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신앙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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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leepoet] 쪽지 캡슐

2001-05-29 ㅣ No.5721

본당 주보이신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성당에서 교우들의 신앙체험수기를 공모했었죠?

모두 일곱분이 원고를 제출해 주셨는데, 여기 그 중에 한편을 올립니다..

 

 

제목 : 절망은 또 다른 희망의 거름

 

어느 날, 무신론자이던 남편이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만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싶어 무작정 남편과 함께 성당을 찾아 나섰다. 처음 성당 문을 들어서니 수녀님 한 분이 밖에 서 계셨다. 어떻게 하면 성당에 다닐 수 있냐고 여쭤보니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교리공부부터 하자고 말씀하시고는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셨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1년 후 우리부부는 다시 태어났다. 피정 때 아들 녀석이 의자에서 자다가 떨어져서 턱 밑이 찢어져 응급실로 달려갔는데도 남편은 "하느님께서 자녀를 더 사랑하라시는 것 같다" 며 기도를 했다. 평소 성격과 자기 주장이 매우 강했던 남편이었기에 이렇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 후 우리 부부는 각자 삶에 바빠 싸울 시간도 없이 살았다. 어느새 자라버린 자식들의 자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언제 아이들이 이렇게 컸냐며 웃기도 했다. 남편의 일은 점차 순조로왔고, 자그마한 빌라를 어렵사리 장만하게 되었을 때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겻 같았다. 이렇게 행복한 우리 가정에 불행이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라면 껌벅 죽는 남편은, 레지오 부단장이 되어서는 수요일이면 더욱 힘찬 발걸음으로 성당으로 즐겁게 달려갔다. 가끔씩 속이 아프다는 남편의 말은 술 탓이겠거니 하며 귓전으로 흘려버렸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 몸 속의 암 세포는 온 몸으로 퍼졌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나는 무심했음을 후회하며 남편을 간호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현대 의학이 저주스러웠다. 암에 좋다는 약이나 음식은 모두 다 먹어 보았지만 남편의 모습은 놀랍도록 말라만 갔고, 옆에서 그런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무능력한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구역의 형제 자매님들은 매일 저녁 남편의 쾌유를 위해 마라그룹에서 9일 기도를 드려 주셨고, 우리는 암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강원도 두메산골 토담집을 찾아 헤맸다. 살고 싶다는 남편의 몸부림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 때문에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기도의 덕분인지 그나마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 것에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오전, 평상시와 같이 산책을 하던 남편이 기운이 떨어진다며 알부민을 맞고 싶다기에 경철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나는 '소리내어 울면 안된다', '침착하자' 마음을 다지며 남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했다. "여보,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야. 당신 힘들겠지만 주님께 의탁하고 같이 기도하자" 남편은 묵주를 쥐고 기도했다. 그리곤 평안히 잠들었다.

기가 막혀 울음도 나오지 않았고, 같이 임종 기도를 해주신 성당 교우들이 고마워 쓰러질 수도 없었다. 신부님의 배려로 남편의 시신은 오금동 성당 영안실에 안치되었고, 많은 분들의 기도 속에서 하늘 나라로 떠난 남편 앞에 아들, 딸과 나란히 앉아 의연하려 애썼다. 아이들도 나도 슬픔을 숨겼다. "엄마, 울고 싶을 때는 물 틀어 놓고 목욕하면서 울면 아무도 몰라" 라고 말하는 어린 딸아이가 애처로와 밤새 울었다.

그렇지만 남편의 작은 신앙이 불씨가 되어 나와 아이들은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아기 같은 남편의 믿음은 작은 밀알이 되어 나와 내 아이들에게 신앙의 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 장례식에 참석했던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들도 교우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교리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도 생겼다.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기도는 절망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었다. 훗날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실 때 나는 웃으면서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주님 사랑 안에서 잘 자라주는 아들과 딸, 그리고 내 일처럼 도와주시고 아껴주시며 기도해 주시는 형제 자매님들...

나는 행복한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리고, 이 신앙을 굳건히 지켜 나가겠다.

 

<문정동 성당  박선녀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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