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6월22일[이콘]꼬르순의 성모.놀라의 성 바울리노♬7.RorateCa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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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6-22 ㅣ No.1234

 

 

꼬르순의 성모.러시아 이콘. 1700년

 

이 이콘은 998년에 영세한 거룩한 군주 블라지미르에 의한 오래된 연대기에 의하면 꼬르순이라는 고대의 작은 읍(항구)의 이름에서 왔다고 한다. 이 항구를 통하여 그리스의 이콘들이 러시아로 전달되었기에 일반적으로 그리스 이콘들을 꼬르순 이콘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이콘을 보면 어머니로서의 마리아가 아기를 다정하게 감싸안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기 예수가 성모님의 얼굴과 맞대고 포옹하고 있는 것과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모자간의 깊은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다. 양손으로 아들을 꼭 껴안고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그림은 특별하고도 강한 모성을 보이고 있다

 

성모님의 시선이 먼곳에 두고 있지만 이 시선은 매우 부드럽고 우수에 잠겨있다. 거룩한 아기는 오른 손으로 성모님의 마포리온의 가장자리를 잡고 자신을 향해 끌어 당기며 성모님의 뺨을 맞대고 누르고 있고, 한 손으로는 두루마리를 잡고 있어 무기력한 아기의 앳됨을 보여주고 있다.

 

 

 

축일:6월 22일

놀라의 성 파울리노주교

St Paulinus

355년-431년

 

355년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골 지방과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부자로 손꼽히던 골 지방 로마 총독의 아들이었다.시와 수사학은 시인오소니우스로부터 배웠다.

파울리노는 뛰어난 법률가가 되엇으며 로마 제국에서 몇 가지 공직을 맡았다. 그는 스페인 여인인 아내 데레시아와 함께 젊은 나이에 은퇴하여 문화적인 여가 생활을 즐겼다.

그들 부부는 덕망있는 보르도의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고 스페인에 있는 데레시아의 큰 저택으로 이사했다.

 

여러 해 동안 아이가 없던 그들에게 아이가 생겼지만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은 그들이 엄격한 생활을 시작하고 애덕을 실천하며 스페인에 있는 재산을 거의 다 나누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뛰어난 모범의 결과이겠지만 파울리노는 성탄날에 바르셀로나의 주교에게서 예기치 않던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393년 그는 아내와 함께 나폴리 근처 캄파니아의 놀라로 갔다.

 

그는 놀라의 펠릭스 성인을(축일:1월14일) 무척 존경했고 이 성인에 대한 신심을 진작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친척들이 모두 당황해할 만큼 자기의 남은 재산을 거의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위한 일을 계속했다. 빚을 많이 진 사람과 방랑자, 그 밖에는 여러 궁핍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그는 자기 집의 한쪽 구석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처럼 살았다. 폰디에는 성당을, 놀라에는 수로(水路), 그리고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던 자신의 집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도록 배려하였다.그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놀라의 주교가 되어 21년 동안 그 교구를 이끌어 갔다. 놀라시가 훈족의 침략을 받자 그는 슬픔에 젖어 말년을 보냈다.

 

문학적으로 탁월한 가치를 지니는 여러 편의 시를 썼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 초기의 그리스도교 혼인 축가가 남아 있다. 43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선가로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폭넓은 교우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성 아우구스띠노, 성 예로니모, 암브로시오, 뚜르의 성 마르띠노 등 수없는 명사들이 있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51편의 편지, 32편의 시 등이다. 그는 프루덴씨우스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초기에 힘을 발산해 버리고 일찌감치 은퇴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헌신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파울리노의 인생은 그가 스페인의 자기 소유지에서 편안히 쉬면서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인간은 시도하고 하느님은 마련하신다.

 

한 사람의 목격자가 파울리노의 마지막 날을 기록했다.

그가 죽기 3일 전에 한 사제가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40은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가 그 가난한 사람의 빚을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심부름꾼이 50은전의 선물을 가져왔다. 마지막 날 저녁 기도를 바치기 위해 불을 켜놓고 있을 때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팔을 뻗으면서 말했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를 위해 등불을 마련했습니다."

 

 

놀라의 성 빠울리노 주교의 편지에서

(Epist. 3ad Alypium, 1. 5.6: CSEL 29, 13-14. 17-18)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모든 종들 안에 당신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복되며 지극히 사랑하는 주교님, 귀하는 보잘것 없는 나에게 진실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카르타고에서 돌아온 우리 조카 줄리앙을 통하여 귀하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귀하의 탁월한 덕행을 잘 드러내 주어, 내가 귀하의 사랑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은 틀림없이 세상 시초부터 우리를 예정하신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미래에 성취해야 할 모든 것도 그분이 지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선견과 권능으로 우리는 동일한 의지와 신앙의 일치 또는 일치의 신앙을 갖도록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연결되고 영의 계시를 통하여 마주 보기 전에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어디서나 유일한 분이신 주님께서 모든 이에게 부어주신 성령으로 당신의 모든 종들 안에서 당신 사랑을 역사하시는 데 대해 우리는 주님께 감사 드리고 찬미 드립니다. 이렇게 하시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강물로부터 당신 도성을 기쁘게 하셨고 이 도성의 시민들 위에 "당신 백성의 으뜸으로" 귀하를 선택하시어 주교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구부러진 나를 바로 세우시고 미천한 나를 땅에서 끌어올리시어 귀하과 같은 지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하느님께 감사 드려야 하는 것은 그분이 귀하의 마음에다 내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시고 귀하와 밀접히 일치시켜 귀하가 나에 대해 지닌 그 사랑의 확신을 느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귀하가 베풀어 준 배려와 호의를 볼 때 나로서는 귀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는 데 주저하거나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귀하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내 사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에 불쌍한 죄인이었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해방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생명의 공기를 호흡하기 시작하고 쟁기를 잡고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귀하는 기도로써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어 내 짐을 가볍게 해주신다면 귀하의 공로에 상급을 더할 것입니다. 고통중에 있는 이를- 나는 감히 귀하의 형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와 주는 거룩한 사람은 "큰 도성처럼 드높여질 것입니다." 나뉨이 없으신 삼위 일체의 일치와 우리 간의 일치의 표시로 귀하에게 빵 한 개를 보내 드립니다. 귀하가 그것을 드신다면 그 빵은 "에울로기아"(축성된 빵) 가 될 것입니다.

 

 

 

 

♬7.Rorate Caeli - 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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