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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1일 성 다마소 1세 교황 ♬12.Christe Redem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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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2-11 ㅣ No.795

축일 : 12월 11일

성 다마소 1세 교황. 로마.

St. Damasus 1, Pap.37대교황(305 ? -384년)

 

스페인 혈통을 가진 성 다마소는 305년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때 로마 제국은 디오클레시시아노 황제 시절로, 고금 미문의 잔혹한 박해가 있었으나 다행히 그의 양친은 관헌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다마소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가 여덟살이 되었을 때, 천하를 장악한 콘스탄티노 대제가 교회의 자유를 선포하여 교회에는 마침내 봄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독실하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후에 성직에 오르고 어머니는 수도 서원을 했으며, 여동생 이레네는 종신 동정을 지켰다.

 

그는 355년 교황 리베리오의 보좌 신부가 되었으며, 얼마 후 콘스탄티노 대제가 교황을 추방하자,

다마소는 로마 성직자 일동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서약하고, 교황의 위임을 받아 그의 부재중 교회를 대리 통치했고,

그리고 10년 후 리베리오 교황이 서거하자 그는 정식 선거를 통해 366년 그 후계자가 되었다.

 

그때 울시티노라는 한 부제가 야망에 눈이 어두워 몇몇 군중의 힘에 움직여 교황이라 자칭하며 나섰으므로,

양 교황간에 투쟁이 일어나 큰 소동을 빚었다. 당시 로마 시장인 유벤티노는 거짓 교황 울시타노에게 시외에 퇴거하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울시티노는 무력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음을 원통히 여겨, 이번에는 갖은 거짓말과 비난을 다마소에게 퍼부었다.

 다마소는 조금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곧 주교 회의를 열고 정식 교황 여부의 흑백을 가렸다.

그후 다마소는 다시 한번 정식으로 성 베드로의 정통 후계장임을 인정 공포했다.

다마소는 소동을 일으킨 울시티노와 그 동료들을 용서 없이 처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마음에서 이를 불문에 붙이고 덕으로써 그들을 감화시켜 마침내 그들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 당시 아리우스 이단이 고개를 들고 교회를 전복하고자 했으므로

교황은 그 이단에 마음을 두고 있는 주교둘을 파면하는 동시에 올바른 신앙에 있는 주교들을 옹호했다.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암브로시오등 유명한 교부들이 교황을 원조하여 대활약을 한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성아우구스티노축일:8월28일.게시판607번,성암브로시오축일:12월7일.게시판790번)

 

다행히 황제 발렌티니아노도 교회측에 가담해 특별 칙령을 내려 교황권을 존중하고 정통 신앙을 따르도록 유시했다.

이렇게 호교를 위해 투쟁하는 중에도 성서학자이던 그는 성서의 정경을 발표하였고,신앙의 기반이 되는 성서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374년 로마 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서를 명시하는 한편,  

그의 비서였던 예로니모에게 라틴어로 성서를 번역하도록 부탁해 이것을 신자들에게 사용하도록 했다.

오늘날의 유명한 불가타 성서(대중 라틴말 성서)가 바로 이것이다.

 

 

다마소는 아리아니즘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블 공의회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아니즘을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체도니우스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그도 그의 재임 기간에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회가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 중의 최고 교회로서 로마를 선언하였다.

 

그 외 다마소는 로마에 몇 개의 성당을 건축하고, 순교자의 유골을 모셔 둔 카타콤바의 보존을 위해 그 매몰된 것을 발굴케 하고,

성인들이 묘를 대리석으로 개축해 손수 지은 비명(碑銘), 송덕(頌德)의 시편을 조각가 필로카로를 시켜 새로운 글씨체로 조각하게 했으며,

다윗의 시편에 영송(榮誦)을 첨가해 성직자로 하여금 읊게 했다.

그는 위대한 교황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빛나는 자취를 남긴 다마소는 교회를 통치하기 18년, 80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그가 생전에 알테아티나 가로(街路)에 세운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예로니모(축일:9월30일.게시판670번)는

다마소가 "성서에 정통하고 순결한 교회 학자로서 비할데 없는 인물이며,

정결을 사랑하고 정결에 대해 기쁘게 찬미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의 비서에게 말했다.

 

다마소는 이렇게 가끔 한없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내부의 정치적 갈등,단적인 교리,동료 주교들이나 동방 교회 주교들과의 불편한 관계 등은 그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교황으로서 그의 생활 양식은 로마의 다른 성직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단순했지만 아리아니즘이나 다른 이단을 공격하는 데는 과격했다.

로마가 사용한 삼위일체의 용어에 대한 오해로 동방 교회와의 우호적인 관계가 위협당하자 다마소는 조심스럽게 그 상황을 타개하여 화해시켰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선포된 것은 그가 교황으로 재임하던(380년) 중이었다.

그리고 교황의 개혁으로 라틴어가 중심적 전례 언어가 되었다.

 

그는 성예로니모의 성서 연구를 격려하여 그가 불가타 번역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 불가타 번역은 트렌트 공의회(11세기 후에)가 "공식 낭독과 논증,설교에서 권위있는 것이라"고 선포한 라틴어 성서 번역이다.

 

교황과 교회의 역사는 다마소 교황의 개인적 전기와 풀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다.

교회사에서 중추적이면서도 혼란한 시기에 그는 신앙의 열성적인 옹호자였으며 언제 전진해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안 사람이다.

 

우리는 다마소에게서 훌륭한 지도자가 갖는 두 가지 특성을 알수 있다.

그것은 성령의 충동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과 봉사이다.

그의 갈등은 예수께서 당신의 바위가 폭풍에서 보호되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면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의 보증은 그의 성령에 충실함으로써 얻게 될 최후의 승리인 것이다.

 

"바다 위를 걸으면서 심한 풍랑도 진정시킬수 있는 분, 지상의 죽어 가는 씨앗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죽음의 끔찍한 쇠사슬을 푸실 수 있고 3일간의 암흑 이후에 마르타를 위하여 그의 오빠를 이 세상에 다시 불러오실 수 있는 분,

다마소가 먼지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드실 분, 그분을 나는믿는다."

(다마소가 자신을 위하여 쓴 비문)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글 [파우스투스를 거슬러]에서

(Lib. 20,21: CSEL 25, 562-563)

 

우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교자들을 공경합니다.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순교자들을 본받을 마음을 북돋우고 그들의 공로를 함께 나누며

그들의 기도가 주는 도움을 받고자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경건한 예식으로 그들을 경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무덤에다 제대를 세울 때 그것을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에 대한 기념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 중 누가

"이 제사는 베드로 당신께, 바울로 당신께, 또는 치쁘리아노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 바치는 제사는 월계관을 받은 순교자들의 기념 성당에서 바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고 그 월계관을 주신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바로 그 장소는 우리가 순교자들을 본받을 수 있는 그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본받는 데 있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좀더 깊이 되살아나게 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을 공경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치고자 하는

경건한 성도들을 공경할 때 가지는 같은 사랑의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공경합니다.

그러나 모든 투쟁을 이겨내고 승리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공경은

현세에서 아직 전투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바치는 것보다 더 경건하고도 확고한 공경입니다.

 

그리스어로 "라트리아"(경배)라고 하는 흠숭은 하느님께만 바치고 또 하느님께만 바쳐야 한다고 우리는 가르칩니다.

경배는 오직 하느님께만 합당히 바칠 수 있는 흠숭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바치는 제물은 "라트리아" 즉 경배로서 바치는 제물입니다.

 

그래서 우상들에게 바치는 제사는 "이돌로라트리아" 즉 우상 경배(숭배)라고 합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이나 거룩한 영혼들이나 천사들에게 이와 같은 제사를 절대로 바치지 않으며 또 바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만일 이런 오류에 빠진다면 우리는 건전한 신앙 교리에 따라 정정이나 경고로써 마땅히 그의 잘못을 고쳐 줍니다.

 

성인들이나 일반 사람들도 하느님께만 합당히 바칠 수 있는 이 경배를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이렇게 했습니다. 리가오니아의 시민들이 그들이 행하는 기적을 보고 몹시 놀라 그들이 신인 것처럼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려 했을 때

이 두 사도들은 자기 옷을 찢어 맹세하며 자기들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납득시켜 제사를 바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지만 참아 주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이것이지만 우리가 할 수 없이 고쳐 주어야 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잘못을 고쳐 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참아 주어야 합니다.

 

 

♬12.Canto Gregoriano-Christe Redem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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