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聖 프란치스코의 영성(目次)3.1 - 3.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길]

인쇄

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7-02-13 ㅣ No.7348

3. 聖 프란시스코(Francesco d'Assisi) 영성


 

어떤 성인의 영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 분의 저서나 편지 등의 글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프란치스꼬 성인은 자신의 영성에 대한 특정한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의 ‘형제회에 보낸 편지’, ‘회칙’,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 ‘유언’, ‘권고’ 등의 자료들을 통해서 그분의 영성을 아는 수 밖에 없다.


이제 이러한 프란치스꼬 성인의 몇 개 안되는 편지 등의 글을 바탕으로, 부족하지만, 성인의 영성에 대해 알아보기 한다.


3.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길 (제 1회칙 1,1)


성 프란치스꼬의 영성의 핵심 목적은 '복음의 단순성'에로 돌아감과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이 가져다 주신 생명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있다. 즉,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크리스챤 성소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3.1.1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가 성 프란치스꼬에게 계시되셨다.


성 프란치스꼬는 유언의 시작에 자신이 먼저 걸었던 소명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꼬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 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들이 나에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참조 : 유언 1-3]


성 프란치스꼬는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 특히 나병환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한 몸에 지닌, 가난하게 태어나시고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형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전하였다. 성인은 나병환자를 통해서 회개하였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시중을 들면서 자신을 수련하였다. 회개의 과정에서 형제인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성 프란치스꼬의 경우 외에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3.1.2 “거룩한 복음의 양식을 따라 산다는 것” (유언)


성 프란치스꼬는 신학자들을 참으로 존경하였다. 그래서 그는 유언에서 “모든 신학자들과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영과 생명을 넣어주는 사람들로서 받들어 존경해야 합니다.” [참조 : 유언 13]


성 프란치스꼬는 비록 성서 학자는 아니었지만 성서에 대한 그의 지식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성서에 대한 성 프란치스꼬의 지식은 무엇보다도 체험에서 나온 것이고 거룩한 말씀의 작용에 순명한 그는 그 어느 곳보다도 전례생활에서 그 맛을 보았다.


성인은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가졌고, 그것들이 부당한 곳에서 발견되면 합당한 곳에 모시라고 형제들에게 단호히 명했다.[참조: 유언;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 형제회에 보낸 편지;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성인은 또한 학문적인 관심에 이끌려 성서를 이해하려는 형제들을 주의시켰으며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것을 생활양식으로 삼을 것을 형제들에게 간곡히 권장하였다. 그것들은 “영과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참조: 제 1회칙 22; 유언;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사도가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고린토 3,6)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문자(성서)의 정신을 따르기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권고 7]


따라서 복음은 생명을 주지 않으면 죽은 글이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꼬는 자기를 따르는 첫 제자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만들려고 할 때 복음 이외의 다른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그는 복음을 단순히 어떤 도덕적이고 수덕적인 규범의 근거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항상 복음적인 권고를 첫 자리에 두었고, 회칙의 법적인 명령과 법칙은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문자가 영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중요한 것은 형제들이 주님의 계명을 실행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말씀은 깊은 뜻을 지닌다: “거룩한 복음과 자기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약속한 주님의 계명을 굳게 실행할 때 참된 순명 위에 자신들이 머물러 있음을 모든 형제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들을 축복하시기를!”[참조 : 제 1회칙 5, 17]


3.1.3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 (1첼라노 84)


성인은 복음을 묵상할수록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Kenosis)의 신비 안에서 발견하였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육화의 선물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특은을 받으셨기에 성 프란치스꼬는 성자의 육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또한 성모 마리아께도 드렸다.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창조하셨음 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분을 영원히 영화로우시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이시며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사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참조 : 제 1회칙 23, 3]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한 걸음 한 걸음은 성인에게 그 분을 더 가깝게 따르고 모방하게 하는 초대였다. 그래서 그는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말씀을 사용한다.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심을 시작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꼬가 아니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꼬와 함께 인간적 주관주의가 강하게 발생하자 모든 일에서 자아를 주장하는 당대의 사회는 새로운 종교적 열정으로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형태의 완덕의 목적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다음 두가지 생활 형태의 통합으로 성취될 것이다.
첫째,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의 고요함 속에 생활하는 형태,
둘째, 사도직의 생활 형태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도는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의 풍요와 힘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성 프란치스꼬가 본 그리스도는 신학적이며 또한 신비의 그리스도이시며, 묵상과 신비적 체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다. 십자가는 그에게 비하를 말해 주고 있었으며 자기 포기와 내적 가난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난에 대한 성인의 묵상은 단지 동정심으로 움직여지는 주관적 묵상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은총을 감사한 성인은 기쁨에 넘친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구원의 신비에 관한 프란치스꼬 성인의 신학적 사상을 보면 종말론적 요소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꼬 성인은 강생과 수난의 은총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성부께 감사드린 다음, 구원사업의 마지막 은총인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감사를 바친다.


3.1.4 성체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성자의 현존


회개한 후에 성 프란치스꼬가 받은 은총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에 대한 신앙심과, 성체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아 보는 것이었다.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현존 자체도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구속사업의 연장으로 성인은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에 입맞추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모든 형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존경과 영예를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평화롭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참조 : 형제회에 보낸 편지 12-13]


또한 성인이 성체 안에서 공경한 그리스도는 지상에 사셨던 역사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이시다.” [참조 : 형제회에 보낸 편지 22]


성체에 대한 신앙심은 성체의 봉사자들인 사제들을 존경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많은 성직자들이 성체의 거룩한 신비를 소홀히 다루는 것을 마음 아파했기에 형제회의 사제들에게 이 점에 관해서 간곡히 부탁하였다. “나는 주 안에서 사제가 된 나의 모든 형제들과 사제가 될 형제들과 지존하신 분의 사제가 되려는 뜻을 가진 형제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미사를 거행할 때.... 거룩하고 깨끗한 지향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의 참다운 제사를 존경심을 가지고 순수한 사람이 되어 순수하게 드리도록 하십시오.... 들으십시오, 나의 형제들이여, 복되신 동정녀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태중에 그분을 품으신 것만으로도 공경을 받는 것이 지당하다면, 복된 세례자가 두려워 감히 하느님의 거룩한 머리 손을 대지 못했다면, 그분이 잠시동안 누워 계셨던 무덤도 존경을 받는다면, 하물며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 받으신 분이며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분을, 손으로 만지고 마음과 입으로 영하며 다른 이들이 영하도록 주는 사람은 그 얼마나 거룩하고 의롭고 합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조 : 형제회에 보낸 편지 14, 21-22]


그래서 성체성사를 거행할 형제 사제에게 죄가 없어야 하는 것 외에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 요구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사성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교류의 길이며 형제들 공동체의 일치의 표시이고 근거이므로, 성 프란치스꼬는 형제들이 사는 곳마다 제대를 중심으로 모여 매일 공동 미사 한 대를 바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인이 주장한 신학적이고 영신적인 사상은 당대의 사람들 중에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서든지 신심이나 의무 때문에 사제 각자가 개인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관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http://xn--9p4b15e.kr/index.php 펌



2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