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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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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11-11 ㅣ No.3748



나그네 인생
  
      竹詩 죽시 -김병연(金炳淵 1807∼1863)-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粥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며 
      옳은 것 옳다, 그른 것 그르다 저대로 부치세. 
      손님 접대는 가세(家勢)대로 하고 
      시정(市井) 매매는 시세대로 하세,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문전박대
      
      
      斜陽叩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字亦知風俗薄 隔林啼送佛如歸
      두자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해가 지자 김삿갓은 또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 나섰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선 김삿갓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기와집으로 걸어갔다.
      그 집이 얼마나 넓은지 가까이 다가가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이리 오너라."
      늘 그렇듯 김삿갓은 큰소리로 외쳤다.
      조금 지나자 예상대로 하인 하나가 조르르 달려 나왔다.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자 하인은 금방 태도를 바꿔 
      하대하듯 말했다.
      "거지 주제에 공손하게 밥이나 한술 달래서 가져 갈일이지 
      건방지게 양반 흉내는..."
      그러자 김삿갓은 하인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허어, 하인 주제에 말이 거칠구나, 
      어서 가서 주인 어른 나오시라고 해라."
      하인은 기가 막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이 이런 거지 놈이 어디서 감히 우리 주인 어른을 나오라고 
      호령을 하는게냐? 이 댁이 어떤 댁인 줄 알기나 하느냐?"
      김삿갓 역시 예절도 없고 무식한 하인과 말싸움을 하기는 싫었으나
      짐짓 궁금하다는 듯 물어 보았다.
      
      "그래, 이 댁이 어떤 댁이냐?"
      "이 댁은 대대로 16대째 살아오고 있는 뼈대 깊은 댁이다.
      너처럼 근본도 없는 거지가 넘볼 집이 아니란 말이야."
      이번에도 김삿갓은 준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16대가 지금 이 집에서 다 살고 계시느냐?"
      "이런 미친놈 봤나 그야 윗분들은 벌써 돌아가셨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김삿갓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 댁 주인이나 나나 이 세상에서 잠깐 머물다 갈 
      나그네가 아니겠느냐? 나그네가 나그네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어서 가서 주인 어른 모셔 오너라."
      그때 뒤에서 듣고 있던 주인이 하인을 물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삿갓 양반 말씀이 옳소.
      어서 안으로 들어 오시오. 우리집 하인이 무례를 범했구료."
      인생에 대한 철학을 아는 주인을 만난 덕에
      김삿갓은 그날 밤 그 집에서 편히 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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