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내 팔짜? -마지막 주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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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12-27 ㅣ No.2774

† 땅에서는 평화

 

-사목위원의 주일 하루-

 

성탄 경축행사도 끝나고, 모처럼 연휴라 늦잠 좀 자 볼까 하던 생각도 창에 비친 햇살에 눈을 안 뜰 수 없어 습관적으로 오늘 일정표를 본다. 장애인 시설 ’작은 프란치스코의 집’에 식사 봉사를 가는 날로 표시되어 있다. 귀찮기도 하고 사실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해 주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이불로 얼굴을 덮어보지만, 그래도 약속인데 하며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워 요셉회 정요셉 도우미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출발했는지 전화가 안된다. 내 팔짜 와 이렀노.....?

 

’작은 프란치스코의 집’은 글샘골에서 하남시내를 바로 벗어나면 남한산성 입구 다다르기 전에 있다. 무슨 거창한 수용시설도 아니고 동네 입구에 있는 한옥 두채 안에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우리 요셉회가 여기와 인연을 맺은지도 이제 두 해, 봉사라고 하기엔 너무 창피한 것이지만 매월 4째 주에 이 곳 식구들에게 점심 반찬을 준비해 가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정도이다. 오늘은 자매님들이 반찬을 준비하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마당의 얼음을 치우는 것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을 요령껏 떼웠다. 설겆이가 끝날 때쯤이면 또 한 팀이 목욕과 세탁 봉사를 위해 들어온다. 3분의 수녀님이 20명이 넘는 이들을 먹여 살리기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어 서울의 여기 저기 단체와 개인이 조금씩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해 주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작지만 모여서 큰 힘이 되는 것, 사랑은 어려움을 뛰어 넘는 기적과도 같은 것을 매 번 체험하고 주님의 섭리를 발견하곤 한다.

 

내 팔짜 어차피 주님 손에 달린 것이려니 체험해 봤지만, 오늘은 중고등부 다솜제가 있는 날이라고 우리집 대왕마마가 피곤한 나를 또 보챈다. 딸애가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니 구경가자 한다. 4시 미사 강론 때 졸던 눈꺼풀이 미스 문정 선발대회에서 몇 번 웃고 나니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다. 연이어 밤 7시 기획.총무회의가 있었다. 성탄행사 평가하고, 사목위원 피정 의논하고 이어 본당 홈페이지 방향에 대해 오인근군과 짧게 몇 마디 주고 받고, 12월31일 뜻깊은 날 ’빛의 예식’에 대한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나니 밤 11시, 스테파노 신부님 영명축일 겸 다솜제 평가를 들을 시간이라 택시타고 급히 만수네로 달려 갔지만 평가회가 끝난 시간이었다. 다행히 구안드레아 분과장님께서 잘 마무리 해주셨다.

 

이어서 조점상 수석 부회장님과 2000년 교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마지막 말씀을 정리하였다.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사목위원들의 봉사자세에 대해 그리고 청년/청소년에 대한 사목방향에 대해 보다 지속적인 관심표명이 있어야 함을 논의하였다. 그래서 청년이 주축이 되는 새 천년 그리고 그 청년들을 뒤에서 밀어 주는 어른들의 역할분담을 논의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0시 50분이다. 내 팔짜 무슨 팔짜인고?  올 해를 마지막 보내는 주일에 끝맺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으나, 다가오는 새천년에 대한 계획과 대희년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구상을 머리 속에만 그려 둔 채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주님께 부족한 모든 것을 의지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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