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 과부는 공동체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고 한다. 신명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가 손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신명 24,19) 과부가 구차하면서도 전부 바칠 수 있었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사실 두려움이 없다.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가진 것이 없으므로 불안하지도 않고 지킬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때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그랬다. 두려움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까, 무슨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과부는 두려움을 손에서 놓는 순간 움겨쥐고 있던 것은 나눌 수 있는 ‘무엇’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단지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 가난한 과부와는 달리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늘 뭔가 부족하고 불행한 것만 같다. 행복과 불행은 인간적인 판단에 달려 있지 않다. 또 외적인 것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있지도 않다. 행복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과부는 새롭게 말해준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과부인 자기처럼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들이고 그분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과부란 바오로 사도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0)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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