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내 마음의 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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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7-23 ㅣ No.5150

 

힘 이라는 책을 끝내고 다시 틱낫한 스님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책을 올립니다.

 

 

어린 시절, 나는 북 베트남의 탄호아 지역에서 살았다. 열 살 때 나는 표지에 한 수행자의 흑백 그림이 그려져 있는 한 권의 잡지를 발견했다. 그 수행자는 풀밭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름답게 앉아 있었고, 매우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의 얼굴은 고요하고 편안했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그림을 바라보자, 나 자신도 매우 평화로워졌다.

당시 어린 손ㄴ이었던 나는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풀밭에 앉아 있는 수행자의 그림을 보았을 때, 나도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가 누구인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그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후 나는 그 수행자처럼 아름답고 평화롭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내가 열한 살 때의 어느 날, 우리 반 선생님이 근처에 있는 산 정상으로 소풍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 산 정상에는 은자 한 명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은자란 혼자 살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밤낮으로 수행에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나는 전에 은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그를 만날 것이라는 생각에 흥분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소풍 전날, 우리는 가져갈 음식을 준비했다.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고, 그것을 바나나 잎사귀로 쌌다. 또 주먹밥에 찍어 먹으려고 참깨와 땅콩, 소금도 준비했다. 그대는 아마 주먹밥을 참깨와 땅콩, 소금에 직어 먹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말 맛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마실 물을 끓었다. 왜냐하면 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물을 가져가는 것도 멋진 일이었다.

150명의 학생들이 줄지어 들판을 걸어갔다. 우리는 가섯 조로 나뉘어서 걸어갔다. 주먹밥 꾸러미를 손에 든 우리는 한참 만에 산기슭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에는 아름다운 나무와 바위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그것들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최대한 빨리 산을 올라갔다. 실제로 우리는 계속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지금은 잘 알고 있는 걷는 명상의 즐거움을 모르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오로지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꽃과 나무, 파란 하늘을 느끼며 명상의 시간을 갖는 법을 몰랐었다.

친구들과 함께 정상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벌써 물을 다 마셔 버였기 때문에 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은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대나무와 짚으로 만든 은자의 오두막을 발견했다. 집 안에는 작은 대나무 침대가 하나 있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나는 은자가 많은 아이들이 산을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의소란스러움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 버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고 또 실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산속을 돌아다니다 보면 은자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이였을 때, 나는 많은 꿈을 갖고 있었고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 곁을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속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거기 있었더라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살랑거리는 바람이나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 같았다. 수정처럼 맑고 영롱한 소리였다. 그 매력적이고 평화로운 소리에 이끌려 나는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갈중도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나는 돌에 둘러싸인 자연의 샘을 발견했다. 샘물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물이 솟아나는 곳을 다양한 크기의 바위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작은 물웅덩이처럼 보였다. 물은 깊었지만 어찌나 깨끗한지 바닥까지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물이 너무도 신선해 보여서 나는 무릎을 꿇고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느낀 행복을 그대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물은 놀랄 만큼 감미로웠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했다!

나는 완전한 만족감을 느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온자를 만나고 싶은 소망도 어느덧 사라졌다. 더없이 평화롭고 행복해서 누구라도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내가 은자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은자가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모습을 샘물로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행복해졌다.

나는 샘물 옆 풀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저만치 걸려 있는 나뭇가지가 보였다. 나는 완전히 긴장이 풀려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 동안 잠을 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3,4분 정도 흘렀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어지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늘을 배경으로 저만치 걸려 있는 나뭇가지와 아름다운 샘을 보고나서야, 나는 비로서 모든 것을 기억해 냈다. 다른 친구들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산을 걸어내려갔다. 숲 밖으로 걸어나오는데, 한 문장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것은 한 줄로 된 시와 같은 것이었다.

’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을 맛보았네’.

나는 언제까지나 그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돌아가자 친구들이 나를 보며 기뻐했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지만,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경험한 은자와 샘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 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내게 일어난 일은 매우 소중하고 신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조용히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주먹밥과 참깨는 정말 맛있었다.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으면서 나는 행복과 평화를 느꼈다.

그날 나는 샘의 모슴을 한 나의 은자를 만난 것이다. 샘의 모습과 물 떨어지는 소리는 지금도 내 안에 생생해 살아 있다. 그대 역시 어디선가 자신의 은자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샘물이 아니라 그것만큼 경이로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그대 자신만의 은자를, 그것은 바위, 나무, 별, 아름다운 것양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대는 아직 자신의 은자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깊이 바라본다면 그대의 은재는 그대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그대 안에 있다. 사실 그대가 찾고 있는 모든 멋진 것들은 그대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행복과 평화, 기쁨은 그대 안에 있다. 그대는 굳이 다른 곳으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

 

그대의 진정한 집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지금 이 순간 푸른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아름다움과 만나는 일이다.

평화는 우리 주위 모든 곳에 있다. 이 세상과 자연 속에,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의 몸과 영혼 안에 있다. 그 평화와 만나는 순간 우리는 치유되고 탈바꿈된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행의 문제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길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새롭고, 경이롭고, 우리의 존재를 치유해 주는 것들과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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