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배 아파 낳지는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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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4-14 ㅣ No.4763

 

 

배아파 낳지는 않았어도 모두가 내자식입니다

 

순천의 와룡동 SOS마을.

부모 없는 고아나 혹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새로운

어머니를 만나고 새로운 형제자매를 만나 한 가족을 이루어

사는 곳입니다.

이 마을이 아이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딴 게 아닙니다.

어머니와 형제자매, 그리고 집,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이지만

박탈되었을 때는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아주 절실

한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

면 그것은 ’어머니’ 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입술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어머니라는 단어는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달콤하고 다정한 단어

입니다.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 주고 절망했을 때는 희망이 되어

주며 약할 때는 힘이 되어 주는....

 

여기 그처럼 절실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20여 년의 세월을

’어머니’ 로 살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서남숙 님(47세).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한 번도 배가 아파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을 기른 어머니

입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이가 이 곳의 어머니가 된 것은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마을에 대한 소개를 듣게

되었는데, 결혼하지 않고 수많은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길로 그녀는 무작정 전라도 순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기로 와서 ’어머니’ 라는 세상에서 가장 막중하

고, 두렵고, 소중하고 어려운 역할을 임명 받으며 생각했

습니다.

눈물로 애원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온 길인 만큼 더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꽃 같은 청춘의 나이에 연애와 결혼은

저만치 밀쳐주고 다만 어떻게 하면 어머니 다울 수 있을

까를 고민했습니다.

나이 든 아이들의 어머니답게 보이려고 일부러 아줌마

파마를 하고 긴치마를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들어온 아이의 경우는 자신의 처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괜찮지만, 밖에서 숱한 상처를 받고 어른

이나 부모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잃어버린 머리 큰 아이

들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런 아이들은 ’엄마’ 라는 말을 내뱉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너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줄게. 네가 편하다고 느낄 때

까지 기다릴 테니까 그 때가 되면 나를 엄마라고 부르렴."

그런 그녀가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는 것은

’친엄마같이. "아무리 잘해도 결국 ’같이’ 라는 근사치의

개념일 뿐이에요.

친엄마는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겠죠.

그것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로 인해

최선을 다하게 돼요."

 

그러나 상처입고 마음을 닫아 버린 아이들의 어머니 노릇

하기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미니 자리를 그만 놓아 버리고 싶던 적도 있습

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그만둬 버리면 다시 또 한번

어머니를 잃게 될 아이들의 존재가 그녀를 붙들어 주었

습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스무 해가 훌쩍 가 버렸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

 

지금 그녀가 키우고 있는 자식은 모두 아홉 명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전과 달리 젊은 엄마로 보이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형진이까지는 괜찮은데 막내

경민이와 해림이가 학교에 가면 너무 늙어 보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자신이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 가슴이

찢어지고 행여 조금이라도 다쳐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는 보통 엄마 서남숙 님.

작년에 막내 경민이가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대수술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살 난 아기를 금식시키는데 눈 뜨고 못 봐 줄 정도

였어요.

나중에는 음식을 못 먹으니까 경민이가 과자 냄새만 맡

고 과자는 옆 사람 입에 넣어 주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

어요."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마음이 아픈지 울먹이는 그녀

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오랜만에 대학생이 된 큰딸 마리아가 엄마를 보러 내려

왔기 때문입니다.

 

14개월의 아기였던 마리아는 이제 엄마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중3 때 진학 문제 때문에 엄마와 마찰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막 욕하는 편지를 친구에게

썼는데 우연히 그걸 엄마가 보시고 많이 우셨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죄송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거든요."

 

긴 하루가 지나고 아이들은 ’엄마’ 곁에서 곤한 잠에

빠집니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

만 가슴 아파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아이

들 입에서 나오는 ’엄마’ 이 두 음절입니다.

그런 그녀가 바라는 게 있다면 상처받고 다친 아이들이

웃는 얼굴과 밝은 미소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편견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면서

제 일을 찾고 나중에는 따뜻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슬프고,

기쁘고, 아픈 성장의 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누는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머니’ 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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