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기다림의 행복(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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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1-26 ㅣ No.3782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2004-11-26)

독서 : 묵시 20,1-4. 11-21.2 복음 : 루가 21,29-33

*  기다림의 행복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가 21,29-­33)

팔레스티나에는 봄이 없이 바로 여름으로 접어든다. 그러니까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여름이 다가온 것이다. 그것을 알려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계절이나 날짜를 지적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기 위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다. 끝이 없이 기다릴 때 참고 견뎌낸다는 것은 어렵다. 이 약속의 진실성은 하느님께서는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것도 믿을 만하게 만드신다는 데 있다. 기다림이 왜 행복인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누가 누구를,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릴 사람이나 사건조차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복된 일이다. 그들에게는 오늘의 삶을 지탱해 내일로 향하게 할 원동력인 ‘기다림’이 있었다. 그것이 없을 때 사람은 스스로 절망하여 삶을 포기하거나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 무엇을 또는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기다림도 잘못 기다리면 오히려 인생을 망치는 수가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집’에서 기다려야 한다. 자기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길을 떠나면 그때부터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 나선 사람’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며 집 문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오늘’에 그 뿌리를 내리고 ‘내일’을 지향한다. 내일이 없으면 기다림도 없거니와 오늘이 없어도 기다림은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기다림이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내일’에 속한 사람을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에 착실(着實)하면 그 기다림이 그를 살아 있게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다가 몸이든 마음이든 지금 여기를 떠나게 되면 삶 자체가 무너지고 만다.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아를 찾아 예루살렘을 떠났다면 그들은 끝내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기다림이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기다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늘’을 착실히 살도록 작용하지만 잘못된 기다림은 ‘오늘’을 떠나서 있지도 않은 ‘내일’을 헤매게 함으로써 삶 자체를 무너뜨린다. 시므온이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성령의 약속을 믿고 날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메시아를 제대로 기다렸다는 반증이다. 안나도 마찬가지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로써 섬겼다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니고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착실히 살았다는 얘기다.”(이현주, 「기다림의 행복」)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자기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면서도 태산처럼 뿌리깊은 습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로마 8,15)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나 보다.

최기도 수사

- 지혜로운 그대 -

고독이 불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심장이 차가워질
이유도 없습니다

나에게 생명이 있고
나에게 삶이 허락되어
그대를 사랑함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사랑
그대 사랑이
따로 있으면
얼마나 따분한 일입니까
우리 사랑은 단 하나입니다

그대는 지혜로우니
사랑도 잘 할 것입니다
그대의 두 눈을 반작이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대의 매력은
모든 일에 호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고상하고
상냥하고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내 사랑이 되었다고
믿을 때
나의 삶은
푸른 들판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 용혜원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나 보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에는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니는 단어가 기도
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겠
습니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도하는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데살로니카 5,16-18]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납니다.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 구절의 성경을 연구하고
있을 때 입니다. '하하, 우리가 어떻게 늘 기도만 하고 살 수 있습니까?'
라고 젊은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 그 방안을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주볏거리며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저 처럼 이렇게 청소할 때도 기도하면 됩니다...' 딩동댕!
정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를 화살기도라고 말하지요.

영적으로 깨어있으면 쉼없이 기도가 연결되어집니다. 틀에 있는 기도문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단어들이 연결되어져서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심장
을 녹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러나오는 기도입니다.

저는 처음에 '기도문'에 짜여있는 가톨릭 내에서의 기도가 무척이나 낯설
었습니다. 읽다보면 내가 하고픈 의미가 다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왜. 꼭 그렇게 똑같이 기도해야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가슴에서 튀어 나오는 한 마디가 차라리 더 힘차게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
럼 느껴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의 형편을 헤
아려서 그의 처지에 맞게 그를 위해서 가슴과 가슴이 울리는 기도를 해야
되는데 그저 틀에 있는 그대로, 그와 그녀 그리고 모두를 위한 내용이 같
다는 것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자꾸 곁길로 갑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오늘'에 그 뿌리를 내리고 '내일을 지향한다.
내일이 없으면 기다림도 없거니와 오늘이 없어도 기다림은 없다.


맞습니다. 기다림은 그렇지요. 하지만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일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없는 사람은 기도도 없습니다.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 날 그 날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 기도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하루요,
날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마른 시간들로 그 날이 그날일뿐입니다.
기다림이 있기에 기도하면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확실한 믿음과
확실한 기다림이 연결되어지면 기다리는 그 자체가 행복이 되겠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자기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하지만 이렇게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면서도 태산처럼 뿌리깊
은 습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깨어 나기를 두려워하는, 깨어 나기를 게을리 하는 그 무엇이
날마다 곁에서 조르고 있습니다.조금 더 자자,조금 더 쉬자.조금 더
라는 귀여운 마귀는 저의 게으름을 날마다 독촉하고 있습니다.그렇기에
태산처럼 뿌리깊은 습기가 제 삶을 온통 먹어버리려고 합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어슬렁거리는 마귀놈한테 잡혀가기가 딱 알맞은
시대에 우리고 살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기다림은 행복
한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악마한테 내 영혼을 살짝이라도 넘겨주면 기도
할 수 없기때문에 우리는 그만 지쳐서 넘어지게 됩니다...

[1베드로 5,8]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닙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기다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늘'을 착실히
살도록 작용하지만 잘못된 기다림은 '오늘'을 떠나서 있지도 않은
'내일'을 헤매게 함으로써 삶 자체를 무너뜨린다.


묵상 글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봅니다. 아! 시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바오로 사도가 자신에게 외쳤던
외마디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는 Thanksgiving Day 오전에...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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