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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정 [tjjoo] 쪽지 캡슐

2001-03-27 ㅣ No.960

해바라기의 속살   정채봉

 

그 해바라기는 비럭땅 언덕배기에다

뿌리를 내리고 서 있었다.

그러나 왜 이런 박한 땅을 터로 주었느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묵묵히 자라고 있을 뿐이었다.

 

곁을 지나는 호박 넝쿨에는 호박꽃이 피어서

벌들이 잉잉거리며 드나들었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언제쯤 저도

벌들과 교제할 수 있느냐 묻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저한테도 꽃이 피어서

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해바라기는 장마 동안

해를 언제 보느냐고 안달하지 않았다.

 

폭풍을 오지 말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고통도 끝이 있으리라 믿었다.

 

마침내 해바리기한테도 꽃이 피었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여름이 길까, 짧을까,

씨가 얼마나 들까 묻지 않았다.

 

오직 해바라기는 자신의 소박한 기다림이

속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다.

 

해바라기는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

빈틈없이 속살을 찌운다.

 

이 단순함이 해바라기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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