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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타성에 젖은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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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ㅣ No.9902

가톨릭 교회 내에서 "수도자"는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지요. 또 "신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볼 때에, 특히 한국에서 "수도자"는 준성직자이며, 귀족 신분에 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나마 신생 수도회들, 소규모 수도회들과 외국에서 갓 들어온 수도회의 회원들은 그런 관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지 않은 수도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자들이 하는 3대 서원이 무색하다고 할 정도로, 가난과 순명과 정결은 굉장히 소극적이며, 자신의 수도회 안에서만 해당하는, 그런 사항인 것처럼도 보입니다. 때로 어떤 수도자들은 수도자인 것 자체로 인텔리인 것처럼, 당연한 지도자로서 연령을 초월한 모습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수도자도 인간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수도자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잠시 동안, 그런 만용과 오만이 허용되는 이 시대가 지나고 나면, 수도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양성을 받는 기간동안, 어느 수도자라도 이상적인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수도회가 그들을 기르고 스스로도 자신을 다그치며 마음에 하느님을 담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소임을 나가는 해가 길어질수록 가난은 수도복에만 머물고 순명은 자기 수도회 장상에게만 향하고 정결은 수도원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되게 되지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요?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자기 수련이 부족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수도자가 하는 종신서원(성대서원)은 그것을 끝이 아닙니다. 종신서원으로 수도자의 양성과정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양성되고, 스스로 양성시키는 모습이 필요한데, 소임과 사도직, 즉 일때문에 바쁘기만 하다 보면, 수도자는 그 사람 자체로 수도자이기 보다, 수도자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수도자라는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 일을 마치고 난 어느 곳에서 수도자라는 마음의 옷을 벗고 나면 전혀 수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이유는, 신자들이 수도자를 그렇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수도자적 결함이 많이 보이는 수도자들은 신자들과 많이 접해본 수도자들이 많이 그러합니다. 반대로 신자들이 잘 모르는 수도자들, 신자를 많이 접하지 않는 수도자들은 대게 수도자답게 사는 편입니다. 특히 남자 수도자들, 특히 평수사들은 대게 겸손하십니다. 이것은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신자들이 수도자에게 의지하며 감사하는 방법들은 수도자가 수도자답게 잘 살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수도자나 아마도 처음에는 겸손하려고 하더라도, 신자들의 갖은 대우는 그들을 오만하게 만듭니다. 몇 년만 지나다 보면 신자들이 대우에 익숙해진 수도자는 어느 새 그들이 먼저 대우를 요구합니다. 이런 타성에 젖는 모습은 수도자들 각자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신자들의 오래된 고정적 관념이 깨지지 않는 이상, 나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수도자들 또한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은, 우선은 수도자 각자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하는 것(do)가 아니라 있는 것(be)입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머무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이 단지 하는 것이 될 때에, 그것은 하고 마는 것도 되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수도생활이 자기자신의 삶 자체가 아니라 보상을 바라는, 댓가를 바라는 어떤 일이 되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을 봉헌생활이라고도 합니다. 수도자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삶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그 안에,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보편된 인간에 대한 봉사가 이루어집니다. 댓가를 바라고자 한다면, 하느님께 댓가를 바랄 뿐입니다.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자기 생활에 대한 댓가를,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바라게 될 때에, 수도자가 하느님께 바랄 수 있는 몫은 지극히 적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일생을 마감하고 하느님 앞에 간 자리에서는, 지상에서의 수도생활을 끝냈으니, 그는 더 이상 수도자라고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하느님께 대한 봉헌의 삶을 이루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느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지금의 아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또한 타성에 젖어 일하는 것으로 수도생활을 하는 이들도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물질적인 혹은 보여지기는 것으로 수도자들에게 감사하기 보다, 그들의 삶이 하느님보시기에 아름다울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로 수도자들을 위한 영적 예물을 더 많이 바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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