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신영성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인쇄

신태건 [shinnara] 쪽지 캡슐

2004-04-28 ㅣ No.6049

신영성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인천교구 사목 연구소 소장)

 

신(新)영성 운동의 확산은 그리스도교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신영성 운동은 전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상충하는 우주관과 구원관을 기저에 깔고 교묘하게 그리스도교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영성 운동의 사상은 반(反)그리스도교적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單一論을 내세운다(宇宙觀).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一元論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一元論은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로 수렴된다는 사상으로서 현존하는 현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러나 單一論은 차별이나 구분 자체를 인정치 않는 경직된 합치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영성 운동은 현상세계의 차이를 인정치 않고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는다. 서로 구별되는 요소들, 곧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합리성과 비합리성, 과학과 주술,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천사와 악마, 과거와 미래 등을 무차별하게 합일시키려 한다.

결국, 신영성 운동의 단일론은 그리스도교의 세계관과 윤리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영성 운동은 ‘善’이나 ‘惡’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고 타율적으로 부여된 절대 기준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신영성 운동은 “모든 것은 善하다.”의 상황윤리를 내세운다. 본래 자연적인 것은 모두가 ‘善’한 것인데 그리스도교가 인위적으로 善과 惡의 기준과 경계를 만들어 놓음으로 해서 원래 없었던 ‘惡’의 개념과 죄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惡(의 세력)이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기 위한 기발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예수님이 대적하여 싸운 惡과 惡靈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세계관이며 절대 윤리관을 희석하는 자율 윤리관, 나아가 윤리적 무차별주의인 것이다. 회개와 심판 자체까지도 부정하는 거짓 이론인 것이다. 이는 영적 깨달음이나 초능력의 발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는 신념과 어우러져서 윤리적인 타락과 거룩함을 뒤섞어 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둘째, "모든 것에 神性이 있다"는 汎神論을 내세운다(神觀).

신영성 운동은 인간 밖에서 존재하며,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적이며 초월적인 존재로서 신 관념을 배제하고, 신을 흔히 생명력과 같은 우주적 에너지 또는 ‘기’(氣)로 간주한다. 신은 절대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process)으로 여겨지고, ‘종교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영적’(spiritual)이라는 용어가 더욱 선호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과 인간에 내재하는 신성(神性)이나 영성에 주목하면서 ‘영적 깨달음’을 추구한다. 의식 변용, 영의 진화를 통해 궁극적 목표인 온전한 신성에 도달한다는 교리는 기성 종교인뿐 아니라 무신론자들에게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여기에서 (초월)명상, 요가, 강신술 등의 실행방법이 타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과 신성에 이르기 위하여 이러한 동양의 전통적인 종교 수행법 외에도, 서양의 유태교와 그리스도교 계시사상, 영지주의, 정신분석 심리학, 과학 및 생태학의 성과 등이 구별 없이 원용(援用)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영성 운동은 강한 혼합주의(syncretism) 성향을 띤다.

“신은 만물 안에 존재하고 따라서 만물이 곧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와 같은 범재신론(汎在神論)은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이나 인격신의 개념을 근원적으로 거부한다.

 

셋째,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還生한다"는 輪廻思想을 믿는다(來世觀).

창조를 부정하고 하느님 자체를 없애버리며,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내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달래 주는 기발한 대안이 바로 윤회설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 심령과학, 최면 등을 이용하여 윤회설을 입증하려는 시도들이 TV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놓고 영매가 그 사람의 영에게 질문을 하면 자신은 15세기에 어느 나라 어디에 살던 누구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는 잠재의식, 무의식이 빚어낸 일종의 꿈과 같은 환상이라는 것이 미국 심리학계의 견해이다.

윤회사상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뉴 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힘을 가진 에너지에 불과하다. 즉, 평범한 인간 예수가 깨달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의식’을 얻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 견지에서 보면 예수의 강생, 삶, 십자가를 통한 구원업적 등이 상대화되고 심지어는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된다. 이러한 점은 일본의 정신세계 운동이나 한국의 기수련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密敎的 神秘主義를 內包한다(수행관).

신영성 운동은 하나같이 ‘신성’에 이르는 여러 단계를 제시한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에 이를수록 밀교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즉,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 의식이 공개된다. 이런 점에서 신영성 운동은 그리스도교 영지주의(Gnosticism)와 유사하다. 뉴 에이지는 2-3세기에 그리스도 신앙을 위협했던 고대 영지주의와 자주 연관된다.

최근 문헌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물을 가진 분, 뉴 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2003, 2,3)에서 교황은 뉴 에이지를 현대판 영지주의로 보고 뉴 에이지를 가장한 고대 영지주의로의 회귀를 경고하고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영지주의자들은 교회의 공적 설교에 반대하고,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입교자에게만 알려진 비교(秘敎)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구원의 구체적인 방식이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영적 지혜는 소수의 선택된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전승되기도 하였다.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공개되는 부분과 비공개적인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이러한 밀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핵심적인 교리와 제도, 의식은 핵심 내부인들에게만 은밀히 알려져 있다.

 

結 論

성서신학 및 영성신학의 견지에서 볼 때 이러한 일련의 신념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뱀(사탄)의 거짓 주장과 너무도 흡사하다. 뱀(사탄)은 하와를 다음과 같은 말로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창세 3,4-5). 여기서 뱀이 내세운 “너희가 하느님 같이 되리라”는 유혹은 ‘범신론’으로,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는 유혹은 ‘윤회론’으로,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는 유혹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상황(상대)윤리로, “너희의 눈이 밝아지리라”는 유혹은 밀교주의로 변형되어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면 신영성 운동이란 태초에 인류를 공격한 사탄의 속임수의 재현이고,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3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