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루도비꼬의 일본어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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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vico] 쪽지 캡슐

2001-04-17 ㅣ No.1635

 

              안녕하세요? 루도비꼬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애독해주시고 많은 격려와 메일을 보내 주심에 참으로 감사를 드리며,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하라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먼저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고 질문을 하시길래, 어떻게 대답을 하면 조금이나마 더 몸에 와닿게 할 수가 있을까?하고 참으로 오랜 시간을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별 뾰쪽한 방법으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부친께서, 제가 태어난 해부터 ’귀신 잡는 해병대’의 장군님이셨으므로 집안에 미국 장군님들이 자주 오셨고, 진해에 기지사령관 시절엔 거의 매일 한미 장군 가족파티가 관사에서 열리곤 했지요. 아주 멋진 장군정복을 입고 부인들은 미스 코리아 빰칠만 한 야회복을 입으시고 군악대의 왈츠에 맞추어 멋진 춤을 추는, 요즈음 영화 [Shall we dance]와는 격이 틀린, 응 [Sound of music.]라는 영화를 기억 하지요? 거의 비슷한 광경을 떠 올리면 됩니다. 그런 일에 익숙 하다보니 물론 아주 어릴 때였지만,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라든지,공포감 같은 것은 없었지요. 제가 막내라서 저희 집에 오시는 모든 초청받은 장군들은 저를 한 번씩 안고 뽀뽀세례를 퍼붓곤 했답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부속 국민학교 5,6학년 때 특별활동반에서 영어를 처음 접했을 때,아침이란 단어 [breakfast]를 배우고 발음 연습시, 그 반에 홍콩과 하와이영사 아들이 같이 있었는데,주로 그 녀석이 발음을 잘하니까 수업이 그 아이 위주로 가곤 했지요. 그런데 이것이 웬 일 입니까? 영어를 담당하시던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신 교감선생님께서 제 발음이 제일 좋다고 하잖아요? 영사 아들들은 X씹은 얼굴이 되었음은 물론이구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네요.

 

왜? 제가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면,어떤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결정적인 계기가 꼭 필요 하기 때문입니다. 초장에 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 쉽거든요.그러한 계기는 남들이 해주는 것이므로 얻기가 쉽지가 안으니, 본인들의 귀한 자식들에게 야단만 치시지 마시고, 칭찬을 기회 잡아서 한 번 멋지게 해보십시오, 왜 있잖아요? 동화에 외투입은 행인의 외투를 세찬 바람이 벗겼나요,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이 벗겼나요? 부드러움은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답니다.

 

 

자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루도비꼬의 일본어 투쟁기]를 시작합니다.

 

어릴때 부터 저의 부모님들께서 비밀 이야기를 하시면, 일본어로 하시는데 눈치로 때려 잡느데는 항상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놈의 일본말 나도 한 번 하고 말리라,’ 하고 작심을 했건만 그 당시 상황으로는 따로 배울 수 기회가 전혀 없었지요. 제 2외국어라고는 불어나 독어만 배우는 한심한 시절 이었으니까요.

 

때는, 루도비꼬가 군에 있을 때입니다. 후배 장교가 결혼을 했는데 이 친구가 자기는 학벌도 집안도 별로라서, 3년 정도 일어 공부를 해서 지금은 괜찮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미 합동근무를 하는 특수한 여건을 갖춘 부대라서 영어를 꼭 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빽써서 온 장교들이 상당 수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좌우지기 저도 일어를 혼자서 조금씩 배우고 있었습니다만,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아마 그 당시 박성원 선생님저 연두색 책으로 기억이 납니다만, 그 친구는 놀랍게도 테이프까지 갖추고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제대로 공부를 한다는 그 자세가 저로서는 너무 충격적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운명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같이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여름에 휴가를 받아서 서울로 올라와 명동 ’사보이’ 호텔 지하의 ’구디 구디’라는 바에서 카운터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옆 자리에 아주 멋지게 생긴 신사가 있었고, 양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촌시러워서 통행금지와,양담배 단속하던 무지 몽매이던 시절이었지요,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지요?

 

그래서 칵테일을 만들고 하는 바텐 아가씨에게 담배를 주문 하니까, 이 신사님께서 자기 담배를 권하더라구요, 받아 피우는데 영어로 ’육군이냐’고 물어요, 해군이라고 했더니, 그러냐고 하면서 자기는 일본의 오까야마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고 같이 술을 마셨답니다. 후에 제가 이 아저씨에 대해서 소개를 하겠지만,참으로 제가 존경하는 일본의 제 후견인입니다. 신사분은 영어가 달리고 저는 일어가 달려서 한문으로 필담도 하는데 바텐 아가씨가 아주 유창한 일어로 우리둘 사이를 통역을 하느 것 이 아니겠어요?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제가 가뜩이나 일어를 배우려고 하는 차에 바텐 아가씨가 다시 보이더라구요.  

 

’시게나리’아저씨와 주소를 주고 받고 재회를 약속한 후 부대로 귀한 한 후 근무를 하다가 집에서 아저씨가 서울에 왔다고 연락을 받으면 같이 만나곤 하였지요, 그때마다 일어가 제 발목을 잡곤 하였지요. 제대를 한 후 회사에 취직이 되어서 과연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론은 ’외국어를 하나 더하자’라고 정했습니다.

 

신정이 막 지난 ’82년 1월 초순에 무작정 회사 바로 앞의 일어학원엘 갔지요. 원장님이 연세가 60을 훨씬 넘어 보이는 깐깐해 보이는 노신사 분이었지요. ’일어를 배우러 왔습니다,새벽에요,회사가 바로 앞입니다.’라고 부탁을 드리고, 당장 내일부터 시작을 하기로 결정하고 등록을 했지요. 그 다음날 새벽 6시 시작이었지만,5시 40분엘 도착 했더니 수강생은 하나도 없고, 원장님만 야전 침대에서 주무시고 게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추운 겨울에 난로도 안켜고 웅크리고 이불 한 채만 덮고 주무시는 스승님을 보니까, 참으로 안되 보였습니다. 난로도 켜고, 물도 끊이고, 대충 청소도 하고 부스럭 거리니까, 스승님께서 일어나시어 웃으시면서 반갑게 맞어 주시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루도비꼬의 일어는 완전히 일대일의 개인지도가 되버렸고, 저또한 그렇게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속에서 매일 새벽 버스타고, 단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없이, 다니니 스승님께서 감복하시어 진짜로 온 힘을 다해서 열성적으로 가르치시며 자네 같은 학생 처음 보았다고 하시데요. 가르치는 스승님이나, 배우는 루도비꼬나, 한마디로 정성으로 똘똘 뭉친 영양가 만점의 소림사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 스승님께서 자기들은 왜놈들 치하에서 참으로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징용도 갔다오고 했으니, 다시는 왜놈에게 당하지 않고 경쟁을 하려면 일어를 알아야 한다고 정신훈련을 게을리 하질 안았지요. 제가 3달 만에 스승님으로부터 그만 하산을 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참으로 열심히 한 결과이지요. 일어가 쉬우니 그렇다고라, 정말로 모르셔도 한참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일어도 웬만큼 하려면 무지하게 어렵지요.

 

제가 막내라서 저의 부모님들은 거의 일어에 관한한 일본사람 빰칠 정도로 잘하셨고 누님은 외대에서 일어를 본격적으로 전공을 하였으니 제가 일어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음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지요, 거기다가 오리지날 일본인 후견인까지 저의 일어실력이 나날이 늘어 간다고 칭찬을 하고, 일본에 출장은 가거나, 아저씨 집에 방문을 하면(숙식제공은 물론, 비행기 표까지) 커다란 파티를 열어주곤 하였는데, 나 때문에 열어준 파티고, 한국에 있는 자기 아들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저를 소개하곤 했지요, 그곳에서 일어와 영어를 섞어서 재미있게 날밤을 새우고, 파티에오신 모든 일본분들이(엄청 유명인, 야꾸자 오야붕도 있었고, 참의원 , 영화배우 등등) 영어를 어느정도 하면서 일어도 어느정도 하는 저를 선망의 눈초리로 보곤 하였지요. 다음날은 그 집 막내딸의 안내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실컷 구경도하고, 영어를 지도하기도 했답니다.

 

 

자아, 여러분!

외국언어를 배우시려면 실생활에 필요한 언어를 먼저 배우고, 자기가 일하는 분야의 말과 글은 나중에 배우셔야 합니다. 항상 시험 때문에 외국말을 배우니 수년 아니, 십 수년을 배워도 않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 셋째도 정성입니다.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말이 있지요? 영어로 무엇이더라? 에이, 모르겠다. 이번기회에 영어를 뿌리 뽑겠다고 결심 하신 분은 제가 올린 글 을 다시 보시면서, 즐기기만 마시고 그곳에 나온 영어 격언이나, 다른 영어문장을 완전히 숙지 하세요.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프로 영어강사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사람이지요. 저도 시간이 나면 학원에 가서 수강료를 지불하고 영어교습을 받습니다. 이상하지요? 강사가 몇 일 지나서 물어 봅니다, 왜 오셨냐고요, 그러면 잘 지도하면 스카우트를 하러 왔다고 하지요. 항상 영어를 공부하니까, 제 아들 녀석들이 ’아빠는 왜 영어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고 물어 오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 합니다. ’이 녀석아, 그래야 네 놈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라고요. 아빠의 열심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귀한 귀감이 됩니다.

말로만 공부하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행동을 보여야지요.

 

대충 마칠 때가 되었는데, 다시 한 번 강조를 합니다. 아주 정성을 들여서 실생활 영어를 학습하시되,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고, 녹음고, 원어민 테이프를 듣고 발음 교정을 하고, 또 큰 소리로 읽고……………………

이렇게 하시면 4-6개월이면 대충 잘 하게 됩니다. 원본영화를 구입하셔서 자꾸 반복연습도 좋은 방법 입니다.

 

장시간 제 졸작을 읽어 주시어 대단히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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