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면 건망증이 심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러 가지 몸의 변화도 있겠지만 아이 뒤치다꺼리에 하루 종일 정신을 빼고 나면 자질구레한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 건 당연한 듯싶다. 가스불에 된장국을 올려놓고 다른 한편엔 빨래 삶는 통을 올려놓고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보글보글 비누 거품이 올라오는 된장국을 보게 된단다. 바쁘다 보니 빨래에 넣을 세제를 조미료인 줄 착각하고 된장국에 넣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어디 자매님들만의 얘기랴. 바쁜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망증이 있다. 실제로 계단 중간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 내가 올라가던 길이었는지 내려가던 길이었는지 잠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건망증이 있다. 끊임없이 약속하고 결심을 감동적으로 마음에 새기지만 내 건망증은 예수님을 하염없이 눈물 흘리게 한다. 결심한 것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사실은 복음에 대한 내 부족한 믿음과 예수님이 자리할 여지없는 분주함 때문이기도 하다. 주님이라고 부르는 하느님을 진정 내 삶의 주인임을 믿지 못하거나 맡겨드리지 못할 때 나는 바빠지게 된다. 주님이 이런 것까지는 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힘으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함이 나를 바쁘게 한다. 바쁘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 눈물을 흘리고 한탄하시는 그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자. 오늘 무엇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바쁘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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