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명절에 어머니께서 20년이 넘도록 가슴에 간직해 두셨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 넉넉지 않던 시절, 대학을 다니던 형에게는 변변한 점퍼 한 벌이 없었다. 얇은 옷으로 나가는 형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근처에 사는 이웃이 작업복으로 입히라고 점퍼를 한 벌 갖다 주었다. 경찰서에 근무하던 그 댁 아저씨의 근무복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80년대 초, 경찰과 학생들은 각이 지게 대립하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가득했다. 경찰 근무복을 입고 학교에 간 형은 프락치라는 오해를 받고 몇몇 학생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도 형을 아는 다른 학생들의 개입으로 오해는 풀렸지만 자칫 큰 사고로 번질 뻔했다. 핏자국은 그럭저럭 지우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멍든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형을 보면서 어머니는 가슴이 떨렸지만 형을 믿는 마음으로 묻어두었단다. 며칠 후 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부모 잘못 만나 옷 한 벌 없어서 이런 일이 생겼노라고 마음 아파하셨다. 형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단다. 20여년이 지나고서야 이야기를 꺼내셨고 역시 그동안 한번도 그 일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살아왔던 형도 계면쩍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또 그 상처를 부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피멍 든 얼굴을 감추며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형의 아픔이 이제는 가족을 더 단단히 묶어주는 사랑의 기억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때의 상처는 아프고 쓰라렸지만 상처 입어 아팠던 그만큼의 사랑이 이제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음을 본다. ‘눈을 뜨게 될 때’ 우리의 상처는 고통스러운 아픔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뿌리 내리는 좋은 거름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사랑과 믿음으로 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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