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이달(2월)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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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순 [won3d] 쪽지 캡슐

2001-02-13 ㅣ No.3518

이달(2월)의 성녀 : 아가다 동정 순교자 (축일 2월 5일)

 

 아가다( 善 )는 세실리아, 루시아, 아녜스와 더불어 로마 4대 동정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초세기 미사전문에 그 이름이 나올 만큼 일찍부터 신자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시칠리아 섬 까따니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아가다의 가문과 미모에 반한 총독 뀐띠아노는 여러 번 청혼을 하였으나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께 바치기로 한 아가다의 불타는 신앙심 때문에 거절 당하자 총독의 사랑은 증오심으로 변하여 그리스도 신자라는 죄명으로 아가다를 체포하였다. 때는 250년경 로마 데치모 황제 박해 때였다.

 

온갖 형벌을 가하고도 설득시켜 보았으나 아가다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곡식이 타작 되기 전에는 광 속에 들어가지 않듯이 내 영혼도 육신이 모진 형벌에 찢기기 전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하면서 오히려 희색이 만면하여 더 큰 고통을 받길 원했다. 사실상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이 났다. 화가 극도에 달한 총독은 잔인하게도 벌겋게 달군 쇠로 아가다의 유방을 떼어내게 했다. 처참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죽은 줄로만 여겼던 아가다는 아무렇지도 않고 더구나 그 상처가 깨끗이 나아 있음을 보자 뀐띠아노는 당황하였고, 그칠 줄 모르는 총독의 증오심 때문에 활활 타는 석탄 불 속에 던져진 아가다는 최후의 순간까지 주님을 찬미하며 고통을 감수하였다.

 

일년 뒤 까따니아에 있는 옛나 화산이 폭발하자 사람들은 아가다의 무덤에 달려가 도움을 간청함으로써 재앙을 모면하였다 하여 화재의 보호자가 되었고 또 가슴 앓는 이의 보호자 혹은 간호사의 주보가 되기도 하였다.

신앙을 위해서 또 사사로이 한 동정 약속 때문에 온갖 모진 형벌을 받고 생명마저 바친 용감한 아가다! 조그만 유혹과 곤란 앞에서도 신앙과 공적 약속을 저버리는 현대인에게 어찌 산 교훈이 아니리!

 

신앙과 사랑이 크면 클수록 십자가는 달고 가벼운 법, 즈그만 십자가에 울상이 될 때, 커다란 십자가에 기뻐하는 아가다를 생각하자.

 

◈ 이달(2월)의 성녀 : 스콜라스티카 (축일 2월 10일)

 

 성녀는 수도원 창립자로서 유명한 성 베네딕도의 동생으로 480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녀의 출생 후 1년도 못되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녀는 오빠와 같이 아버지 슬하에서 양육되어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오빠 베네딕토가 세속의 소란함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그는 아직 아버지의 슬하에 머물러 있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아름다웠고 또한 부유한 가정이었으므로 나이가 차자, 많은 로마 청년 귀족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됨 없이 그 혼담들을 물리쳤다. 그 이유는 자기도 오빠와 같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신심이 두터웠던 아버지는 늙어서 의지할만한 딸을 떠나 보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종내 그의 열심에 탄복해 수도생활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몫의 재산을 빈민에게 분배해주고, 오빠의 수도원이 있는 몬테 카시노에 작은 초막을 세우고 오빠의 지도하에 극기, 희생의 고행과 부단한 기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열심한 여성들이 스콜라스티카의 덕을 사모해 모여와서 같이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으므로, 베네딕토는 산상의 자기 수도원에서 이미 실행해 온 대로 여동생의 수도원에도 일정한 회칙을 정해 주기로 했다. 성녀는 이 회의 최초의 총장으로서 말과 행실로써 자매들에게 덕행의 길을 가르쳐 왔는데, 그 사랑의 온순함과 그 기도의 열심함과 모든 덕의 우월함은 언제나 자매들을 감동케 하였다.

 

성녀는 오빠 성 베네딕도와 쌍동이란 말도 있으나 확실치 않지만 같은 정신으로 살다 같이 죽어 묻히고 같은 성덕의 월계관을 얻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쌍동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성녀는 1년에 한번씩 베네딕토를 만나 자매들의 지도에 관한 주의를 받거나, 오빠의 유익한 담화를 들어 마음의 양식을 삼거나 하기로 결정하고 그 회합의 장소는 양 수도원의 중간쯤에 있는 작은 촌집으로 결정하였다.

 

543년 2월 7일. 마침 성스러운 남매가 1년에 한 번 서로 만나려고 하는 그 날이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가 쓴 <대화록>에 이들의 마지막 상봉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오누이는 지척에 살며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견우 직녀처럼 일년에 단 한번 만날 뿐이었다. 따뜻한 이른 봄, 산마루의 꽃들이며 새들이 오누이의 상봉을 축하하는 가운데 오빠는 몇 동료와 더불어 수도원에서 내려왔다. 초막에서 동생을 맞이하여 일년 동안 쌓인 영적 담화를 나누며 하느님을 소리 높여 찬미하였다.

 

주님 앞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다더니 잠깐 사이에 밤이 되어 오빠는 일년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뜬다. 동생은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임을 예견했음인지 오빠를 붙들며 더 얘기하자고 간청하였다. 이를 거절하자 동생은 슬픔에 잠긴 채 기도하였다. 그러자 때아닌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오빠의 길을 막았다. "보세요. 오빠가 거절한 것을 하느님은 들어 주시잖아요. 가실 수 있으시면 가 보세요" 하고 동생은 미소 지었다. 그리하여 예순이 넘은 오누이의 찬미가는 밤을 새웠다. "

 

며칠 후 한 마리 흰 비둘기의 승천을 보고 오빠는 동생의 귀천을 직감했다. 동생의 시체를 자기 무덤에 안장한 사십 일 뒤 오빠도 동생 곁에 나란히 묻혔다. 그렇게 사랑하던 오누이는 이제 더 이상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성인은 커녕 사람도 될 수 없다.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미는 이가 있어야 한다. 우리도 서로 돕고 사랑하여 히말라야 산봉 같은 성덕의 정상에 도전하자

첨부파일: 스콜라스티카.jpg(73K), 아가다 동정 순교자.jpg(2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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