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시] 종이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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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이 [songei91] 쪽지 캡슐

2002-01-12 ㅣ No.8457

 

 

종이배 사랑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 보내는 저녘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해빛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 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 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 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이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 오기를 수 십 번

 

사랑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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