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대희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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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민 [johnlee74] 쪽지 캡슐

1999-12-20 ㅣ No.2686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저희 학교에 가려면 서울대입구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합니다.

제가 타는 버스는 413번.  매일 타다 보니 운전사 몇분은 알아보지요.  오늘 아침 운전사는 ’Mr 난폭’으로 인상에 박힌 분.  그런데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카드로 긁는데 잔돈이 밑에 있다는 시늉을 하지 않나, 타는 사람마다 학교 안까지 들어간다고 그 껄죽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질 않나.  

그러고보니 차 안은 흥겨운 캐롤송 메들리에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습니다.  저도 올해들어 처음으로 들어보는 터라 마음이 또 싱숭생숭합니다.

어느새 버스는 부드럽게 출발을 하고...그러다가 갑자기 끊기며 썰렁한 김기덕의 목소리가 깔립니다.  잠시 후 릭키 마틴의 거 뭐더라, 011 선전에 나오는...하여간 빰빠라 몇 번 하더니 운전사 아저씨의 곡예가 시작됩니다.  이리저리 쏠리다가, 길을 묻는 아줌마에게 짜증섞인 운전사 아저씨의 목소리까지.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아가는 게 1899년에서 1900년으로, 1989년에서 1990년으로,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는 거하고 뭐 그리 다르겠냐는 냉철한 시각을 가지셨다면, 인간이 상징에 부여하는 의미에 얼마나 좌우되는지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초등부 교사때부터 청년회까지의 활동을 돌이켜보며, 과연 성당에서 ’성공적’인 행사가 무엇이었나 돌이켜 봅니다.  몇 번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제 기억에 남는 건 ’시끄러움’입니다.  여름캠프, 성탄예술제, 청년 음악회 등등... 한순간에 고도의 흥분이 응축돼 폭발하고 한동안 또 잠잠하고, 그러다가 또 폭발하고, 또 잠잠하고.  일단 모두들 들떠서 즐거워하면 성공이라는 생각.  

 

제가 미국에 잠시 있을 때가 마침 여름방학이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여기는 여름에 뭘하면서 보내나 궁금할 수 밖에 없었죠.  캠프도 여름신앙학교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있는 행사는, 하룻동안 신부님과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가서 도시락을 까먹고 신앙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공통된 교회이지만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일상생활과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는 그곳과 달리 우리는 둘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지으며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웬지 성숙이라는 의미에선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요즘 ’유행’이 복음을 성극으로 연출하는 것입니다.  미사 중 복음을 듣는 시간은 거룩한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기쁜 소식을 경건하게 듣는 시간입니다.  한 번 보신 분을 알겠지만, 잘 되지도 않는 연기로 앞에서 우물쭈물 연극을 해대고 있으면 도저히 희화했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연기자 자신들도, 보는 미사 참례자들도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죠.

 

뭐든지 어떤식으로든 ’이벤트’화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할까요?  자라나는 신세대, 청년들을 그렇게 밖에 끌어들일 수 없다면 우리 문화를 탓해야 할까요.     

 

한국 천주교회가 200년 동안 급속한 외형적 성장을 이룩한 것은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시끄러움’에서 ’성숙한 기쁨’으로 옮겨 갔으면 하는 게 대희년의 바람입니다.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높고 낮음이 없이 꾸준한 신앙이 곧 성숙한 신앙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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