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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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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5-12-27 ㅣ No.4643

 

가끔 결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학년이 끝나면 다음 학년으로 이어지듯이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생각되어 반드시 이루어야하는 시대적 사명으로


여겨졌던 시절에 있었던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번 일요일에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언제부터라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 신랑과 신부의


결혼 보다는 그들의 부모의 입장에서 준비한 식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두고 있는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도시에 위치한 안성 성당은 콘크리트 거푸집에 마감공사를 하지 않은 투박한 겉모습이


돌출된 자연미가 돋보이는 시골 성당이었다.


맑고 청아한 합창이 이층 성가대석에 울려 나오고 있었고, 성당 내부가 온통 꽃과 풍선으로


장식되어 의미 있는 결혼미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식순에 따라 먼저 입장한 신랑은 신부님 앞에 돌아서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지곡 연주에 발맞추어 친구는 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처음이자


마지막 행진을 하고 있었다. 신부는 새로 입은 웨딩드레스 안에 발놀림이 어색해서인지


음악에 맞춘 발걸음이 자꾸 늦어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아버지는 앞 만보고


나아가는 바람에 둘 사이가 벌어져 결국 보조가 맞지 않는 웨딩 행진이 되고 말았다. 사전


에 연습을 충분히 하였을 터인데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둘 다 처음 접하는 일이기 때문이었


을 것이다. 특히 친구는 이제 몇 발짝 후 에는 스믈여섯해 동안 곱게 길렀던 딸아이를 아직


은 낯선 사내에게 넘겨 줘야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붉은 카펫의 끝자락인 제단 앞부분 단상에 서있던 신랑이 내려와 신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웨딩마치가 끝나자 새 신랑이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신부의 손을 옮겨 잡으려는 순간, 친구


는 딸아이의 손을 그대로는 놓을 수 없었던지 얼굴을 돌려 신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친구 딸아이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는가 싶더니 이내 아버지의 마지막 정을 눈을 감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새로운 만남과 시작을 확인하고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던 의미 있는 


이별의식은 내가 보아왔던 많은 결혼식 중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게 되면 이러한 이별의식은 결혼식 앞부분에 갖는 양가 어머니들의 촛불의례


처럼 결혼식 절차의 한 단계로 우리의 결혼문화로 자리 잡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사포를 쓰고 있는 딸에게 법적 이별을 고하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남겨진 쓸쓸함이


엿보였다. 딸과의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던 아비가 갖는 연민의 정이 지척 거리를


뛰어넘은 내 마음에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문득 이십오 년 전, 내 결혼식 때에 혼자 되셨던 어머니가 식장에서 느끼셨을 심적 허전함


을 시간의 수레바퀴를 윤회한 지금에야 느끼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느낀 슬픔과 회한의 감정이 가슴 쪽으로 옮겨와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이어진 목젖을 타고 전달되어 오고 있었다.


맑고 화사한 봄날에 피어나던 새로운 가정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쓸쓸한 느낌을 떨쳐내고자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보고 있어도 진정 그리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모습과 우는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우리 노인들의 모습 속에 숨겨진 느낌처럼,


그날 내 감정의 기복이 그러했던 것은 내게도 과년한 딸이 있어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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