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대림 1주 (준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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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11-28 ㅣ No.3787









    대림 1주 (준비하는 삶)



    무엇을 위해?

    어린 학생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학교에 다니니?"라고 묻는다면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요!"
    "공부해서 준비하지 않으면 입학 시험에 떨어지기 때문이죠!"
    "수능 시험에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장래성 있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직장에 성실하게 다니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빨리 높은 직위에 오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젊은 부부에게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하고 질문한다면
    "좋은 집을 장만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며 자녀들을 잘 낳고 잘 길러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기 위해서죠!"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제는 자녀들을 모두 양육해서 출가시킨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손주 손잡고,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야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다가올 이 세상의 삶을 위해 잘 준비하고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들은
    바로 그 다음의 삶, 곧 그 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고 얼마나 잘 계획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거듭거듭 살펴보고 그릇되고 잘못된 것들을 찾아내며
    모나고 고르지 못한 것들을 다듬어 내는 신앙인으로서의 진정한 준비하는 자세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쯤 해서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예화 I: 필립보 네리 신부님과 청년

    먼저 필립보 네리 신부님과 한 청년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한 청년이 성인 사제인 필립보 네리 신부님에게 와서 자기가 머지 않아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합격했으면 좋겠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님은 청년에게
    그 다음 계획은 어떠한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젊은 청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가 그런 소질을 다분히 타고났다고
    합니다." "그 다음엔?" 하고 물으니, "제가 훌륭한 법률가가 되어 이름을 날린
    다음에는 결혼해서 집을 짓고 부자로 살려고 합니다." "그 다음엔?"
    "그 후로는 로마 시의 법정에서 높은 관직의 벼슬을 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엔가는 은퇴하여 고요하게 살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그리고요? 그 다음엔 어느 날 죽게 되겠지요."
    그러자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그 청년의 머리를 자기 가슴 쪽으로 안으면서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그 다음엔?"
    그 청년은 이 대화를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계획하고 준비
    하는 사람이 죽을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치 못하고 준비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자신들에게 비춰 보게 합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의심나는 것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면서도 분명히
    다가올 확실한 주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화 II: 마르틴 할아버지

    두번째로, 구둣방을 하는 마르틴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기다렸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날이 계속되는 어느 마을에 마르틴이라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습니다. 마르틴 할아버지는 조그만 구둣방을 가지고 계셨는데
    매우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낮에는 구두를 수선하고 밤에는
    성서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나이가 너무 들어 모든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서를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찬란히 빛나는 광채 안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가겠다!"

    다음날 마르틴 할아버지는 일어나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구둣방 앞의 간밤에 내린 눈을 쓸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를 도와 함께 눈을 쓸었습니다.
    그러던 중 길 한 옆에 쓰러져 있는 아이와 아주머니를 발견하고는 구둣방으로 데려와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추운 날에 맨발인 아이에게 구두를 신겨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마르틴 할아버지는 추위에 떨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
    주면서 주님이 오시기로 했다고 이야기하며 하느님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도록 하느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밤이 되자 마르틴 할아버지는 피곤한 몸으로 매일 밤처럼 성서를 읽다가 또 다시 잠이
    들었는데 다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마르틴 할아버지가
    깨어나 "찾아오시기를 기다렸는데 왜 찾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하고 하느님께 묻자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찾아갔었다"고 말씀하시며 "네가 도와 준 눈을 쓸던
    청소부가 나였고, 네가 따뜻한 음식과 구두를 신겨 준 추위에 떨던 아이와 아주머니가
    나였으며, 지나가다가 몸을 녹이며 차를 마시고 간 행인이 바로 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후 마르틴 할아버지는 매일 밤처럼 성서를 읽으며 조용히 잠이 드셨는데,
    그 날 밤 하느님께서 찬란한 빛으로 마르틴 할아버지를 하느님 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그 날, 바로 준비해야 할 그 날은 어떤 날인지 살펴봅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마태16,26)
    우리 모두의 '나'라는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나'의 죽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신문, 방송 등 여러 전달 매체를 통해서
    '나'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젊었을 때의 사진들이 신문지상에 또는 활동하던 모습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집니다.
    친구들과 친척들이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듭니다.
    장례식은 끝났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어수선했던 집안이 차차 정돈되면서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같이 조용해집니다. '나'만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에 누군가 이름 모를 사람이 들어앉아 일을 계속합니다.
    아마 '나' 이상으로 일을 잘 처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차차로 '나'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명성도, 지위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리는 장막과도 같습니다.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도, 천만 년을 살겠다고 갖은 보약을 다 먹었던 그들도,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하는 수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죽음! 우리는 항상 그것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주여 ! 시간은 있습니다.
    주님, 저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뒤쫓아가느라고, 잃은 시간을 되찾느라고
    시간을 아끼느라고 달렸습니다.
    - 미안해요. 시간이 없어요!
    - 미안해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
    -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 이만 줄일께요.
    - 시간이 없어서 생각하고 읽을 겨를도 없어요!
    - 시간이 없어서 기도할 여유도 없어요!

    주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아세요?
    아이들은 노느라고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너무 많은 공부를 하느라고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다닙니다.
    이 세상이 너무 급해서 서로 떠밀고 밀려가면서 미치광이처럼 뛰면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정말 시간이 모자랍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당신은 불현듯 나타나십니다.
    주님 혹시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것이 아닌 가요? 한 시간이 너무 짧고 하루가 너무 짧고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 앞에 나의 시간을 내어놓습니다.

    주여, 제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시간의 선물에 당신이 원하시는 나의 그림을 그리게 하소서.

    - 김웅태 신부(가톨릭 교리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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