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Christus factus est

인쇄

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6-22 ㅣ No.1235

 

 The Last Supper - JUANES,Juan de. 1560. Panel 116x191cm Museo del Prado,Madrid.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47년 리에즈에서 몽 꼬르니용(Mont-Cornillon)의 쥴리앙이라는 한 수녀의 열성에 의해 처음 드려졌다.

1208년 환시 중에 주님께서 제대의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주셨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리에즈의 주교와 특히 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된(1261) 쟈끄 빤딸레옹 대부제가 이 계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르비에또(Orvieto) 근처 볼세나(Bolsena)에서 일어난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 받은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오르비에또에서 교서 "Transiturus"를 반포하는 가운데 새 대축일을 제정하였으며, 이 대축일은 성령강림절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기념하여 지내게 되었다.

쥴리앙은 몽 꼬르니용의 한 젊은 수사에게 새 축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 것을 부탁하였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교황의 교서에 함께 붙어 있는 시간전례 기도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근대의 연구는, 이 축일을 위한 미사와 시간전례 기도문은 성 토마스가 만든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경향이다.

 

교황이 새 축일을 서방 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자신의 권위로 명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이라 불렀다. 또한 성체성사 축일, 하느님 축일, 지극히 고귀한 성사 축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로도 불렀다.

우르바노 4세가 새 축일을 세운지 두 달 후에 죽은 까닭에 그의 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클레멘스 5세(1311-1312)와 요한22세(1317)가 이 교서를 새로 확인한 다음에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축일을 진작시킨 세 교황 가운데 성체 행렬에 대해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빠스카 아침 지성소의 그리스도의 "무덤"에 빨마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또는 성대하게 성체를 옮겼다. 본래 의미의 성체 행렬(성체 거동)은 13세기 말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풍습은 14, 15세기에 퍼져나갔다.

로마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홈에서)

 

The Last Supper - LEONARDo da Vinci. 1498. Mixed technique,460x880cm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Milan.

 

오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성찬의 식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 깊은 신비에 도달하려면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여 믿는 것이 이르고, 더 나아가 믿는 것을 실행하여야 한다.

 

’보이는 것’이란 빵과 포도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질적인 빵과 포도주를 사람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신다. 주시고 받는 양쪽의 행위가 그리스도와 우리의 계약을 암시한다.

’믿는 것’이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미리 보여 주신 제사이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표징으로 인류에게 당신의 생명을 내주시며 당신의 파스카에서 온갖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빵을 나눌 때마다, 당신을 내주시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제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성사의 현존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믿는 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삶은 인간 존재를 충만하게 할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살아 계시며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여기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 계명이 하나 되고, 믿음과 삶은 다르지 않다는 체험을 입증하게 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성체성사의 제정은 예수님의 죽음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앞당겨 거행한 성사적 표징이다.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제자들에게 주신다.

이것은 새로운 계약의 예고이며, "흠 없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날인될,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실현하는 성사가 될 것이다

 

◎ 알렐루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사는도다.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구원의 보증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희망과 기쁨을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실 때마다 희망을 갖고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잔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매일미사에서)

 

Last Supper - DUCCIO di Buoninsegna 1308-11. Tempera on wood,50x53cm Museo dell’Opera del Duomo,Siena.

 

 

가톨릭대사전에서

 

 

성체 聖體

라틴어 Eucharistia

영어 Eucharist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속에 실제로, 본질적으로 현존(現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한다.

어원적으로는 희랍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의 본래의 뜻은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에 감사함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는 성체에 대한 많은 예표(豫表)들이 나오는데 창세기 14장 18절의 ’떡과 술’의 표현이 그 한 예이다.

또한 예수는 스스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라고 하셨으며,

최후만찬 때 하신 말씀(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가 22:19-20, 1고린 11:23-25)을 통하여 성체성사(聖體聖事)를 설정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체에 대한 확신은 예수의 강력한 말씀에 근거하므로 성체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성체는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며 ’신체적’인 현존이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성혈 聖血

라틴어 Sanguis Pretiosissimus

영어 Precious Blood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 성혈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이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피다"(마태 26:28)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혈은 사도시대 이래로 신자들의 흠숭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특히 성체성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미사 때 봉헌되는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성혈로 변화되어 포도주의 외적 형상 속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과 마찬가지로 성혈을 받아 마심으로써 살아있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며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게 된다(요한 6:54-56 참조).

성혈에 대한 신심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특히 교황 글레멘스(Clemens) 6세(재위: 1342-1352)는 그리스도의 피는 성자와 함께 결합되어 있기에 너무나 귀중하여

단 한 방울의 피로써도 모든 인류의 속죄에 충분하다고 하였다.

또한 1849년, 교황 비오(Pius) 9세는 7월의 첫 일요일을 성혈 축일로 지정하여 모든 교회가 지키도록 했으며, 1914년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는 축일을 7월 1일로 변경시켰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성혈 축일을 성체 축일에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즉 삼위일체 주일 후의 첫 목요일이나 첫 일요일은 성체 성혈 대축일의 이름으로 기념한다.

 

 

최후만찬 :

 

예수께서는 공생활 3년을 마칠 무렵 그 당시의 관습대로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다.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같이 하기로 하셨다,

그것은 평소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루가 22:15). 예수께서는 ’만찬 도중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을 하시다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26). 식사를 마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20)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 하시며 마시도록 권하였다.

 

이로써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새로운 계약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것이다.

사도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같이 하기로 한 이유는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한 새로운 계약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고 그들 제자들로 하여금 ’이 예(禮)를’ 영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미사성제(성체제의)는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이고 천상의 파스카 잔치의 전신인 것이다.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파스카(최후만찬)를 비교해 보면 그 뜻이 확실해진다.

구약의 파스카- 어린양의 희생 · 양고기(음식) · 양의 피(해방의 표시) · 노예생활에서 해방(육체적)

신약의 파스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 그리스도의 몸(빵, 음식) · 그리스도의 피(포도주, 새로운 계약) ·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영생)

이렇게 비교해 볼 때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최후만찬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파스카는 상징적이고 현세적 생명을 말하며 신약의 최후만찬은 실체적이고 영생을 위한 것이다.

또한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한 해방, 즉 죄와 죽음에서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희생되시고

’모든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영적 양식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신약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의 혈제를 피 흐르지 않는 제사

즉 빵과 포도주의 형태 안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것이 바로 미사성제(성체성사, 성체제의)이다.

 

 

십자가의 희생과 미사성제 :

 

성체의 제전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이 예를 나를 기념하기 위해 행하여라"란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세상 어디서든지 사랑과 신뢰와 신앙으로 성체의 제정을 행하여 왔다. 이 성체제전은 미사성제이다.

 

십자가의 희생은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의 대사업을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봉헌했기 때문에 봉헌자도 그리스도이시고 제물도 그리스도이시다.

 

남을 위해, 남의 속죄를 위해 바치는 희생제물은 참다운 봉헌이고 참다운 제사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위대한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성교회 안에, 특별히 전례행사 안에 항상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성제에 있어서 특히 성체 형상 안에 현존하시지만,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즉 "전에 십자가상에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같은 분이, 지금도 사제들의 봉사를 통하여 제사를 봉헌하고 계시는 것이다"(트리엔트 공의회 제22차 회의,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2장).

 

이렇게 미사성제에 있어서도 제물도 제관도 그리스도 자신인 것이다. 사람인 사제는 다만 그리스도의 도구인(道具因)일 뿐이다. 십자가상의 희생이나 미사성제는 방법상 다를 뿐이지 인류 구원과 속죄의 제사임에는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또한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나자렛의 예수. 공생활 3년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시던 예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성부께 영광을 받은 천상의 예수,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는 다만 한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 때 자기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 16:28)라고. 그러나 그리스도는 혼자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성부께 데리고 가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자기와 같이 사람들을 성부께 데려가기 위한 가장 뛰어난 사업이 성체성사의 제정이다. 그래서 성체는 성부께로 가는 길이다.

 

성체는 우리를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로 돌아가게 하는 성사이고, 구원사업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완전히 실현하는 성사이다. 그리스도 즉 우리들의 사제이시고 중개자이시고 우리들을 위한 제물이고 길이신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서 성부와 우리를 만나게 하신다. 성체성사는 다른 모든 성사의 정점이요 완성이다.

 

 

 

 

 

 

♬Christus factus est- Santo Domingo de Silos

 

 



23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