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노동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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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02-06-30 ㅣ No.4109

누가 죄를 짓더라도 우리는 그를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포이멘 아빠스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서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부정하면 그를 판단하지 말라.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에게서

용기를 빼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보게, 용기를 잃지 말게.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게!’라고

말한다면 그의 영혼에 회심을 불러 일으켜 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사랑으로 덮어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침묵하기와 심판하지 말기>에서

 

 

베네딕토 수도회에서는 "기도 하며 일하라"는 영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노동의 의미와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 하였다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한가로움을 피하는 방법,인간의 나태와 정욕을 억제하는 수단,

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얻기위함 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지금 까지 계속 되고 있다고 본다.

 

 하느님의 피조물 로써 인간이 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행위가 하느님의 말씀 듣기라고

한다면, 하느님을 닮은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가꾸고 재배하는 행위가 노동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말씀 듣기와 노동을 별개의 것으로 구별 짓지 않고 노동을 참다운

말씀 듣기의 다른 한면으로 인식 하여야 한다고 생각 한다.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의 일(Opus Dei)보다 낫게 여기지는 말아야한다."

 

이런 글을 참고로 다음의 말씀을 생각 해 보면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들었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

 "주님,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마르타,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루가 10,36-42)

 

나는 마르타가 좋다.마르타는 할 일을 하는 여자다.그는 결코 재능을 썩혀 버리게

되는 데서 오는 고통 같은 것은 맛보지 않는다고 본다.

그동안 역사를 통하여 마르타는 힐책을 받아 왔다.그러나 마르타가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했기에 마리아는 예수 곁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마르타가 손님 접대의 이런저런 일을

 떠맡아서 했기 때문이다.문제는 마르타가 손님 접대하는 일을 했다는 데 있지않고,

마리아를 원망하게 될 정도로 자기 일에 너무 몰두해 있었다는 점이다.

 

유명한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이 점을 훌륭하게 설명하였다.

즉,마리아가 궁극적인 존재와 더불어 궁극적인 것에 관심 갖고 있는 동안

 마르타는 유한한 것에 관심 두었다는 것이다.

더 좋은 몫은 예수다.그 까닭은 예수는 영속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음식물은 없어지고

 그릇은 씻겨질 것이다.그러나 예수께서는 머물러 계신다.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사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는 노동의 본질과 영성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일깨워 준다.노동에 접근하는 마르타의 적극적인 태도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그의 태도에서

 무엇이 결점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르타는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로 일과 삶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녀에게는 은총,놀라움,성령의 역사 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마르타에게 구원은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온다.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그는 걱정거리가 많고 여러 가지 일에 바쁘다.

식사하는 일(유다인의 일상생활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의 성패 여부가 마르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마르타에게 귀찮은 일이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였다.단순한 식사를,친구들과 나누는 참된 친교나 우정으로 바꾸는

정다움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다.그대신,마르타의 일하는 태도는 모든 사람을

많은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한다.

 

이윽고 속에 쌓이는 불만이 터질 지경이 되어서 마르타는 마리아와 예수께 불평한다.

 주님,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가 10,40).

만일 마리아가 마르타를 거들고자 했다면 "너까지 수고할 건 없어.

나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밀려났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누구도 마르타를 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일에 임하는 마르타의 태도는 인간이 지니는 근본적인 흠,곧 우리 인간이 모든 것을

스스로 충족할 수 있다는 환상을 보여 주고 있다.마르타가 염려하고 짜증을 내는

 까닭은 자신의 한계와 상황의 불편함을 해결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은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마리아는 오직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만 매달린다.마리아야말로 예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하여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였다 생각해 봄직하다..

 

루가는 우리에게 마르타가 여러 가지 일을 염려하고 또 짜증을 냈다고 말 해 주고있다

만사를 다스리고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그러하다.일은 엉뚱하게 틀어지고,

마르타는 자기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그래서 마르타는 예수께,

마리아를 보내 자기를 돕게 해달라고 부탁함으로써 마리아를 지배하려 한다.

그것은 남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욕망,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굳어진 욕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욕구는 우선 적으로

"난,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 하는 사고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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