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투 플러스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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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자 [noans] 쪽지 캡슐

1999-12-11 ㅣ No.886

     김치찌게와 찬밥에도 감사

 

     성당단체 월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체중에 민감한 주인의 눈치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울려대는 배꼽시계는 점심때를 알린다.

    먹다 남은 김치찌게를 데우고 구운 김에 (마치 정전이라서) 찬밥을 정신없이 먹고나니 이제는 부러울 게 없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한끼 식사를 위하여 나의 식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호화판 음식점에서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의상과 악세사리로 치장을 하고 한가로이 시간과 부의 여유를 누리며 즐기는 대화는 3류 소설같은 얘기나 하는 자가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김치 찌게에 찬밥을 먹는 현주소에 전혀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때가되면 배가 고프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욕(건강)이 살아있으며 또한 이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자라지 않을 영양을 공급받으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런 나의 처지를 비하하며 주저 앉아 고급 옷과 고급 음식만 꿈꾸고 있다면 그것은 후퇴해 가는 모습이며   영육간에 영양실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사람의 가치관이 불의를 보면서 흔들리는 모습이며 건전한 정신에 염증을 느끼는 불길한 징조는 아닐련지요?

    또한 장애인들을 보면서 감사하지 못함은 순간의 영원 속에 살면서 한치 앞도 못 보는 이의 어리석음은 아닐련지요?

    (이미 독이든) 돈만 있으면 대학도 가고 군대도 면제받으며 정의의 불모지에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좀먹어 가는 졸부들과 3류정신의 소유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여유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교만일까요?

     

    어느 교수가 청년시절에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뼈가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 병원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며 화까지 치밀었지만 지금은 강조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고 주장합니다.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어머니의 기도를 이제는 깨달은 탓이겠지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다"는 글을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때 그것마저 잃게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 힘에 감사하면서 용기를 갖고 전진할 때 더 큰 힘을 얻게 되겠지요?

     

    우리는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현세에 살면서 보이지 않은 영원을 갈구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될 때 불의를 보면서 힘이 빠지거나 뿌리가 썩어 가는 나무 모습 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 소외되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  

     정의감에 소외된 지도층과 권력층과 가진 자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민1을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나의 질문에 저희집에도 "잘 맞췄어. 정답이야. 짝짝짝" 박수를 치며 또래 아이들과 함께 진화론을 주장(?)하며 미사나 교리 또 반모임까지도 재미를 못 붙이는 4학년 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아니 획기적으로 뽀족한 아이디어를 저도 기다립니다.

 

그러나 "언젠가 네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때 또 기쁠때도  너에게 신앙(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또한 엄마한테도 그런 생각이 들게 될거야."라고 얘기 한답니다.

                               정 아녜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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