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천사상(天使像)과의 작별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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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 "이젠 정말 가는 거니?" "그래. 떠나기 싫지만 가야지 뭐" "나 보고싶을 텐데...?" "물론 그럴테지." "잘 가라." "그런 말은 말어. 나 자꾸 눈물 날라 그런다." "울고 싶음 울어봐. 너 잘 울잖아?" "놀리지 말어." "생각 안 나니? 너 그때 빠찡고에 빠져서 돈 다 날리고, 저 앞에 의자에 앉아서 섧게 울었던 일 벌써 잊었니?" "챙피하게 그 얘긴 왜 또 꺼내?" "암만 그래도 난 네 마음을 잘 알아. 밤 2시인가 3시였을 거야. 흑흑 느껴우는 소리에 내가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깼잖니." "정말이야? 그럼 12천사님이 다 깼어?" "아니야. 나만 깼지. 내가 제일 가까운 데 있었으니까" "그랬다면 정말 미안하다. 하루 종일 서있어서 피로했을 텐데 자는 걸 깨웠으니..." "그때만은 너는 진짜 진심이더라. 고백소 신부님 앞에 가서도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하던 너였는데, 정말 그날만은 아니더라" "그랬어? 고맙다. 용서해 줘라." "아니야. 넌 그때 이미 용서 받은 거야. 내가 성모님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네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라고 간청을 했었거든. 넌 그 후로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잖어?" "너하고 약속을 했었잖니. 다시는 노름 안 한다고, 거짓 성사 안 본다고. 그리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그랬었지. 난 네 약속이 헛 약속이 아닐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 후에 네가 문화원을 만들겠다고 이사람 저사람한테 몇 백만 원씩 돈을 거둘 때 보니까 꼬박꼬박 통장에 돈을 넣고 영수증과 통장사본을 가져가서 돈을 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보고 너가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걸 알았어. 그래서 축복 받은 거라구. 그 엄청난 금액이 네 힘으로 된 것 같니?" "고맙다. 정말로......그랬었구나! 이제 생각하니 네가 도와준 거구나. 내가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IMF 와중에서 1억7천만원을 모울 수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놀랄 일이었거든" "내가 한 일이 아니야.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이란다." "고맙다 정말. 너 많이 보고 싶어질 거야." "언제든지 와라. 나 보고 싶거든" " 혹 차타고 지나가다가 너를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아멘 하고 십자성호 그어줄게" "작년인가? 네가 비누칠로 나 씻어줬잖니? 그때 고마웠다. 이제는 누가 날 씻어줄까?" "설마 우리 천사님 떼묻은 걸 보면 누가 씻어줘도 씻어주겠지. 항상 하얗게 하얗게 웃고 서 있어 줘. 응?" "그래. 너 나 안 보더라도 나쁜 짓 하면 안된다. 알았지?" "응. 알았어. 네말 명심할 게. 잘 있어라" "그래. 잘 가."
정들었던 답십리본당, 버스가 다니는 도로쪽 담벼락 위에 금세 하늘에서 내려와 그곳에 서 있는 듯한 모습으로 하얀 대리석으로 된 12 천사상(지금은 11천사상밖에 없지만)이 길쪽을 향해 날개를 펄럭이며 서 있다. 난 가끔 차도를 등지고 천사상 앞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앉아 천사상과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때로는 담배를 피워가면서까지......... 오늘도 꾸리아 송별회로 삼계탕을 먹고 나오면서 한참동안 거기 앉아 작별인사를 했다. 그 천사상 중에도 나와 제일 친한 천사상(혼자만의 비밀)과 주고 받은 말이다.
떠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 옴에 따라 내가 떠나고 난 후의 뒷자리가 깨끗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12만원 내겠다고 써 냈던 장학기금 잔액 6만원도 완납하고 성소후원회비도 정리했다. 언젠가 나 죽는 날도 이렇게 예고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장안동으로 교적을 옮겨야 하는 이가 6백명이나 된다는데 우리 본당은 어쩌나.... 저 천사상은 누가 비눗물로 씻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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