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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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순 [won3d] 쪽지 캡슐

2000-12-27 ㅣ No.3258

오늘은 사도 성 요한의 축일입니다. 사도요한은 12사도 중에서 가장 젊은 사도였으며 일생을 동정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사도요한의 특이한 점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최측근이었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만찬 때에 예수님의 가슴에 기댄 사도였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성모님을 모시고 사신 사도였습니다.

 

  사도요한의 이런 외형적인 모습보다 더 특이한 것은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깊은 신비를 꿰뚫어 보셨다는 점입니다. 요한 복음서를 보면 공관복음서에서 말하는 메시아비밀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기적과 표징을 통하여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사실적으로, 명백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 강생의 신비,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신비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1서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 결론으로 우리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너무나 확실하게 말씀해줍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면 당연히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었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보담을 바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하느님은 우리의 찬미와 사랑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우리의 가족, 가난한 사람, 저 멀리 있는 북한 형제들, 아프리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박애주의나 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신앙으로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애덕이라고 합니다. 애덕의 본질은 하느님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왕도를 발견합니다. 즉 구체적으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애덕을 통하여 하느님과 만나는 신앙의 진리를 전해준 위대한 사도입니다.

 

  매일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이 신앙의 진리를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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