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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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hain716] 쪽지 캡슐

2002-12-12 ㅣ No.4435

예수님 찬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걍 높다 하더라."

 

한 생을 사노라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닫게 마련이다.

이처럼 시청각적으로 사물과 일들을 몸소 체험을 하노라면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신앙의 진보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이런 이들은 그야말로 게으름 피지 않고 매사에 관심을 기울리고 사는

이들로서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아 놓은 뽑힌 대열에 든 이들일 것이다.

 

온아침의 미사 끝에 나는 또 한 번 맴이 걍 착잡해졌었다.

성체 조배실을 없앤 탓을 본당 신부님께 돌리각꼬

또 말썽을 피우는 이가 몇몇이 있는갑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조배실 없어진 탓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입니다."가 아니고

"신부 탓이요 신부 탓이요 신부의 큰 탓이로소이다." 하는 이들이 솔찮은 가 보다.

 

애시당초 성체 조배를 합심해서 잘 실행했었더라면

신앙 고백과 실천적 행동에 일치를 이루었었더라면

성체 조배실이 왜 없어지겠는가 하는 상념이 뇌리를 번득인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이 현시되어 있어도

누구 한 사람 거들 떠 보질 않던 정릉동 성당 공동체였었다.

난 그 때 주임 신부님께 주교님의 공문을 보여 드리면서까지

현시된 성체를 겨우 감실에 모시도록 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었다.

 

성체가 현시되어 있을 때는 누군가 그 주님 대전에 앉아서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성체의 주님께서 넓은 방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에나 잠기게 한 장본인들이

바로 정릉동 성당 신자 공동체였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마치 물건 취급하듯이

"죽은 시체 쳐다보듯이"

무관심과 게으름이라는 깊은 늪에 걍 푸~욱 빠져각꼬

허우적거리기만 했었잖았는가!

 

이런 무뢰한 공동체에게 성체를 현시하고 그 주님을 만나게 하는 축복된 삶이

결코 주어질리 만무하잖겠는가!

 

하느님이 높은 데 계시다 하되 우리와 함께 계시도다.

조배하고 또 조배 하면 주님을 못 만날 리 없건마는

신자들은 제 아니 조배함시롱 조배실만 없앴다 투덜대더라.

 

성체의 주님을 없인 여기고 소홀히 하는 이들을 가톨릭 신자라 하지 않는다.

법적으론 본당에 교적이 있으니 가톨릭 신자랄지락도

윤리적으로는 이미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머니인 가톨릭교회는 그 자녀들의 성체께 대한 신앙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2000년을 지탱해 왔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역시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체는 이승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생활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탓을 하지 말고 지금부터락도 10 C mi 성체의 주님을 사랑하자!

주님을 사랑 하다 하다 보면

이웃 안에 계신 주님도 뵙게 될 것이고,

사제 안에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 계신 주님을 더 확실하게 뵐 수 있을 것이다.

율법박사와 바리사이들처럼 예수님 탓으로 돌리며 사는 죄는

결코 짓지 않게 될 것이라꼬 확실히 언급해 두고 싶은 바이다.

 

餘不備禮 하인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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