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세례를 받은 지 27년이 됩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세례받은 해에 경험한 성령쇄신묵상회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참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당시 본당 신부님은 묵상회에 참석한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의 예절 부분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해를 입혔거나 원수가 된 이들과 화해하기 위해 당사자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어릴 적(4세) 기억으로 각인된 사촌오빠는 어머니를 때려 코피를 흘리게 했고 늑골이 골절되게 하였는가 하면 재산을 포탈하고 어린 제 생명마저 앗아갈 뻔한 가해를 저지른 사람이었기에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원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용서하라니, 그리고 그를 찾아가거나 편지를 쓰라니,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이 아픔의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떨쳐버리라니, 눈곱만큼도 뉘우침을 보이지 않는 뻔뻔한 사람을 내가 먼저 용서한다고 찾아가라니. 며칠을 두고 고민하며 제 자신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용서해 준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처사 같았습니다. 차라리 묵상회에 참석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자기 부정) 기도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오빠, 저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다는 것은 원수를 용서해 준다는 것이라고 해서 저도 오빠의 잘못을 용서해 드립니다. 예수님이 용서해 주라고 해서 용서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수녀가 된 뒤 그 오빠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 사무실에 ‘인자무우(仁子無憂)’라고 쓴 액자를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얼굴엔 평온과 인자함이 흘러넘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많은 선행을 하고 덕망이 높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다행함을 느꼈습니다. 행여 제가 예수님을 몰라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과 복수심만 키웠다면 얼마나 인생을 헛되이 살 뻔했는지! 그분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둘 다 살리시는 생명과 자비의 주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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