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니촌 교우:병인군난에 동리 교우가 잡혀 많이 치명하였으나 성과 본명은 모르노라. 아전의 아들:본래 황주 아전의 아들이요, 또한 곱사등이 아이라. 무진년에 본읍으로 잡혀가 아랫사람과 함께 치명하니라. 아전 아들의 동무:이 사람은 장성한 어른이나 성과 본명은 알지 못하되 이 위 있는 곱사등이와 한가지로 치명하였다 하더라.’ 1895년 뮈텔 주교님이 기록한 「치명일기」 중 황해도 황주 편에 있는 치명자들의 기록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뒤져보다 우연히 펼쳐본 낡은 책에서 발견한 이분들의 기록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름조차 모르는 이분들의 삶을 가끔 마음으로 그려본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신앙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붙잡히고 치명했는지 이제는 알 길이 없다. 순교의 순간에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칼을 받았을까. 그동안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지냈던 아름답고도 버거웠던 신고의 지난 삶을 그리며 돌아가셨으리라. 모든 일은 그 한순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까지 매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로 결정된다. 순교는 찰나적인 죽음의 순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순교의 칼날을 받지 아니하였더라도 그분들은 이미 순교의 삶을 살고 계셨으리라. 순교는 다만 하느님을 향한 그 충실한 신앙의 삶을 증언한 것일 뿐이다. 죽음은 순간이지만 바로 그 한순간에 평생토록 살아온 삶의 매순간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아무도 그 순간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맞이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매일매일 부딪치며 살아야 할 오늘의 매순간이 중요한 것임을 순교자들은 일깨워 주고 있다. 주님께 온 정성을 다해 이 순간을 살아가기를 청한다. 오늘 내가 처한 이 순간이야말로 내 전생애를 좌우하는 특별한 순간이며 하느님을 향한 고백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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