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눈을 뜨다(11/15) *

인쇄

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758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2004-11-15)

독서 : 묵시 1,1-4. 5ㄹ;2,1-5ㄱ 복음 : 루가 18,35-43

* 눈을 뜨다 *

예수께서 예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나자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자 그 소경은 곧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라고 일렀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루가 18,35-­43)

작년 명절에 어머니께서 20년이 넘도록 가슴에 간직해 두셨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 넉넉지 않던 시절, 대학을 다니던 형에게는 변변한 점퍼 한 벌이 없었다. 얇은 옷으로 나가는 형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근처에 사는 이웃이 작업복으로 입히라고 점퍼를 한 벌 갖다 주었다. 경찰서에 근무하던 그 댁 아저씨의 근무복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80년대 초, 경찰과 학생들은 각이 지게 대립하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가득했다. 경찰 근무복을 입고 학교에 간 형은 프락치라는 오해를 받고 몇몇 학생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도 형을 아는 다른 학생들의 개입으로 오해는 풀렸지만 자칫 큰 사고로 번질 뻔했다. 핏자국은 그럭저럭 지우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멍든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형을 보면서 어머니는 가슴이 떨렸지만 형을 믿는 마음으로 묻어두었단다. 며칠 후 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부모 잘못 만나 옷 한 벌 없어서 이런 일이 생겼노라고 마음 아파하셨다. 형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단다. 20여년이 지나고서야 이야기를 꺼내셨고 역시 그동안 한번도 그 일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살아왔던 형도 계면쩍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또 그 상처를 부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피멍 든 얼굴을 감추며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형의 아픔이 이제는 가족을 더 단단히 묶어주는 사랑의 기억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때의 상처는 아프고 쓰라렸지만 상처 입어 아팠던 그만큼의 사랑이 이제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음을 본다. ‘눈을 뜨게 될 때’ 우리의 상처는 고통스러운 아픔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뿌리 내리는 좋은 거름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사랑과 믿음으로 보는 것이리라.

이정호 신부(구속주회)

-  떠나는 길에서 머무른 듯 -

떠나는 길에서
머무른 듯 살고 있는 나는

푸른 하늘만 보고 살 수 없는
풀잎처럼
단비같은 사랑을
먹고 자라고 싶습니다

모두들 그럴 듯 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리네 삶이란
환상도 아닌 현실이기에

안고, 눕고, 걸을 수 있는 길에
사랑하는 그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무는 서서 뻗칠 수 있는 가지마다
잎들이 자라지만
우리네 삶이란
뻗쳐도 뻗쳐도
남는 것은 그림자뿐

우리는 늘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럴 듯 한 사랑을 하고픈 것입니다

- 용혜원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 :) +
† 볼 수 있기를 원하나이다... †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가 사는 곳은 언제나 양영성체를 합니다. 두 손으로 받아든
성체를 입에 넣고 포도주를 한 모금 입에 담아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서.../성체를 받았던 손을 눈에다 살포시 대어 봅니다.

그리고 뜨건 가슴으로 그분에게 나즈막히 고합니다.
'내 靈眼을 밝혀주십사...
내 눈을 밝혀주셔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청하나이다'..
내 영안이 밝아지면 당신을 뵈올 수 있나이다...
세상의 그 어느것도 다 뛰어넘을 수 있나이다...

이 세상의 것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신을 향하여 갈 수 있나이다.
당신이 오라하실 때에 베드로처럼 바다위도 건널 수 있나이다...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바라 볼 수 있는 靈眼을 밝혀주십사.../간절히 청합니다.

어느날은 예리고의 소경처럼...
어느날은 삼십팔년 된 혈루병의 여인처럼...
어느날은 .../그 간절함이 나날이 식어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마태오 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우리의 두 눈은 분명 멀쩡이 뜨고 있지만, 어느 이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나, 어느 이는 손에 쥐어 주어도 알지못하는 눈뜬장님이
있습니다. 내 자신은 그렇지 않은가...글을 써내려가며 앗!나 자신
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안타까운 내 모습입니다... ㅠ.ㅠ

오늘 묵상 글에서 이 정호신부님의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사는
내음이 물씬 전해져옵니다. 시대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던 이들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랬습니다. 흑 아니면 백이라는 획일
적인 사고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피로 물들였습니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사라졌나여!/애도하는 맘입니다.

묵상 글의 마지막 글귀를 붙잡습니다.

‘눈을 뜨게 될 때’
우리의 상처는 고통스러운 아픔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뿌리 내리는 좋은 거름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눈을 뜨고 싶습니다. 내 靈眼이 뜨게 된다면...
고통스러운 상처들이 오히려 앗!나에게 은총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상처가 있기에 더 많은 이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겠지요.
그 상처들이 오히려!.../사랑을 뿌리 내리는 좋은 거름이 될 것입니다.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오! 주님, 내 연약한 믿음을 더하소서!
눈을 뜨라 하셨는데...아직도 살며시만 뜨고 있는 눈을...
강한 믿음 주셔서 내 눈이 크게 뜨여지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사랑과 믿음으로 보는 것이리라.


『야곱의 우물』이여!
아~!... 시원합니다. 깨우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눈 뜨기를 간절히 원하는...


 


안나가요*^^*


 


1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