 쌌는데,
초롱불을 가까이 대어 보니,
무서운 문둥병의 종처가 그의 전신을 덮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에는
마치 임금님과도 같은 위엄이 떠돌고 있었다.
배를 저어 강을 건너고 난 뒤에 두 사람은 오막 안으로 들어 왔다.
사나이가 "아이, 배가 고파!" 라고 말하자
줄리앵은 남아 있는 음식을 다 주었다.
다음에는 "아이, 목이 말라!" 라고 말했다.
줄리앵은 물주전자를 찾아 왔다.
물주전자를 집어 들자 그윽한 향기가 스며 나왔다.
어디서 온 것일까? 포도주였다.
문둥병자는 단숨에 다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아이, 추워!" 하는 것이었다.
줄리앵이 불을 붙여 고사리단을 태우자
문둥이는 그리로 가서 불을 쬐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점점 기운이 빠지면서, 종처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거의 꺼져가는 음성으로
"당신 침대!" 라는 말을 중얼거리듯 뱉었다.
줄리앵은 병자를 부축해 침대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위에다가 배의 돛을 펼쳐서 덮어 주었다.
문둥이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뼛속에 얼음이 든 것 같아! 내게로 좀 바짝 다가 와 줘!"
그래서 줄리앵은 돛을 들치고 병자 옆의 낙엽 요 위에 나란히 누웠다.
문둥이는 고개를 돌렸다.
"옷을 벗어. 당신 체온으로 날 좀 데워줘!"
줄리앵은 옷을 벗었다.
그가 낳던 날처럼 알몸이 되어 다시 자리 속에 들어가 누웠다.
허벅다리에 병자의 피부가 닿았다.
뱀보다 차갑고 숫돌처럼 거친 피부였다.
줄리앵은 병자에게 용기를 돋구어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 병자는 숨을 가빠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아! 죽으려나봐!... 좀더 이리 다가와.
내 몸을 좀 데워 줘요.
손으로 말고! 몸 전체로 말야! "
줄리앵이 그의 몸 위에 완전히 올라가 누웠다.
입과 입이 닿았고, 가슴 위에 가슴이 닿았다.
병자는 줄리앵을 꼭 껴안았다.
그러자 병자의 두 눈은 홀연히 별빛 같은 빛을 발하였다.
머리칼은 햇빛처럼 빛났고, 콧김은 장미향을 풍기고 있었다.
화로에서는 구름같은 향연히 올라왔고 강의 파도는 찬미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넘치는 황홀감과 초인적인 환희가
의식이 흐릿해진 줄리앵의 혼 속으로 홍수처럼 흘러들었다.
그리고 두 팔로 줄리앵을 포옹한 그 사나이의 모습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커져서 그의 머리는 오막 이쪽 벽면에 와 닿았고,
발은 저쪽 벽면에 가 닿았다.
오막 지붕은 날아가 버리고 거기에는 푸른 궁륭이 덮여 있었다.
그리하여 줄리앵은 그 푸른 공간을 올라간 것이었다.
그를 하늘 위로 안아 올린, 우리의 주님 예수와 얼굴을 마주 대고서.

 

이것이 줄리앵 성인의 전설이다.
거의 여기에 적힌 그대로를 내 고향 교회의 그림 유리에서 볼 수 있다.

 

 

 

 

 

 

진리의 광채 VERITATIS SPLENDOR - 교황 요한바오로2세.1993.08.06  

 

I. 자유와 법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창세 2,17)   

 

35. 창세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아담(사람)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16-17).

 

계시는 이 같은 표현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결정하는 권한은 인간에게 속하지 않고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만큼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는 만큼, 드넓게 뻗어나가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유는 무한정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앞에서 저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윤리법을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실로 인간 자유는 그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하고도 완전한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홀로 선하신 한 분 하느님만이 인간에게 무엇이 선인지를 완전히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 사랑 때문에 이 선을 사람에게 계명으로 제시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법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를 보호하고 촉진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의 일부 문화적 경향은 윤리에 있어 몇몇 사조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같은 윤리적 사조는 자유와 법 사이에 가상적인 상충을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설들은 개인이나 사회적 집단에게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자유는 “선들(가치)을 창조할” 수 있고, 따라서 진리보다 우위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 자체는 일종의 자유의 창조물처럼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자유는 이제 윤리적 자율성을 주장하게 되고, 이 윤리적 자율성은 사실상 절대 주권에 이르게 됩니다.

 

39. 이 세상뿐 아니라 인간 자체도 스스로의 보살핌과 책임에 맡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갖도록 하셨습니다”(집회 15,14).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창조주를 찾아 자유로이 완성에 이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완성에 이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인격적으로 완성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실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그 지배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지력과 자유 의지에 따라 세상을 이루어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를 통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며 확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는 현세 사물의 자율성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세 사물의 자율성이라는 말로써 피조물들이 하느님께 의존하지 않는다거나

피조물과 창조주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인간이 피조물을 멋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67)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러한 자율성의 개념은 인간 자신과 관련하여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며 마침내는 하느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창조주 없이 피조물이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면 피조물 자체의 정체도 흐려지고 맙니다.”68)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善)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2-

 

 

 

 

 

 

 

 

♬Jesus Joy of Mans Desiring-The St Philips Boys’ Choir

update 2005.2.10.

 

 

 

 

 

 

 

 

 

 

 

 

 

 

 

 

 

 

 

 

 

 

 

 

 

 

 

 

 

 

 

 

 

 

 

 

 

 

 

 

 

 

 

 

St. Julian the Hospitaller, or "the Poor Man" [Feast day February 12], was a popular saint in Western Europe

- his life was recounted in the Golden Legend - and his name was attached to many churches and charitable institutions.

It is his legend which made him popular. He has been taken as the patron of ferrymen, innkeepers and circus performers

 

 

 

 

 

 

 

 

 

 

 

 

 

 

 

JULIAN the Hospitaller

 

Also known as

Julian the Poor

Memorial

12 February

Profile

Noble layman; friend and counselor to the king, he was married to a wealthy widow. A stag he was hunting predicted he would kill his own parents. Julian moved far away to avoid his parents, but they found him, and came to make a surprise visit. His wife gave them her and Julian’s bed; Julian killed them, thinking they were his wife and another man.

 

As penance, he and his wife travelled to Rome as pilgrims seeking absolution. On his way home, to continue his penance, he built a hospice beside a river, cared for the poor and sick, and rowed travellers across the river for free.

 

Once, after having helped many, many travellers, Julian gave his own bed to a pilgrim leper who had nearly frozen to death. When they had him safely settled, the man suddenly revealed himself to be an angel. The visitor announced that Christ had accepted Julian’s penance; the angel then disappeared.

 

Immensely popular in times past; scholars today think the story is likely to be pious fiction, mistaken for history.

Patronage

boatmen, carnival workers, childless people, circus workers, clowns, ferrymen, fiddlers, fiddle players, hospitality, hotel-keepers, innkeepers, jugglers, knights, murderers, pilgrims, shepherds, to obtain lodging while travelling, travellers, wandering musicians

Representation

carrying a leper through a river; ferryman; hart; holding an oar; man listening to a talking stag; oar; stag; with Jesus and Saint Martha as patrons of travellers; young hunter with a stag; young man killing his parents in bed; young man wearing a fur-lined cloak, sword, and gloves; young, well-dressed man holding a hawk on his finger

 

 

 

 

 

 

 

 

 

San Giuliano l’ospitaliere

 

12 febbraio

Patronato:Albergatori, Viaggiatori, Macerata

Etimologia: Giuliano = appartenente alla ’gens Julia’, illustre famiglia romana, dal latino

 

San Giuliano L’Ospitaliere, protettore della citta, e rappresentato a Macerata dappertutto, come protagonista o come santo laterale, nelle chiese, sulle porte d’accesso intorno alle mura, nelle opere conservate in pinacoteca, nell’antico sigillo dell’universita, nelle medaglie commemorative del comune, nei palazzi signorili, sugli stendardi.

La sua immagine piu antica, a cavallo, e del 1326, una scultura in pietra un tempo nella Fonte maggiore e oggi nell’atrio della pinacoteca comunale; la piu scenografica nelle chiesa delle Vergini mentre tiene in mano il modellino della citta; la piu moderna nel ciclo della vota del presbiterio del Duomo dove negli anni 30 e stata affrescata la storia della sua redenzione dopo un tragico, incredibile evento. Gustave Flubert ne aveva gia tratto una novella-romanzo, Saint Julien l’Hospitalier, raccontando con tinte fosche la giovinezza di questo fiammingo patito per la caccia anche violenta, cavaliere infaticabile e carattere vendicativo che non aveva esitato a uccidere il padre e la madre coricati nel suo letto credendoli la moglie e il suo presunto amante.

Poi una vita di espiazione e di preghiera dedicata all’accoglienza dei poveri e al traghetto dei pellegrini da una riva all’altra di un periglioso fiume. Ma sull’identita del santo ci sono non pochi dubbi, in parte espressi anche dalla curia maceratese e che un viaggio a Parigi per confrontare la storia del San Giuliano cui e dedicato il duomo di Macerata con quella della chiesa gemella ; Saint Julien-le Pauvre nel quartiere latino, non hanno chiarito del tutto. La chiesa parigina, costruita dai benedettini tra il 1170 e il 1240 su una originaria cappella del VI secolo dedicata a Saint Julien-l’Hospitalier, faceva parte della ventina di chiese edificate nei dintorni di Notre -Dame, tutte scomparse tranne quella. Situata nel cuore del centro universitario del XII e XIV secolo, fu luogo d’incontro di studenti e mastri, quando le lezioni si tenevano all’aria aperta, e al suo interno si riuniva l’assemblea per l’elezione del Rector Magnificus.

Pare che Dante vi ascolto le lezioni di Sigieri e che certamente la frequentarono Alberto Magno, Tommaso d’Aquino e Petrarca e piu tardi Villon e Rabelais. Solo quando furono costruiti nelle vicinanze i collegi della Montagne Sainte Genevieve tra i quali si impose quello della Sorbona,, la chiesa perdette di importanza. Quanto al santo cui e intitolata, la fama popolare ha sempre fatto coincidere il Giuliano storico con l’ospitaliere, tant’e che in veste di traghettatore compare in piedi sulla barca in un bassorilievo medievale incastrato nella facciata numero 42 della rue de Galande, di fianco alla chiesa: nel vicino giardino, che la separa dalla Senna e dalla fiancata destra dell’imponente Notre-Dame, una fontana in bronzo, questa recente, porta scolpiti tutti intorno a cascata i fatti salienti della sua storia. Ma l’opuscolo predisposto dalla parrocchia di rito greco-melkita e il prete interpellato propendono per l’identificazione del santo con Giuliano martire di Brioude. Il Giuliano leggendario, al quale la voce popolare ha dato il nome di ospitaliere rendendolo patrono di fatto anche nella chiesa di Parigi, sarebbe percio usurpatore del titolo e in ogni caso, come ribadisce anche l’attento custode, non sarebbe riconosciuto come santo dall’autorita ecclesiastica. Un bell’impiccio per tutte le chiese francesi, italiane e spagnole che lo hanno scelto come loro protettore.

E la reliquia del braccio sinistro conservata nel duomo di Macerata a chi dovrebbe appartenere? Il miracoloso ritrovamento avvenne il 6 gennaio del 1442, e l’atto notarile che lo descrive e depositato nell’archivio priorale mentre le ossa, dopo varie collocazioni, sono conservate in una urna d’argento cesellata dall’orafo Domenico Piani.

Quello che conta e che in nome del patrono, santo reale o possibile, si aggreghino interessi culturali e iniziative utili alla citta proprio nel senso e nella direzione dell’"ospitalita". La pensa cosi il comitato "Amici di San Giuliano" che si e costituito con spirito attivo e che non si preoccupa tanto dei riconoscimenti ufficiali quanto il promuovere in suo nome in tempi tanto angoscianti il valore dell’accoglienza.

Il 14 gennaio 2001, riprendendo un’antica tradizione, e stata innalzata in cielo una stella luminosa in onore del santo e la sua storia raccontata per le vie, quasi in veste di banditore, dall’attore Giorgio Pietroni mentre risuonavano i canti della Pasquella, continuazione allegra di un evento che sarebbe durato troppo poco se esaurito nel giorno dell’Epifania.

 

 

Autore: Donatella Don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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