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운수 좋은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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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이란 소설을 아십니까? 인력거 꾼인 김 첨지라는 사람이 어느날
이상하게도 손님이 많아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나중에 집에 가 보니 부인이 죽어 있다는 그
비극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하루종일 운이 좋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심 그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었죠. 그러기에 늦게까지 술을 먹었던 거구요. 운수 좋은 날 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은 날, 저에겐 바로 어제가 그랬습니다.
밤 12시 부터 운전면허 필기 시험을 공부했으니까 시험날 아침까지 6시간 정도 공부
했을까요? 중간에 잔 것까지 계산하면 실제 공부한 건 얼마 안 되어 내심 불안했는데
이상하리라 만큼 운이 좋아 시험엔 합격을 했습니다. 50문제 중 4개 틀렸더라구요. 곁에서
열받아 하는 두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해방감에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표정관리
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게다가 하늘도 나의 합격을 축하하듯 눈도 이쁘게 내렸고요. (남들이
보면 내가 무슨 대학입시 합격한 줄 알겠네.) 성당에 오니 종선이가 내가 좋아하는 "백
스트리트 보이스'의 MIDI화일까지 받아다 주고....(노래에 관한 데이타로서 내 음악 작업에
무지 도움되는 자료임.) 다같이 술 마시러 가서도 맛있게 많이 먹었고요. 술도 꼭 내가
막잔(이것도 운과 관련된 거라나)을 마셨고...근데 10시쯤 엄마가 응급실 갔다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에 술이 깨기엔 내가 좀 취해 있었습니다. 피정때도 밤 샌
상태에서 뒷풀이로 술 먹었고 곧바로 오늘도 잠 안 잔 상태에서 술을 먹었으니 몸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집으로 오는 길에 어쩌다 보니 나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날
에스코트 안해주는 걸까? 병주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방향감각이 어두운 데다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듯이 그만 집과는 반대 쪽으로 걷고 걷고 또 걸어 창성동 까지 가서 그
쪽에 사는 친구 집에서 자고 새벽 4시 반에 부리나케 집에 왔습니다. 안방에 가 보니 엄마의 한쪽
발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습니다. 저녁 하던 중 칼이 엄마 발에 미끄러져 피가 찍, 아니 쫙
퍼졌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발 등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 불구가 되는 것은 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감사미사를 드리려 새벽부터 성당에 나와 있습니다. 내 시험보다도
엄마의 발이 그나마 무사한 것을 감사드리려고 말입니다. 오늘 느낀 것이지만 내가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처럼 끝에 참담한 비극을 맞지않고 그나마 다행인 것으로 하루를
정리 할 수 있던 건 바로 내 주위를 주님께서 감싸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던 안 하고 있던 간에 주님께서는 모든 위험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시다는 걸 난 오늘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고린토 2 5: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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