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행복한 과부(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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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3773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04-11-22)

독서 : 묵시 14,1-3. 4ㄴ-5 또는 호세 2,16ㄴ.17ㄴ.21-22 복음 : 루가 21,1-4 또는 마태 25,1-13

*  과부의 행복  *

그때에 예수께서 부자들이 와서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는데 마침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루가 21,1-­4)

과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 과부는 공동체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고 한다. 신명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가 손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신명 24,19)
과부가 구차하면서도 전부 바칠 수 있었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사실 두려움이 없다.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가진 것이 없으므로 불안하지도 않고 지킬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때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그랬다. 두려움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까, 무슨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과부는 두려움을 손에서 놓는 순간 움겨쥐고 있던 것은 나눌 수 있는 ‘무엇’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단지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 가난한 과부와는 달리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늘 뭔가 부족하고 불행한 것만 같다. 행복과 불행은 인간적인 판단에 달려 있지 않다. 또 외적인 것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있지도 않다. 행복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과부는 새롭게 말해준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과부인 자기처럼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들이고 그분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과부란 바오로 사도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0)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최기도 수사

- 이 밤에 -

내 마음을
어찌할 수 없게 만드는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이
그리움을 몰고 온다

지금은
누가 날 건드리기만 해도
말을 걸어오기만 해도
울음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홀로 핀 것만 같은
내 사랑은
너로 인해 열매를 맺고 싶다

민들레 홀씨 되어
바람 결에 휠휠 날아 가버리고 싶다
언제 부터
우리 함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별의 정해진 날을
행복하게 맞기 위해서라도
진실하게 사랑하고 싶다

이밤에
네가 참 그립다

- 용혜원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 그녀의 최선 +

과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과부의 마음이 누구보다 헤아려진다...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붙이고 살아가는 1997년에..앗! 나는
가톨릭에 입교를 하였다. 받은 은총이 오스트리아 슈테판성당에서....
성가대에서 나오는 찬미소리에 감동되어 그 자리에 어프러져 두어시간
엉엉 울었던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을 때였으니 성가대에서 봉사를
우선적으로 하고싶었다.

토요일 저녁에 교리가 끝나자마자/연습중인 성가대 연습 장소로 달려갔
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화답송과 성가 중에서 나오는 솔로를 너무나
잘하셨던 지휘자이신 나자로 형제님! 참 그리운 시절이어라...^_ _ _^

성가대원 중에 부부가 와서 연습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음을 나중에서야
차츰 알게되었는데 그 때까지 앗! 나는 혼자 산다는 것에 나름대로 자신
있어했으며 혼자 산다는 것이 전혀 장애(?)가 아니었었는데 왠지 낯설어
지기 시작하였다.

가톨릭 공동체에서는 어디를 가도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홀가분해서 너무나 좋다고 생각했었는데../그리고 씩씩한 앗! 나가 왠지
어딘가 숨을 곳을 찾게 되고, 도망가고플 때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성모님 앞에 다가가서...구체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었잖았는가라고 지금은 생각되지만, 정말!!그때는 과부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싱글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계속
신교 안에서 머물렀더라면 글쎄 내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었을까?
라고 자문자답해 본다. ^^

과부의 마음이...
누구보다 헤아려지는 마음이기에...지난 이야기 들춰내본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과부인 자기처럼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들이고 그분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과부의 엽전 두 냥 이야기를 묵상 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녀의 최선!'이라고/자신이 가지고 있는것 중에서 최선의 것을
하느님께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우리의 잣대와는 언제나 다르신 분!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지만/그분이 보시는 각도는 역시
다르다. 크고 많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혹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아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최선의 정성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그분이시다.

최선의 것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갈등이 없다.언제나 부족한 마음이
들어서 죄스러울뿐. 불만도 없다. 더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함이 늘
아쉽다. 최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바치는 사람은 다른데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감사함도 훨씬 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과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헌금궤에 넣었을 때....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을까.앗!내는 짐작하고도 남는다.사람
들이 뭐라고 하든간에...그녀에게는 최선의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이미 그녀는 이 세상에서 그가 드린
두 닢으로 큰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가장 쓸만한 것.가장 괜찮은 것.
가장 맘에 드는 것.가장 아까운 것,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려 보라! 얼마나
가슴 뿌듯한가. 더구나 자식을 드렸을 때의 그 기쁨은 말로다 못할 것이다.

내 나이 스물 하고 한 살에...
처음으로 부흥회라는 곳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었다. 몇 일의 집회가 끝
나는 날 약정헌금을 하는 날이 되었다. 성전건축헌금이었는데/그 때 겨우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던터라 어머님이 첫 직장 다니게 된 선물로 이쁜
시계를 사주셨던 것이 눈에 띄었다. 바구니가 내 차례에 다가오는데 문득
나는 나의 삶을 드리고 싶다는 표현을 그 시계를 드림으로해서 표현하고
싶어졌다.

그 다음날 엄마한테 혼날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는다.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다. 그저 내 정성을 하느님께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헌금 바구니가
컸다면 내가 그 안에 들어가고픈 마음이었으니...시계쯤이야 내게는 너무
나 작은 것이었을 뿐이다.

그렇게...시계를 드린 것이...
이십 칠년만에 구찌 시계 3개로 나에게 돌아왔다.가난한 안나이기도하지만
악세사리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 편이다.그저 시계란 시간만 정확히 가면
되는 것이고 반지는 혼배 묵주반지이면 최고인 것을...

지난 2월 보스톤에 가서 영주권 인터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3개의 구찌
시계가 내 손에 쥐어졌다.내가 아무리 말려도 안된다.시계만큼은 명품으로
사주겠다고 우기는 남편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은../'아! 그 시계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이로구나..'
라는 깨달음이 더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덕분에 조카 도미니꼬 부부는 형편보다 과한 명품 시계를 고모 덕분에
결혼 선물로 받게 되었다.

내가 시계 자랑하려고 명품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것은 아니다.살아오면서
그것 말고도 최선의 것을 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많이 체험했었지만
그 일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언제나 앗! 나는
드리고픈 마음이 가득하다.

[2고린토 9,6-7]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야지
아까와하면서 내거나 마지 못해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과부의 두 닢을 통해서 드리는 생활을 다시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주님께서는 많이 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아서,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일부가 아니라 나의 전부인 온전한 것을
드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루가 21,4]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하하, 할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성서 구절들이 많습니다만
수다꾼이랄까봐...^^줄이면서/ 묵상글로 돌아갑니다.*^^*

행복과 불행은 인간적인 판단에 달려 있지 않다.
또 외적인 것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있지도 않다.
행복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지에 달려 있다


오늘 묵상글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구절이다. 어제도 말했듯이 나는
늘 부자같은 마음이다.불행하다면 불행한 삶을 살아왔음에도 내 모습
에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려는 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의 단짝친구는 나를 가르켜 부요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우리 집 고상 아래에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라는
목판을 걸어 놓고 바라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매일 노력한다.
지금은 부족한 삶이지만...계속 노력하다보면 어느날인가 앗! 나!
분명 그리스도가 내 삶에 전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 살고 싶다.

묵상 구절에 나오는 성서말씀을 기억하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싶다면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비결이 될지도 모르겠다. *^^*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로 되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 손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신명24,19)

오늘도 변함없이 수다스러븐...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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