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남들이 바보라고 하면 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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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4-15 ㅣ No.4766

 

남들이 바보라고 하면 좀 어떻습니까?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넉넉해야 남도 돕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상식’이 틀릴 때도 있는 모양입

니다.

내 주머니는 텅텅 비어도 남 돕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가끔 바보라는 핀잔도 듣는 사람, 지금

오토바이의 짐칸에 오늘 장사할 재료를 챙기는 김종성

님(54세)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대구시에 사는 그의 다른 이름은 ’뽕짝아저씨’.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흥겨운 뽕짝이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늘 웃는 얼굴에 신바람이 흐르는 그는 하루 종일 시내

곳곳을 누비면서 오토바이 이동 꼬치구이 장사를 하고

삽니다.

"내가 대구에서 오토바이 꼬치장사 원조거든.

기동력도 빠르고 어느 행사장이든 못 가는 곳이

없어요."

오늘 그의 노점이 먼저 찾은 곳은 작은 공장들이 몰려

있는 공단 근처의 길거리입니다. 자리를 잡고 꼬치를

굽기 시작하는 아저씨.

그의 오토바이에서 울려 퍼지는 뽕짝 소리에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 듭니다.

젊은 시절 운영하던 작은 공장이 불에 타 완전히 파산

한 그는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한 잔에 300원 하는

잔술과 뽕짝 가락이 양념처럼 밴 꼬치구이를 팔아

왔습니다.

"작업하다가 밖에서 쿵짝쿵짝 소리 들리면 아, 이

아저씨가 지나 가는구나 하고 반갑죠.

고되게 일하다가 소주 한 잔에 닭 발 한개 안주하면

딱 좋거든요."

이렇게 한바탕 손님들이 가고 어느 정도 한산해질 때

쯤이면, 그는 다시 짐을 챙겨서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어두워지는 시각, 그가 자리를 옮긴 곳은 시장 근처.

그는 이곳에서 뽕짝과 꼬치구이 말고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유명합니다.

 

"이 아저씨요? 하도 좋은 일을 많이 하니까 시장 사람

들이 다 알죠. 불우이웃 돕기도 많이 하고,

양로원 같은 데 찾아 가서 봉사 활동도 하고,

지금 우리 한잔 마시는 것도 이 양반 주머니로는 하나

도 안 들어갈 걸요? 좋은 일에 다 쓰지...."

그가 다른 사람을 도운 지는 올해로 8년째.

시작은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어느 돼지 도살장 앞에 꼬치를

팔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찌꺼기 고기

들을 보면서 저거라도 있으면 명절날 어려운 사람들이

고깃국이라도 한 번 먹겠지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찾아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선뜻

찌꺼기 고기에 멀쩡한 고기 다섯 근을 썰어서 그에게

주더랍니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와 함께 음식들을 꾸리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매년 두 세차례 방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아직 단칸 월세방을 벗어나지 못했

습니다. 밤이 되면 젊은 시절 베트남 전에서 얻은 상처가

다시 아파 오지만 그는 매달 나오는 20만 원의 보조금까지

남 돕는데 아낌없이 씁니다.

 

1년에 두어 번, 그의 오토바이가 출동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이들 부부가 하루에 5천원씩 저금한

돈으로 경로 잔치를 벌이는 날,

주문한 떡이 그의 아내가 하는 실내 포장마차 집으로

배달 되고, 이가 약한 노인들을 위해 아내가 새벽부터

끊인 돼지고기 수육도 푹 익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한번 돕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면서 적젆은 주머니 돈까지 쏟아 붓게 됐지만

그는 아내마저 든든한 아군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없는 사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장

골목 사람들 까지 그의 경로 잔치에 힘을 보태줍니다.

잔칫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양로원의 노인들이 그를 반겨

줍니다.

그새 낯익은 노인 몇몇의 얼굴이 사라지고 낯선 노인들의

얼굴로 다시 채워진 양로원.

하지만 몇 년째 그를 봐 온 노인들이나 처음 보는 노인들

이나 마이크 잡고 흥을 내는 그를 맏아들 보듯 미더운 눈

으로 맞아줍니다.

준비한 음식이 나눠지고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밤을

새워 가며 준비한 오늘의 잔치가 절정을 맞습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환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내가 건강한 날까지 남을

돕겠다는 그 마음은 지금은 변함이 없는데,

모르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언제 변할지."

특별한 이유도 계기도 없이 그저 마음 하나만으로 불쑥

시작된 뽕짝 아저씨의 잔치.

그에게 봉사라는 거창한 말이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그의 말대로 이것은 그저 삶의 일부요,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유라는 것은 있음에서 남는 넉넉함이 아니라

없음에서 남기는 넉넉함의 미덕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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