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환자들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7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조차 없는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처음에는 본당 신자들이 종종 찾아오기도 했지만 점점 관심은 줄어들고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식 없이 두 내외가 살던 집이 사기를 당해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할머니는 가재도구를 챙겨 할아버지 침상 옆에서 새우잠을 자며 병원을 살림집 삼아 지내야 했다. 홀로 할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며 귓가에서 성서를 읽어드리곤 한다는 할머니에게 그만큼 돌보아 드렸으면 이제 하느님 품으로 돌려드리고 할머니도 좀 편히 쉬시라고 함께 갔던 자매님들이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부부란 서로 믿고 함께 인생의 길을 걷기로 약속한 사람들인데 한 사람이 걸음이 느려 제대로 쫓아오지 못한다고 어떻게 나 혼자 휘적휘적 가버릴 수 있느냐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순간 둘러서 있던 이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병실을 나오며 몇몇 자매님은 “난 십년 가까이 저렇게는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하였다. 그것이 솔직한 마음이겠지만 부부간의 믿음·약속·신뢰뿐만 아니라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내가 드린 약속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신뢰와 부부에 대한 믿음은 할아버지의 말없는 현존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믿음은 일방적일 수 없다. 너를 믿고 나를 내놓을 수 있기에 너의 믿음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나 자신을 온통 내놓는 것이며 내 존재 전체를 건 선택이다. 하느님도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우리를 믿으신다. 미사 중에 사제의 손에 당신을 내맡기시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의 좁디좁은 가슴에 당신을 맡기신다. 마치 종에게 금화를 맡기고 먼길을 떠나는 주인처럼 말이다. 나를 믿고 내 손에 당신의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온전히 맡기시는 하느님께 나는 오늘 몇 개의 금화를 바쳐드렸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